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는 비행체가 퇴각한 이후부터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구토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들어본 적이 있었다. 비행체의 공격 이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암환자가 늘었다고. 아마도 방사선 노출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작 그들과 가장 많이 접촉했을 나는 멀쩡했기 때문에 나는 그 뉴스를 믿지 않았다. 원래 사람이란 게 그렇다. 제 눈앞에 없으면 타인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다가, 바로 그 피해자였다. 보호자가 피습으로 모두 사망한 이다는 국가의 ‘보호’ 차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종종 이다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정부 사람들. 이라고 누군지 묻는 나에게 이다는 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답했다. 이다는 채혈을 자주 했다. 얇고 허연 팔뚝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대신 인상을 찌푸린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다는 익숙하다는 것처럼 나와 조잘거리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이다는 자신의 병의 원인에도, 그리고 그 결말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마법소녀였다는 사실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온갖 투약과 실험으로 바쁜 이다의 일정에는 내가 자소서를 쓰고 있는 병원 스타벅스 앞에서 턱을 괴고 느리게 질문을 하는 일정이 포함되었다. 이다는 이것을 인터뷰라고 불렀다. 제일 먼저 구한 사람 기억나?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 거야? 제일 기뻤을 때는 언제야? 지금도 그 마법소녀들이랑 연락하고 지내? 내가 대답하기 꺼려했던 질문들, 이후에 토크쇼와 프로그램에서 수천 번이나 들었던 질문들. 이상하게도 그 질문들은 이다가 하면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다의 앞에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으면 내가 그토록 채우지 못하고 있던 자소서의 ‘고난’의 칸에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이다와의 수다는 일종의 asmr인 셈이었다. 오늘 이다는 스타벅스 메뉴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새로 나온 딸기 프라페에 자바칩을 추가했다. 너 못 먹지 않아? 하는 말에 이다는 내 앞에 컵을 내려놓더니, 나에게 그 맛을 묘사해줄 것을 요구했다. 딱히 미식에 취미가 없는 내게 맛 평가를 원하다니. 나는 머뭇거리며 달어, 하고 딱 한 마디 내뱉었다. 이다는 그 말에도 뭐가 좋다고 까르륵 웃었다. “넌 단 거 원래 안 먹어? 미드 같은 거 보면,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초코바 많이 먹던데.” “넌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냐.” “이거 봐라.” 이다가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꺼내든 것은 포토카드를 모은 콜렉트북이었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마법소녀’들은 일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었는데, 동네 어린 아이들이 저 포토카드를 모으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언뜻 봐도 초록색 코팅만 잔뜩 있는 걸 봐서 수비 편대만 모은 모양이다. 내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거나 모으고, 니가 애냐.” “이건 너가 나가고 나서 만들어진 트레이딩 카드라서 넌 없어.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데.” “얼씨구.” 이다는 콜렉트북 중에서 한 장을 꺼내들었다. ‘마법소녀 수비편대 no. 9.’라는 황금색 글자가 칠이 다 벗겨져 있었다. 그 위로는 매직으로 휘갈긴 사인이 있었다. 이다는 크게 고개를 으쓱했다. “스티커 뒤에는 사인 못 받잖아.” 노트북 화면 너머로 눈치를 보니 진심인 모양이다. 이다의 머리 위에 흔들거리던 전광판이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지갑을 꺼냈다. 자소서 사진 용으로 찍어놓은 멋없는 증명사진 뒷면에 네임펜으로 이름을 썼다. 주선우. 이름도 참 딱딱하고 멋이 없다고, 나는 내 이름을 쓰면서 생각했다. 네임펜이 코팅된 종이에 긁히는 소리가 선명했다. “자. 이건 하나밖에 없잖아. 됐지?” 사진을 받아든 이다가 씩 웃고, 웃는 얼굴 그대로 내 핸드폰 화면을 가리켰다. 02로 시작되는 숫자들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이다는 여전히 타자를 치고 있는 내 귀에 핸드폰을 대 주었다. — 주선우 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 여기 △△출판삽니다. 최종 면접 대상자로 선정되어 연락드렸습니다. 내가 헐, 하고 눈을 크게 뜨면서 ‘출판사야!’ 라고 입모양으로 소리쳤다. 이다는 그런 전화가 올 줄 알았다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걔만의 트레이딩 카드를 손에 꼭 쥐고서. 내가 연신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거리면서 전화를 끊자 이다가 말했다. “봐봐, 내가 뭐랬어.” “네가 언제 뭐라고 했어.” 면박을 주면서도 생각했다. 맞다, 이다는 언제나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선우야, 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부터도 그랬다. 나는 이다와 함께 병실로 올라왔다. 이다는 서랍장 위에 내가 준 증명사진과 콜렉트북을 놓았다. 나는 내가 꼭 이다의 보호자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뻤다. 신기한 일이었다. 엄마의 침실 옆에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들을 놓으면서 나는 죄수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패륜인가? 잘 자. 이다에게 속삭였다. 이다는 뭔갈 말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가, 다시 다물었다. 응, 너도. 나는 이다의 침대에 불투명한 커튼을 쳐주었다. 이다가 내가 이름을 꾹 눌러쓴 증명사진을, 읽고 있던 책 사이에 끼우며 물었다. “나중에 이거 중고나라에 엄청 비싸게 팔아도 돼?” “그러기만 해봐.” 잘 자. 연신 인사를 하고 커튼을 마지막으로 쳤다. 엄마의 침대로 걸어와서 똑같이 커튼을 치고, 아래에서 바로 간병인 침대를 꺼내자 엄마가 물었다. “오늘은 자소서 안 쓰고 자?” “다 쓰고 냈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발음이 새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자소서’를 꼭 ‘자조서’처럼 발음했다. 내일 면접을 본다고 말할까 하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데에 했냐고, 엄마는 구시렁거리더니 곧 잠에 들었다. 나는 반투명한 커튼 너머로 이다의 침대를 바라보았다. 미동 없는 동그란 그림자. 나는 이불 속에서 몰래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 밝기를 최대한 줄였다. [ 잘 자 ] [ 방금 인사 했잖아. 빨리 자. ] [ 내일 검사 한단 말이야~ 자기 싫어. ] [ 쓰읍. ] 실실 웃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얇은 커튼 너머로 이다의 동그란 그림자가 조금 흔들리는가 싶더니, 아래로 손을 내려 흔들었다. 인사하는 거다. 그리고는 딱, 소리와 함께 육인실 병실에서 가장 늦게 이다의 침대에서도 불이 꺼졌다. 그래봤자 열한시지만. 열어놓은 문틈으로 지나치게 환한 불빛이 계속 들어오고,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간병인이 피곤한 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일 거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 위로 빛이 닿으면 자꾸 그때가 생각났다. 제대로 잘 수 없던 때. 사람들은 모두 그때가 없었다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아직도……그때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싸우거나 사람들을 구할 때는 괜찮았다. 그때는 살아 있는 것만 신경 쓰면 됐었다. 사실 유이가 죽고 나서는 그런 것도 잘 신경 쓰지 않았지만. 더 괴로운 것은 도시가 복구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시작했던 비극이었다. 그 끝도 허망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비행체는 퇴각했다. 이유도 없었다. 그저 어느 날부터 그 개체가 줄더니 보이지 않았다. 엉망으로 무너진 거리들을 사람들은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어떤 건물을 먼저 세웠을까? 학교? 병원? 아니, 정부가 가장 먼저 다시 세운 것은 방송국이었다. 텔레비전 송출은 힘들어도 라디오 송출은 그 난리에도 가능했으니까. 온갖 방송국의 모든 프로그램의 첫 시작은, 바로 ‘마법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