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비행체가 퇴각하자마자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나의, 그리고 우리 마법소녀들의 능력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필요로 했다. 엉망이 된 도시, 절망한 사람들. 우리의 희망으로서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첫 프로그램은 토크쇼였다. 얇은 반투명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하는 토크쇼. 무려 126명의 마법소녀들이 모두 한데 모였다. 나는 그 얼굴들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가장 맨 앞에는 하늘을 나는 걔, 가 앉았다. 걔는 끊임없이 생글생글 웃었고 토크쇼 중간의 장기자랑에는 섹시댄스까지 췄다. 아이돌이 꿈이었다고.
    나는 한 번도 이런 옷을 입고 사람들을 구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대부분 검정색이나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프릴이 가득한 블라우스나 치마를 입으면 무너지는 벽을 등으로 받쳐내기도 어려웠고 불타는 빌딩 창문을 기어 올라가 아이들을 구할 수도 없었다. 나는 뻣뻣한 프릴을 손가락으로 자꾸만 잡아당겼다.
    이런 사탕 껍질 같은 옷은 또 어디서 구해온 것일까. 거리의 많은 사람들은 이 겨울을 죽은 듯이 나고 있었다. 유이가 갇혔던 그 상가는 아직도 복구되지 못했다. 시체라도 찾아야 장례식을 하지. 담담하게 소방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돌들을 모두 들어 올리고 사이에 깔린 유이의 얼굴이 혹여나 너무 아프거나 슬퍼 보일까봐 나는 두려웠다.
    그때 갑자기 내가 처음으로 구했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이름도 모르는 그 할머니. 기절해버린 그 지친 얼굴만 떠올랐다. 어쩐지, 나와 너무나 닮아 보이던 그 쭈글쭈글한 얼굴. 그 얼굴은 판판해지면서 유이의 얼굴이 됐다. 유일하게 죽은 마법소녀. 숨이 막혔다. 가슴이 답답해서 얇은 블라우스 위로 힘주어 가슴께를 문질렀다. 내 옆에는 잔뜩 경직한 표정의     여자애가 나와 비슷한 모양으로 프릴을 돌리고 있었다. 여전히 하늘을 나는 걔가 눈물을 지으며 자신의 영웅적인 싸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 쟨 재밌나 보다, 그치.
    나는 목소리를 낮춰 내 옆의 애한테 말을 걸었다. 차라리 말이라도 거는 편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유이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보단 나았다.
    ― 그러게. 차라리 싸우는 게 편한데, 나는.
    나와 똑같은 생각. 나는 픽 웃으며 명찰을 보여줬다.
    ― 나는 선우야, 주선우. 열아홉.
    ― 나랑 동갑이네? 나는 승희야.
    승희. 승희는 대전 출신이었다. 성심당 알어? 하고 목소리를 낮춰 승희가 연신 물었다. 응. 그 옆에 우리 집이야. 그러니까 승희의 목소리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았다. 그럼 너네 집도 빵집 해? 아니, 우리 아빠는 선생님 해.
    ― 근데 원래 오늘 수능날인 거 알아?
    ― 진짜? 아, 맞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전부라고 엄마가 정해놓은 것, 수능. 갑자기 이렇게 변했구나. 나는 어쩐지 떫게 느껴지는 입천장을 자꾸만 혓바닥으로 눌렀다.
    ― 우리 대학 특례 입학 될까?
    ― 뭐?
    승희가 장난스럽게 눈을 굴리며 말했다.
    ― 그 정도는 해줘야 되지 않어? ‘지구 수비 특례 수시 전형’뭐 이런 거.
    ― 너 진짜 웃긴다.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승희는 그냥, 열아홉 같았다. 나를 ‘주선우’로 아는 내 친구들처럼. 나는 그날부터 토크쇼가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나와 승희는 언제나 같이 앉았다. 승희는 공격 편대였다. 땅이나 벽을 짚으면 무너지고 금이 갔다고 했다. 수비편대인 나는 초록색 치마를 입고 있었고 공격 편대인 승희는 진한 핑크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승희는 속편하게 ‘나는 웜톤이라 이런 건 안 어울려.’하고 인상을 썼다.
    ― 니가 신나게 부술 때 내가 그거 아래서 다 구하느라 미치는 줄 알았다.
    ― 그게 영웅의 역할이지.
    승희는 그런 이야기들을 상처받지 않게 잘 했다. 승희의 동그란 들창코가 들썩이며 말하는 순간. 나는 그 순간들이 좋았다. 어차피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카메라를 앞에 두고 우리는 매일 속닥거렸다.
    ― 언제 한번 대전에 놀러와.
    ― 대전엔 뭐 있는데?
    ― 다 부서졌는데. 그렇다고 뭐, 서울엔 뭐 있어?
    웃는 얼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우리에게 남은 건 폐허뿐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웃을 줄 아는 얼굴.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 천천히 나를 짓누르는 가슴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면 언제나 약국으로 돌아갔다. 약국은 여전히 집이 아직 수리되지 않은 사람들의 피난처로 쓰였다. 나는 그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누웠다. 폐허가 훨씬 더 편했다. 나는 허물어지는 중이었으니까. 물론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여느 날처럼 몰래 수다를 떨 때, 진행을 보던 사회자가 우리 둘을 콕 집어서 불렀다.
    ― 거기 수비 C조랑 공격 C조! 둘이 엄청 친하네요. 지방 방송이 너무 크다~

    사회자가 우리를 불렀다. C조라고. 인터뷰를 하고 있던 ‘하늘을 나는 걔’가 자신에게 쏟아지던 집중이 흩어지는 게 불만족스러웠던지 인상을 찡그리고 우리를 쳐다봤다. 승희의 얼굴이 빨개졌다.

    C조. 사람들은 나와 몇 명을 엮어서 ‘수비 C조’라고 불렀다. 그건 수비나 공격 편대처럼 우리가 만든 이름도 아니었다. ‘마법소녀’들은 A-B-C 등급으로 나뉘어 불렸다. 그 기준은? 당연하게도, 외모였다. 염색 한 번 하지 않은 새카맣고 부스스한 반곱슬 단발에, 상냥한 웃음 하나 지을 줄 모르는 나는 C조였다. 나는 애교스럽게 말하지도 않았고, 찰랑찰랑한 생머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사람들이 나를 C조로 분류한 이유는 내가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나는 엉망이 된 도시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보다 라디오에 나가고 토크쇼에 나가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물론 마법소녀들의 수가 많았으니까, 특별히 활약이 눈에 보이지 않던 ‘수비조’이자, 얼굴이 예쁘지 않은 C조인 나는 화면에 자주 비춰지지는 않았다.
    우습지도 않았다. 내가 구해줄 때는, 무너지는 벽을 막아주고 부러진 다리를 대신해 업어서 구해줄 때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가 고분고분하게 어른의 말을 듣고 애교스럽게 눈웃음을 지을 줄 모른다고 나를 C조로 분류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C조로 부르는 것은 괜찮았다. 내가 신경 쓰지 않을 거니까.

    아니,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자기들 멋대로 나를 희망으로 삼았다가 순위를 매겨 데뷔를 시키는 아이돌처럼 계단에 세워둔 것. 포장지 같은 옷을 입히고 외모 순서대로 앉히는 것. 나는 관심도 없는데 자꾸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나와서 희망의 마스코트 노릇을 시키는 것.

    다 괜찮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몰래 부르는 C조라는 호칭을 이렇게 앞에서 호령하듯 부르는 것은, 정말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승희가 애달프게 선우야, 하고 부르고 내 치마의 프릴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형편없이 뻣뻣한 프릴은 승희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성큼성큼 자리에서 내려와서, 사회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내 초능력은 없어졌지만, 몸으로 뛰고 무너지는 벽을 받치면서 생긴 근육은 그대로였다. 나는 생방송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그 날 이후로 ‘마법소녀-아이돌’편대에서 제명되었다.

    내가 사회자를 두들겨 패는 생방송을 대피소에서 고스란히 보고 있던 엄마는, 내가 돌아오자마자 그랬다.
    ― 주선우, 너는 어쩌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니.
    나는 엄마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면서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배급 상자에서 아무 빵이나 골랐다. 배나 채우고 싶었다. 크림빵 포장지를 뜯자 띠부씰이 툭 떨어졌다. 초록색 블라우스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찍은 내 사진.
    마법소녀 no.27.
    싸구려 금박으로 번쩍거리는 글씨. 어디에도 내 이름은, ‘주선우’는 없었다. 나는 그 스티커를 찢어버렸고 다시는 빵을 사먹지 않았다. 내가 보지 않으면 모두에게서 잊힐 것처럼 굴었다. 이다가 그 스티커를 다시 나에게 내밀기 전까지는.
    나에게 사인을 받아가며 웃던 이다의 얼굴. 폐허를 말하며 웃던 승희의 얼굴. 허물어지는 내 곁에는 언제나 그 허물어진 것들을 우스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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