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저기 혹시…….’ 이다. 그날 이후로 나를 알아보는 모든 사람들은 저기 혹시, 하는 말로 모든 말을 시작했다. 슬로모션으로 떨어지는 전광판을 한 손으로 잡아 던져버리고, 웅크리고 앉은 할머니를 한 손으로 끌어안아 피한 바로 그날부터.  
    그을음으로 얼굴이 엉망이 된 나는, 까무러친 할머니를 한 손으로 들쳐 업고 금이 가는 벽을 등으로 받쳤다.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저기로 나가세요! 내가 다급하게 소리를 쳤고 허공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 선우야……!
    나는 엄마의 표정이 두려워 이를 악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가 나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은 ‘튀지 마. 적당히 해. 다들 하는 걸 왜 너는 못 하니?’ 이런 것들이었다. 엄마는 내가 특별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건 특별한 게 아니라 특이한 거였으니까. 내가 적당히 공부 잘하고, 적당히 말 잘 듣고, 적당히 살길 바라는 엄마. 그런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려면 무너지는 벽을 받치고 할머니를 구하는 일 따위는 하면 안 됐었는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등이 아릴 때까지 벽을 받쳤고 뒤쳐진 여섯 명의 사람들을 한 번에 끌어안고 신길역 바깥으로 달려 나왔다. 짐승처럼 목구멍 사이에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팔뚝이며 등, 허벅지가 뜨거웠다. 핏줄이 불끈거리고 근육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이 느껴졌다. 무너져버린 신길역 바깥에서 나는 소나무처럼 한복판에 서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다. 나를 하나도 모르겠다는 것처럼 쳐다보는 엄마가.
    뭐……언제는 나를 알았겠느냐마는.  
    나는 엄마가 시끄럽게 설거지를 하는 것처럼 나를 타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 챙겨온 것인지 엉망이 된 담요를 내 어깨에 두르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등을 돌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엄마는 그날 나를 선우야, 라고만 불렀다. ‘주선우’가 아니라. 엄마가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몸을 돌리게 했을 때, 나는 울었다.

    저들이 살았다는 안도감. 내가 곧 죽을 것이란 공포.

    알고 보니 그 꿈을 꾼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서울에만 못해도 스무 명쯤은 되는 것 같았다. 모두가 나처럼 폭발적인 힘과 민첩성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각기 다른 능력이 생겼다. 나이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십대에서 이십대 정도의 여자들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세상이 무너지기를 가장 원했던 사람들에게 이런 역할을 주다니, 참 못됐다. 누군지는 몰라도. 온몸에서 빛이 나던 존재가 웃겼다. 지구를 구할 존재는 너뿐이라느니……. 구원을 이런 여자애들한테 맡기다니, 그게 신이라면 참 막돼먹은 신이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라디오 송출탑 덕분에 흘러나오는 긴급방송에서 나는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일들을 듣고 있었다. 더 말도 안 되는 것은 내가 그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이었다. 원래 이런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인 남성 아닌가. 비행체는 믿을 수 없지만 외계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단단한 외피는 어떤 폭탄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비행체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무리에 내가 속해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들을 뭐라고 부를지 고민했다. 자경단은 너무 원색적이었고 지구수비대는 유치했다. 라디오에서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구를 구할 마법소녀들. 디지몬 오프닝 가사 같아서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는데 함께 방송을 듣는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저 말을 믿으세요? 난 소리치고 싶었지만 무너지는 벽을 받치고도 조금도 욱신거리지 않는 등 때문에 나조차도 그 말을 쉽게 믿을 수 있었다. 이거 좀……치사한 거 아닌가. 예수도 서른셋까지 먹어서 기적을 행했는데. 나는 겨우 열아홉이었다. 금이 간 학교 건물로 대피한 사람들은 라디오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나를 쳐다봤다. 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분명 앵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나는 갑작스럽게, 준비되지 않은 희망이 되었다.

    도망가려고 했다.

    얼굴을 가리고 내가 구해준 사람들을 뒤로 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피난을 가거나 아니면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죽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희망이 된 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듯이 그 자리를 뿌리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날 새벽, 다시 비행체는 폭격을 시작했고 나는 사람들을 구해야만 했다. 무너지는 건물에서, 떨어지는 전광판 아래에서, 불이 붙은 창문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그 얼굴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외면하기에는 끔찍하리만치 어렸다. 내가 그 사람들을 구해주면 그들은 내 몸 어디라도 붙들고 감사를 하고 애원을 했다. 나는 하나도 살고 싶지 않았고 조금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성녀가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희망의 대열에 합류해야만 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것처럼 나는 타율적이고 강제적으로 기적을 행했다.
    나는 습관처럼 사람들을 구했다. 공격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 다른 사람들이 전투를 하면 빌딩에는 금이 갔고 사람들은 신음했다. 나는 땅바닥에 배를 붙이고 다니는 뱀처럼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를 들어 올리면서 사람들을 구했다. 엄마는 약국의 문을 열었다. 나는 구한 사람들을 엄마에게 데리고 왔다. 엄마는 땀과 피로 엉망이 된 얼굴로 내가 부상자들을 데려오면 약과 붕대를 털어 내놓았다. 가방을 잽싸게 챙기면서 약국 문을 잠그던 사람이라고는 조금도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나이팅게일처럼 굴었다. 내가 아니라 엄마가 ‘마법소녀’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마법중년이려나? 나는 엄마가 사람을 구할 때 뭘 하고 있을까? 나는 약국 앞에 부상자들을 앉혀두고 엄마를 절대 쳐다보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희뿌연 유리창 앞에 비치는 나와 그 그림자 너머의 엄마, 우리 둘의 닮은 얼굴을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유이를 만난 건 그 희뿌연 약국 유리창 앞에서였다. 얼굴이 낯익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구역에서 ‘활동’하는 마법소녀들끼리는 서로 말은 잘 안 해봤어도 얼굴은 알고 있으니까. 유이는 노란색으로 탈색한 머리를 위로 높게 올려 묶었고 나보다 키가 좀 컸다. 걘 대부분 부서진 건물 자재를 던지거나 들어서 메다꽂곤 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라, 가끔 걔가 싸우는 걸 유심히 보기도 했었다. 아무튼 걔, 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서, 조금 쉰 목소리로 물었다.
    ― 나 빨간약 좀.
    ― 어?
    빨간약. 유이는 귀찮다는 것처럼 다시 말했다. 나는 엉망으로 쏟아진 약상자 사이에서 유이가 요구한 요오드 약병을 찾아서 유이에게 내밀었다. 유이는 아무렇지 않게 더러운 먼지구덩이에 털썩 앉아서 트레이닝복 바지 밑단을 돌돌 말아서 엉망으로 탄 다리에 요오드 병뚜껑을 따서 콸콸 쏟아 부었다.
    ― 뭐해?!
    ― 뭐가.
    유이의 다리는 화상인지 뭔지 모를 상처 때문에 온통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아프겠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 이거, 상처 주변에 바르는 거야. 상처가 아니라.
    ― …….
    유이의 손에서 약병을 잽싸게 뺏었다. 내가 소독용 솜과 알코올을 한 뭉텅이 가져오는 동안 유이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 그리고 이거, 빨간 약 아니고 포비돈 요오드고.
    ― 너 MBTI, INTP야?
    ― 뭐?
    생각지도 못한 말 때문에 내가 어이가 없어 되묻자, 유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 그냥. 좀 그런 느낌이야.
    ……좀 억울하지만 맞다, INTP.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솜으로 유이의 다리를 닦았다. 검은 그을음을 닦아내고 나자 철사 같은 것에 엉망으로 긁힌 다리가 드러났다. 다리의 상처를 보면서 이상하게, 걔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었다.
    ― 너 이름이 뭐야?
    유이는 색 없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게,
    “워!”
    “야, 하지 말랬지.”
    이다는 뒤에서 차가운 손으로 내 뺨을 꽉 잡았다 뗐다.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어서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만날 웃냐, 그럼?”
    이다는 히죽대며 내 옆에 앉았다. 스타벅스에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다는 꼭 이렇게 차가운 손으로 내 뺨을 잡아 나를 놀래키고 맞은편이 아니라 내 옆에 앉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친화력 하나만큼은 알아준다. 앞에 가서 앉아. 하면 이다는 여기가 좋아. 나 왼손잡이라서. 하고 이상한 변명을 했다. 내 옆에 앉은 이다에게서는 단 냄새가 났다. 약 냄새. 죽어가는 냄새. 익숙한 냄새였다. 내가 구해 온 사람들에게서 이런 냄새가 나면, 그들은 높은 확률로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다들 죽음의 냄새는 쓸 거라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죽어가는 냄새는 달았다. 살이 썩고 안으로 천천히 파고들면서 검게 변하고 과숙된 과일처럼 단 냄새가 났다. 나는 이다에게서 그 냄새를 맡는 내가 끔찍하게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없었다. 이다가 입술을 안으로 씹으며 내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자기소개서 3번 항목을 들여다보았다.
    “업무 수행 중 팀원과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2번에서 언급한 자신의 장점과 결부시켜 설명하세요…… 2번은 뭐 썼어?”
    이다는 노트북 화면을 위로 올렸다. 당연히 텅 비어 있었다. 내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이다를 내려다보았다. 이다는 앉은키가 작아서 언제나 날 올려다본다.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에 색이 없다. 그제야 처음부터 이다가 익숙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이다는 유이와 닮았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쳐다보는 색 없는 얼굴. 잔잔하게 소름이 돋았다.
    “장점, 장점. 선우 장점이 뭐지?”
    “…….”

    그걸 내가 알면 이 질문에서 일주일을 고생하고 있겠어? 내가 괜히 짜증을 부리며 쏘아붙였는데도 이다는 턱에 호두 주름을 만들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네가 내 장점을 아냐? 산책이나 가자.”
    산책이란 말에도 이다는 눈을 도록도록 굴리기만 하더니, 내 노트북 화면 위로 조그만 종이를 턱 붙였다.
    “이거, 너지?”
    “…….”
    초록색 반투명 블라우스, 미니스커트, 뭉개진 눈코입, 싸구려 황금색으로 인쇄된 ‘마법소녀 no.27.’ 나는 노트북을 부서져라 닫고 스티커를 낚아챘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났긴. 이런 거 몇 천 장은 뿌려져 있겠다.”
    이다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왜? 비밀이야,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곧 다가올 죽음조차 비밀이 되지 못한 이다의 앞에서. 고작 마법소녀였다는 사실이 비밀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다는 내 손에서 스티커를 확 빼앗으며 말했다.
    “너 완전, 내 스타였다. 아이돌. 너처럼 되고 싶었어.”
    “…….”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면 주먹 날리는 거. 되게 멋있었어. 나는 그렇게 못하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다도 이름이 없었다. 이다는 ‘시한부 걔’였다. 그렇게 이름이 잊힌 사람은 똑같이 이름이 잊힌 나를 잘 알아봤던 거다. 이다를 이다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병원에 나 밖에 없었다. 나는 꽉 쥐었던 주먹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유이를 그렇게 오랫동안 일부러 잊고 살았던 이유가 어슴푸레하게 떠올랐다. 언제나 검댕이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창백하리만치 하얬던 얼굴. 이다를 처음 봤을 때 그에게 쉽게 ‘안녕’ 이라고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이제 납득할 수 있었다. 이다는 유이를 닮았다. 창백한 얼굴도, 전시되는 죽음의 과정도, 그리고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도.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 아, 쟤다! 하고.”
    “나 되게 많이 달라졌을 텐데…….”
    복잡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이다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달라지긴 뭐가 달라져? 너, 아직도 맘에 안 들면 다 패버리고 싶단 표정 하면서. 하나도 안 변했어.”
    나는 앉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다의 얼굴을 쳐다봤다. 유이와 정말로 함께 살았더라면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드디어 우리만의 비밀이 생긴 것처럼 뿌듯하고 먹먹하게 마음이 막히는 이런, 기분.
    “그렇게 써, 장점.”
    “면접 위원한테 주먹부터 날릴 일 있어?”
    이다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나는 노트북을 다시 켰다. ‘문제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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