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은데 일하고 싶어. 모베러웍스 <프리워커스> by정연

 

    오랜만에 놀러간 서점 한 곳이 이번 주말부로 문을 닫는다고 했다. 따져보니 나는 그 서점 문이 완전히 닫히기 삼일 전 방문한 셈이었다. 책으로 만든 터널 인증샷으로 유명했던 곳. 식당과 서적이 한데 모여 있어 좀 의아했던 곳. 그럼에도 예쁘고 힙한 것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어 종종 찾아갔던 곳. 오픈 당시에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을지로의 서점이었다. 곧 문 닫을 서점 안은 스산했다. 불 꺼진 가게들과 출입금지 테이프. 한 곳에 앉아 사진 매거진을 좀 읽다 나왔다. 와중에도 곳곳에 마련된 소파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언제 문 닫아요? 다른 지점은 어디 있나요? 아. 아쉽네요. 매대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누군가 점원에게 묻는 소리를 몰래 들었다.

    일하던 회사의 부장님이 그 서점에서 찍어온 사진을 봤었다. 그게 몇 년 전이었더라. 일은 일대로 많고, 사람은 사람대로 어려웠고 퇴사할 땐 퇴직금 문제로 다투기까지 했던 회사였다. 그게 번아웃이었는지 우울증이었는지, 어떤 이름표가 맞는지는 몰라도 정상적인 상태는 분명 아니었어서 많이 울고 비쩍 말랐었다. 와, 그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때 그 서점이 문을 닫는단 말이지? 서점이 문을 열었다 닫는 사이 나는 회사를 두 번이나 옮겼다. 나오게 된 이유는 달랐으나 회사를 그만둘 때의 심정은 매번 비슷했다.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곧 문 닫을 서점의 주말처럼.



    일할 때 언제가 제일 재밌었어요? 새 회사 면접 때 대표가 내게 물었다. 답변하려 기억을 되짚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회사가 먼저 떠올랐던 거다. 재미보다는... 그 회사에서 일을 제일 많이 배웠던 게 기억납니다. 그럴 법 하다며, 대표도 그 회사를 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 회사를 알고 있는 건 대표뿐만은 아니었고 덕분에 몇 번 면접 제안을 받기도 했었다. 큰 회사도 아니었고 업계 사람들만 조금 알 만한 규모였는데도.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다가 몸과 마음 모두를 버린 사람을 그 회사에서 봤다. 그를 보면서 일이 사람의 일상을, 자아를 잡아먹는다고 생각했다. 그 '일'에는 실제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과 더불어 상대의 비언어적 행동 알아차리기, 상대의 생각 일단 수용하기 따위가 포함됐다. 일에게 먹히기 전에 도망 나왔으면서 아직도 그 회사를 생각한다니. 일이 이렇게 싫은데 또 잘하고 싶다니. 눈부신 커리어가 있거나 입신양명의 뜻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한 몸 건사하며 근근이 살고 싶은 게 전부인데도 말이다.



    브랜드 '모베러웍스'로 잘 알려진 모빌스 그룹의 책 <프리워커스>는 이처럼 상반된, 일하는 사람들의 두 마음을 담고 있었다. 이게 맞아? 아니 분명 일이 싫다며? 스몰 워크 빅 머니(Small work, Big money)라며? 후에 인터뷰 영상을 보니 모빌스 그룹 사람들은 그 아이러니를 인지하고 있었고, 그 마음은 내게도 비슷하게 있었다. 퇴사 전 열심히 일하던 설립 멤버들이 지쳐가는 과정이 특히 그랬다. 절이 싫어서 떠난 중의 모양새가 되었지만, 그곳에서 얻은 '일하는 감각'과 성취감은 지금 일하는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고.

https://youtu.be/s1Sdq36647o


    십여 년을 일한 회사에서 나온 동료들이 함께 회사를 설립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일한다는 현재진행형의 내용은 사실 특별할 것 없는 흐름이다. 퇴사하고 자아를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클리셰에 가까우니까. 그러나 본인들의 방식으로 일의 방식과 범위를 새로 정의하고, 그걸로 많은 사람들을 설득했다는 지점에서 마음이 동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로워할 메시지들이나,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엿보는 재미가 특히 쏠쏠했다.



    자본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를 초월한 시대라고 들었다. 코인 투자로 큰 성공을 거둔 익명의 누군가가 대기업을 퇴사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20대는 앞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울 거란 주장도 있던데... 그건 나를 포함한 어떤 30대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도 자본이 노동을 앞서는 세상은 분명히 이상하다. 일로써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죽기 전까지 무언가 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그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 따라서 하는 재테크 같은 형태는 아니었으면,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하면서 살 수도 있는 거였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에 맨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소린가 싶다.

    그러니까 일하며 스트레스 받으며 이렇게 살기는 너무 싫고, 내 맘대로 살면서 돈은 벌고 싶어. 그거 뭔지 알죠,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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