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병원에서 오래 엄마를 간병하면서 알게 된 건, 병원에 있는 건 생각 이상으로 많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데 쓴다는 것이었고,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괴팍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꽤 노력이 필요하단 거였다. 장기 입원 환자들이 시시때때로 간호사를 호출해서 발이 시리다, 약이 제대로 투여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등등의 말도 안 되는 불평을 하는 것도 모두 시간을 보내는 방법들 중 하나였다. 
    이다도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별의별 방법을 써봤다고 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검정고시 공부를 했고, 겨울에 두를 목도리를 짜기도 했고, 유투브로 베이킹 기초 영상을 모조리 찾아보기도 했단다. 하지만 점점 뭔가 하는 걸 멈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퇴원할 수도 없었고, 겨울에도 병원에만 있으니 목도리를 두를 일이 없었고, 버터를 잔뜩 넣고 구운 크로와상 대신 간이 약하게 된 환자용 비스킷만 먹을 터였다. 죽음 외에 특별한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모든 걸 관뒀다고 했다. 시간이 너무 가질 않아서,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죽는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다의 몸 한 구석에 자리잡은 종양은 커지도 작아지지도 않았지만, 그만큼 같은 모양의 지루함으로 이다를 천천히 죽음으로 눌러 죽이고 있었다. 
    나는 이다가 그런 얘기를 할 때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럼 괜히 이다의 모자가 붙은 가발을 손가락으로 빗어서 꾹꾹 눌렀다.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는 건 너무 잔인했다. 이다는 그런 얘기를 하고 나면 턱짓을 해서, 너는? 하고 되묻곤 했다. 내가 뭘? 하고 물으면, 넌 그런 적 없어? 라고 다시 물었다. 그럼 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죽는 것 말고 기다리는 게 없었던 때를 이야기해야 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억지로 끌고 간 정신과에서 상담 한 번 하지 못하고 뛰쳐나왔던 때 같은 거.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그게 끝이야? 상담은 안 받았어?”
    가발을 손가락으로 빗겨주는 걸 가만히 받고 있던 이다가 고개를 휙 돌리며 물었다. 
    “어……어쩌다보니.”
    “지구를 구했는데, 복지가 너무 안 좋은 것 아냐?”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이 일에 이렇게 화내주는 사람이 처음이라,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다른 마법소녀들은, 그러니까 생방송에서 사회자를 쥐어 패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 마법소녀들은 ‘좋은 복지’의 혜택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다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꾸 마법소녀였을 때가 떠올랐다. 트라우마로 남았던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서투르고 세상이 너무 가혹해서 더 이상 오래 알지 못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유이의 얇은 목, 승희의 부드러운 뺨. 나는 그 얼굴을 떠올리면서, 내가 여전히 서투르고, 이 병원과 세상이 너무 가혹해서 이다도 오래 알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이다는 아무렇지 않은 척 굴고 있지만 사나흘만 있으면 엄마는 퇴원할 거다. 그러면 이다를 보러 병원에 올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죽치고 앉아서 이다와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고 손가락을 만지는 일은 할 수 없을 거였다. 엄마가 집에 버티고 있으니 나는 변변찮은 직장이라도 잡아야 할 거고, 정 안 되면 엄마의 약국에서 일손이라도 거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이다를 보러 올 수 없게 될 지도 모르고, 그럼 이다는 내가 아니라 내가 이름을 써준 증명사진과 조잡한 트레이딩 카드를 세워두고 다시 또 입을 꾹 다문 채로 죽음을 기다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찾아오지 않는 사이 혹시……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다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느리게 말을 꺼냈다.
    “너희 엄마, 곧 퇴원하시지?”
    “……응.”
    “그러면,”
    나는 이다의 다음 말을 알 수 있었다. 날 보러 올 거야? 그래도 병원에 와줄 거야? 이런 것 따위의 슬프고 힘없는 말들. 나는 이다가 환자라는 걸 애써 무시했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했다. 왜 나는 이렇게,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어찌 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렇게 오래, 자주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거지? 괜히 부아가 났다. 
    “……아무것도 아냐.”
    뜸을 들이다가 이다는 말을 관뒀다. 고개를 돌렸다. 이다의 무릎에는 보석 십자수가 놓여 있었다. 요즘 병원 안에서 시간 보내는 데 좋다고 유행인 아이템이다. 이다가 고른 판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한 장면이었다. 자스민 공주의 앞에서 양탄자를 타고, 손을 내민 알라딘. 내 손을 잡으라고, 내가 꿈을 이뤄주겠다고, 적어도 꿈을 꾸게 해주겠다고 하는 자신만만한 미소. 지금 이 순간도 적당히 그런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나면 끝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없어, 할 말.”
    이다의 목소리도 나를 따라 뾰족해진다. 이다는 고개를 돌려서 창문 밖을 쳐다봤다. 나는 그제야 이다의 옆얼굴을 봤다. 그 와중에도, 잘 먹지 못해 말라도 강퍅해 보이지 않는 얼굴선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푹 파인 볼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이다는 나에게 자신을 보러 와달라는 말을, 그 가여운 부탁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널 보러 올게. 너의 얼굴을 보고 너의 목소리를 듣고 너의 가발을 손가락으로 빗기러 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만약에 내가, 또 비겁하고 게을러져서 그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이다가 나를 미워할까봐 그런 말을 못 했다. 지금 이렇게 못되게 구는 게 더 미움받을 일인데. 
    “이다야.”
    “너희 엄마가 부르셔.”
    아닌데. 우리 엄마 지금 자는데. 하지만 이다는 엄마가 부르신다고. 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깨의 모양대로 툭 튀어나온 이불 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알았어. 자.”
    나는 이다의 침대등을 껐다. 저 안에서 이다가 울고 있을까 봐 나는 급하게 커튼을 쳤다. 마음이 목 아래까지 부풀어 올랐다. 나는 부어오른 마음을 꺼뜨리려고 몇 번이나 숨을 참았다가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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