4화

    어린 시절, 엄마는 나보다 내 운동회에 열심이었다. 엄마는 운동회 전날부터 ‘예쁜 도시락 싸는 법’을 열심히 검색했고 간식으로 반 전체에 들어갈 간식을 꼼꼼하게 골랐다. 나는 엄마가 간식위원을 하는 게 싫었다. 엄마는 항상 건강에 좋은 호밀 샌드위치나 유기농 과일 컵도시락을 골랐는데, 그런 게 간식으로 들어오면 반 친구들은 항상 ‘야, 또 선우 니네 엄마가 간식위원이지?’하고 온갖 핀잔을 줬다. 그래서 나는 운동회만큼은 엄마가 간식위원을 하지 않길 바랐는데, 신기하게도 꼭 엄마는 운동회 때마다 간식위원을 했다. 엄마, 이번엔 그냥 햄버거 돌리면 안 돼? 내가 눈치를 보며 엄마의 곁에서 쭈뼛대며 물으면, 엄마는 그런 건 건강에 안 좋다고 했다. 나 그거 먹고 싶은데. 차마 엄마가 그렇게 유난 떠는 거 쪽팔려 죽겠어, 라는 말은 못 하고.
    사실 더 쪽팔린 건 또 있었다. 운동회에서는 종종 부모님과 함께 하는 코너가 있었다. 줄다리기나 박 터뜨리기, 2인 3각 달리기 같은 거. 보통 줄다리기 같은 건 아빠들이 하곤 했는데, 엄마는 팔을 걷어붙이고 여기저기 모든 경기에 꼈다. 무테안경에 흙먼지를 고스란히 묻혀가면서 ‘엄마 잘 했다. 봤어?’하고 묻는 엄마의 얼굴이, 나는 정말 싫었고 쪽팔렸다. 동네에서 약국을 하는 교양 있는 아줌마면 될 걸 가지고, 엄마는 유난스럽게 굴었다. 니 아빠 없는 거 티내기 싫어서 그래. 엄마는 나중에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진짜 웃겼다. 아빠가 있는 다른 애들은 어떤 엄마도 그렇게 억척스럽게 굴지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 유난을 떨어서 나는 자꾸, 아빠의 빈자리를 의식하게 됐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던 아빠는 부재로써 그의 존재를 증명했다. 엄마는 그의 부재를 나에게 의식하게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신기하게도 나에게 화를 낼 때면 ‘느이 아빠랑 똑같애. 어쩜 속을 박박 긁어, 주씨 집안사람들은?’하고 신경질을 냈다. 나는 그럴 때면 엄마는 사실 살기 위해 아빠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 주선우, 너 내가 짝다리 짚고 서 있지 말랬지.
    ― 아, 알았어.
    느이 아빠랑 똑같애, 그 버릇은. 엄마는 세상이 멸망하고 나서도 나를 똑같은 이유로 혼냈다. 엄마는 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부상자들을 약국으로 데려오면, 성녀처럼 그들을 받아 간단한 응급 처치를 하고 응급 진료소로 보내면서도 멍하니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내 등짝을 소리 나게 때리면서 아빠 얘기를 하곤 했다.
    ― 사이좋네, 엄마랑.
    ― 이게 사이가 좋아 보여?
    내가 투덜거리면서 엄마가 쥐어준 붕대나 먹을 것을 들고 약국을 나오면 벽에 기대서 담배를 피고 있던 유이가 픽 웃었다. 유이는 이제 나와 한 팀이었다. 혼자 다니는 것보다야 나았다. 유이가 신나게 건물들을 부수고 있으면 그 아래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게 효율성도 높았고. 유이는 ‘MBTI 궁합론’을 설파하면서 ‘나 ENTJ거든. 너랑 잘 맞을걸.’하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 진지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담배를 피는 입술이 좋아서 그 궁합론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 날부터 유이는 약국까지도 자주 왔다. 선우약국. 유이는 눈을 들었다가 내리면서 ‘엄마랑 사이좋나 봐?’하고 물었다. 남들 눈에는 그래 보이겠지. 이미 퍽 유명한 걸로 알고 있다. 마법소녀 딸과 약국의 성모인 그녀의 엄마. 여기서도 엄마는 이름이 없었다.
    뭐, 나와 유이라고 해서 나을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마법소녀’라는 웃기지도 않은 단어로 나와 다른 애들을 불렀다. 마법소녀들은 유이와 나처럼 대충 파트너를 결성해서 다니기도 했고, 혼자서 다니기도 했고, 비슷한 능력을 가진 애들끼리 뭉쳐 다니기도 했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를 함부로 불렀다. 정부에서 사람들이 오기도 했다. 처음 그들이 온 것은 다섯 번째 공습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은 가스관이 터져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약국에서는 상처가 곪는 콤콤한 냄새가 가득했다. 그 중앙에서 군복을 입은 남자 네 명이 사무적으로, 내가 ‘방어 편대’에 속하게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그게 뭔데요?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내가 뭔지 내가 알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들은 유일하게 복구한 AM라디오로 우리의 활약을 사기 증진을 위해 방출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계약서나 동의를 구하는 말은 없었다. 그렇지, 세일러문도 갑을 관계의 서약서를 쓰고 지구를 구한 건 아니니까. 나는 그저 상처가 썩는 냄새가 나는 약국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그들의 무덤덤한 표정이 신기했다. 유이는 팔짱을 끼고 그 얼굴을 보고 있다가 탁 하고 침을 뱉었다. 유이는 공격 편대였다.
    ― 몰래 쟤들 죽일까?
    ― 아니.
    유이는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에게 물었다. 그게 난 어쩐지, 나를 위해서 죽여주겠다는 말처럼 들려서 웃었다. 유치한 인터넷 소설의 일짱 같아서.
    ― 됐고 앉아봐. 머리 묶어줄게.
    ― 엉켜서 안 돼.
    ― 앉아, 쫌.
    나는 유이에게 죽여달라는 부탁 대신 그의 어깨를 앉고 강제로 앉혀 머리를 묶어주었다. 유이는 탈색을 해서 머리카락이 뻣뻣했는데, 거기에 먼지와 그을음, 피까지 얹혀서 아예 한 덩어리로 굳어 있었다. 유이는 그 굳은 머리카락을 대충 노란 고무줄로 바짝 묶고 다녔다.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식용 생수로 유이의 머리를 살살 헹궈서 손가락으로 풀고 다시 느슨하게 묶어주었다. 몇 시간이면 다시 엉망이 될 거니까, 이렇게 무용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십 분 남짓의 시간이 나에겐 정말 소중했다. 유이는 무릎을 세우고 이마를 댄 채로 내가 그의 엉킨 머리카락을 모두 푸는 동안 기다렸다.
    ― 니네 엄마가 우리 본다.
    유이가 무릎 사이에서 중얼거렸다. 나는 살짝 눈을 들어 약국 안을 봤다. 이렇게 어지러운 속에서도, 엄마는 나와 유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 근데?
    나는 애써 엄마의 시선을 무시하며 유이의 머리카락을 틀어 올렸다. 그을음으로 검게 변한 뒷목이 가늘었다.
    ― 나 싫어하잖아.
    ― 울 엄만 나도 싫어해.
    유이의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말아서 묶었다. 귀와 목이 훤히 드러나는 모양을 유이는 좋아하지 않았다. 강퍅한 얼굴선이 그대로 드러나서인 것 같았다. 싫다니까, 이거. 유이는 투덜거리면서도 내가 동그랗게 말아준 머리카락 뭉치를 한 손으로 꼭 쥐었다 놓았다. 가자. 나는 유이의 팔꿈치를 잡고 끌어당겼다. 엄마가 여전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유이 말이 맞았다. 엄마는 유이를 싫어했다. 걘 몇 살이라니? 처음 유이가 약국에 왔을 때 엄마가 물었다. 몰라. 그게 중요해? 그냥. 불량해 보여, 걔. 불량해 보인다니! 나는 웃지 않으려고 입술 안쪽을 꼭 깨물어야만 했다. 외계인 공습보다 엄마가 더 받아들이기 힘든 건, (이미 폭파되고 없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불량한 여자애와 내가 같이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유이랑 같이 있어야 내가 안 죽어.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불만족스럽게 씰룩대는 입술 모양이 어딘가 통쾌했다.

    나는 유이가 좋았다. 이상한 MBTI 얘기를 자꾸 하는 것도 좋았고, 아무렇지 않게 무너진 편의점에서 담배를 한 보루씩 가져오는 것도 좋았고, 내가 엉킨 머리를 풀어줄 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좋았다.
    ― 담배?
    ― 아니.
    유이는 꾸준히 나에게 담배를 권했고 나는 꾸준히 거절했다. 이렇게 거절하며면 그만 말할 법도 한데, 유이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나에게 습관처럼 담배? 하고 물었다. 나는 유이가 부서진 건물의 파편 위에서 담배를 피우는 동안 다른 애들을 살펴보곤 했다. 우리 동네에서 가끔 얼굴을 마주치는 ‘마법소녀’는 약 여섯 명 정도였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띠는 애는 역시,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지게 된 애였다. 얼굴이 낯익다 했더니, 꽤 유명한 소속사의 연습생 출신이라고 했다. 그 애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때면 얇은 다리와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그 애는 자신이 마법소녀인 것에 열광했고 사람들도 그랬다. 나는 묵묵히, 그 애가 싸우느라 무너진 빌딩 안에서 어린 아이들과 강아지들을 구하며 생각했다. 이게 진짜 좋나, 하고.
    뭐, 공격 편대 애들에게는 진짜 좋을 수도 있었다. 공격 편대 애들은 서로 쉽게 친해졌다. 방어 편대는 공격 편대보다 훨씬 수가 적었다. 보통 공격 편대는 대여섯 명이 함께 다녔고, 수비 편대는 그 대여섯 명에 어색하게 한 명이 끼어 있는 정도였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강한 것을 죽이는 것이 더 편리했으니까 그 편대가 만들어지는 방법은 어쩌면 당연했다. 나와 유이는 그 편대에 소속되지 않은 소수에 속했다. 마법소녀 한 편대 당 군대와 특전사들도 한 팀씩 붙었다. 나는 건물 파편에 기대서 예쁘게 틀어 묶은 머리카락의 모양과, 군인들이 들고 있는 총탄의 모양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상상했다.
    ― 뭘 그렇게 봐?
    ― 아무거나.
    담배 연기가 옆쪽으로 돌아왔다. 바람에서는 온갖 것이 타는 냄새가 났다. 나는 고개를 돌려 유이를 쳐다봤다. 유이의 옆얼굴에는 얇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고여 있었다.
    ― 너 있잖아.
    ― 응.
    유이의 귀밑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이상하네, 저건 조금도 총탄과 닮지 않았어. 나는 등 뒤로 손을 짚고 유이를 올려다봤다.
    ― 나보다 나이 많지?
    그제야 유이는 담배를 비벼 끄면서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학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었으니까, 몇 살인지 뻔했지만 유이는 달랐다. 얇은 목이나 여물지 않은 눈가는 나보다 어려보일 때도 있었고 담배를 피우면서 인상을 찡그릴 때는 우리 엄마만큼 나이가 들어 보였다. 유이는 무릎을 모아 앉았다.
    ― 아마 그럴걸.
    ― 너 그럼 혼자 살아?
    ― 그건 왜.
    유이가 인상을 찡그리며 짜증을 냈다.
    ― ……나중에 나랑 같이 살면 안 돼?
    ― …….
    유이는 잠깐 나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서 엉망이 된 마을을 내려다봤다. 나도 그걸 같이 보고 있었으니까, 방금 내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중은 더 이상 없을 수도 있었고, 그 나중까지 우리가 살아 있을지도 몰랐고, 그 나중에 유이가 여전히 내 옆에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유이는 대답이 없었고 나는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 ……내가 뭐하는 앤 줄 알고 같이 살자 그래? 너도 대책 없다.

어라, 되게 꼰대같이 말하네. 나는 팍 기분이 상해서 됐어, 못 들은 셈 쳐. 하고 바닥을 발로 찼다.   
    ― 그래서 좋다고. 같이 살어.
    유이를 두고 가려던 나는 그를 돌아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예쁘게 틀어 올려서 묶어준 머리카락이 죄다 풀려 있었다. 유이의 웃는 얼굴. 웃는, 얼굴, 웃던 얼굴……

    유이는 죽었다.
    언제였지. 그날이었나. 아니면 다음날? 다다음날? 다음주? 다음달? 잘 모르겠다. 마법소녀였던 때,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때의 타임라인은 엉망으로 뒤엉켜서 그냥 한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중요한 건 유이가 죽었다는 거였다. 공습이 있던 날도 아니었다. 무너질 위험이 있는 건물 안에서 화재가 났다. 수도관이 엉망이 됐으니 화재가 나면 진압할 방도가 없어서 그저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공습이 없는 날에는 유이 같은 공격 편대도 수비 편대와 함께 대피와 구호 업무를 했다. 영등포상가 전체에 불이 붙었다. 상가는 지하 3층까지 있는 대형 건물인 데다가 아파트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그곳을 대피소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불이 난 것을 확인하자 소방대원이 ‘낭패네’하고 중얼거렸다. 그곳에 가기 전에 성인 남성에게 맞춰져 있어서 헐렁한 방호 마스크를 썼다. 소방대원 중 한 명은 나이가 꽤 많았는데, 그는 내 뒤로 끈을 묶어주면서 어린애한테, 하고 몇 번이나 혀를 찼다.
    유이는 지하 2층으로 갔고 나는 옥상으로 갔다. 옥상에서는 불이 심하지 않아서 어린애 몇 명만 대피시키면 됐는데…… 내가 다섯 번쯤 나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을 때 콘크리트 바닥이 주저앉았다. 안에서 가스관이 터져서 더 이상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안에 사람 없죠? 나는 당연히 유이가 나와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물었는데, 어떤 직감은 틀렸다. 모여 있는 사람 중에 유이는 없었다. 유이 지하에 있었어요? 누구? 머리 노란 여자애요. 아, 걔. 소방대원이 대답하지 못하고 검은 얼굴을 장갑으로 대충 쓸었다. 나도 이제 저 제스처가 뭘 뜻하는지 알았다. 죽음의 앞에서 사람들은 쉬이 말을 하지 못했다.
    영화에선 이런 장면에서 슬픈 음악이 나오고 무릎을 꿇은 주인공이 오열을 하고, 느리게 슬로우 모션이 걸리면서 다음 장면에선 깨끗한 얼굴로 병원에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지독하게 느렸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유이야. 유이 언니. 유이. 나는 멍한 얼굴로 무너진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눈에 재가 들어가서 시큰거렸다. 이제 가자. 누군가 내 팔 뒤를 끌어당겼다. 끌어당겨진 채로 나는 뒷걸음질 쳤다. 되게 이상했다. 모든 게…… 저 불타는 건물 안에 유이가 있다는 게, 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게, 내가 묶어준 엉킨 머리 그대로 저 안에, 있다는, 게, 다시 내가 그걸 묶어줄 일이 없을 거라는 게…….

    하지만 ‘되게 이상한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혼자서 선우약국으로 돌아왔고 엄마는 ‘걘’ 어디 있냐고 물었다.
    다시 안 와, 이제. 나는 대꾸했고 엄마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다문 입술이 웃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마음속 깊숙이 모두를 정말로,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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