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빛나는 아침이여

오, 빛나는 아침이여 

 

오, 하루의 청춘인 빛나는 아침이여

그토록 긴 밤을 보내고 다시 만날 황금빛 오전을 위해

윙윙거리고 활기찬 말벌처럼,

따스하게 자연을 쏘아 올리며 놀라는 아침이여.

 

멋들어진 장미들과 허브들이 파티하는 아침은

민첩한 바람에 웃고, 

두 눈처럼 뜨인 빛나는 수풀 속에서 

차분한 밤이 되기까지 꽃들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하루의 시선.

 

수증기와 숨결과 빛을 뒤섞으면서

무구한 분위기 속에서 뛰노는 기분 좋은 희망의 시간

하얀 새벽이 떠오르는 풀로 뒤덮인 언덕에서

수북한 토끼풀들이 그들의 귀뚜라미에게 노래를 시키는 곳 아래에서.

 

생명수를 머금어 완전히 촉촉해진 아름다운 시간

바다가 적셔 떨리는 태양빛

움직이는 나뭇가지들 속에서 느닷없이 깨우네

아침 새들이 즐겁고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를.

 

건강하고 화창한 순간, 아 새로운 소생,

백리향 위 말벌의 즐거운 휴식시간.

친애하는 아침이여, 당신은 멀리하죠

죽음, 그림자, 정적, 폭풍우, 피로와 두려움을...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o-lumineux-matin.php

 

민 주

아침의 조각들

*

    아침은 웅장해지는 시간이다. 어쩌면 아침보다도 아침 맞을 준비를 하는 밤이 가장 고조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낮보다 시원해진 날씨에 한숨 돌리면서 다이어리를 쓰는 행위는 나를 계획적이고 철저한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해 뜨는 시간은 5시 반 즈음이고 세 시간 안에 기온은 30도까지 치솟으니 바삐 움직이기로 한다. 다이어리 속의 나는 5시 45분에는 고양이 세수를 하고 정수리가 뚫린 캡 모자를 쓴 채 호수공원을 향해 뛰고 있다. 인위적인 소리를 멀리하고 싶은 마음에 음향기기는 두고 나가는, 새 소리가 익숙한 사람. 너무 헐벗은 거 아니냐고 질책하는 눈알들을 가볍게 무시한 채 브라탑과 반바지를 입고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스트레칭 하는 사람... 수면 패턴을 관리해주는 스마트폰의 알람시계는 그만 자라고 말한다. 날이 더우니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지 못했다. 기상 시간은 7시. 해가 이미 뜨거워 보인다. 아몬드 브리즈와 그래놀라를 자양강장제처럼 목 속에 털어놓고 나와보니 살이 이렇게 따가울 수가 없다. 요새 들어 좀 많아진 것 같은 아스팔트 위 풍뎅이를 바라보며 걷는데 어제 본 면접이 떠오른다. “MBTI가… 어떻게 돼요?” 다행히 이번 면접에서는 MBTI의 덕을 본 것만 같다. 면접관은 내 성향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겨울의 어느 면접에서 회사 대표는 내 자기소개서를 읽고 본인과 내 유형이 같을 거로 생각했는데 대면 면접을 하니 다를 거라는 감이 바로 왔다면서 칭찬인지 평가인지 모를 싱거운 말을 몇 마디 했다. 들었을 때 묘한 말은 희한한 의도로 시작됐으리라. 면접 결과로 반추해봐도 과연 그러했다. MBTI 결과대로 난 참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고 만족을 모른다고 생각을 하며 땀을 닦았다. 풍뎅이가 푸드떡 내 콧잔등 쪽으로 날아오르자 상념도 끝이 났다. 잘 놀라는 편인 나는 꽥 소리를 질렀고 밤의 상상과는 다른 상황으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오늘은 계획에 없었던 동네 뒷산을 올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뒷산은 거의 동산이어서 오르는 데에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화끈한 오르막과 속 시원한 내리막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나무 층계를 오르는 동안에는 숨이 차지만 나무가 워낙 많아 구워지는 느낌도 없었다. 초록 차양 아래에서 숨을 후후 내뱉으니 매일 이곳에 출석하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마침 올림픽 기간이니 과몰입 운동법을 적용하기로 한다. [나는야 태권도 고수. 20년 전에 여성 전용 태권도장을 차리고 인기리에 운영했지만 무언가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이 동산 근처에서 밤낮으로 수련하는….] 이러한 망상이 올림픽과는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발이 빨라지고 심장 박동 수가 치솟고 땀이 비 오듯 난다는 점에서 오늘 아침 운동은 성공이다. 머리를 비우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하루의 활력소. 많은 경우 나는 멍 때리는 경우가 없고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엉뚱한 상상을 한다. 그리고 이 상상은 일상에 있어 게랑드 소금이나 히말라야 핑크 소금 같은 조금은 특별한 조미료가 된다.

*

    인생의 아침, 인생의 청춘, 인생의 젊은 날, 인생의 봄. 이 시기는 언제인지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좋은 날’로 통용되는 이러한 단어들을 입에 딱 익는 나의 말이라고 느끼며 써본 적도 없는 것 같다. 10대 때는 연장자가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야. 25세가 지나면 쓸모없지.”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도 ‘그런 말도 있구나…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생각했지 면전에 대고 “웩! 토 나오는 한 마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응수할 생각을 못했다. 아니면 진짜 토를 해볼 걸 싶다. 10대니까 봐주지 않았을까? 정말 아깝다.

    나는 MZ세대로 라벨링 된 나이인데 밀레니얼 세대보다는 젊다고 느끼지만, 이걸 겉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굳이 표현할 필요도 없으며 그렇다고 Z세대와 완전히 통하냐고 묻는다면 테슬라 옆에 주차된 황색 마티즈가 연상된다. 그런데 또 밀레니얼 세대 언니들이 고루하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나같이 핵 끼인 세대가 오히려 고여 있지 M세대 언니들은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아이도 키우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핵 끼인 세대’라는 표현은 한 평론가 언니가 명명한 것으로 딱 나 같은 생각을 하는 M세대 막내 나이들에 쓰면 제격이다. 실제로 그렇다. 빠른 연생을 비롯해 나와 출생도를 공유하는 친구들은 기업 공채를 이미 몇 년도 전에 통과해 대리나 사원인 그룹과 팬데믹 시기에 적응하며 프리랜서로 n잡을 하면서도 상근직 지원서를 계속 쓰는 그룹으로 양분되어 있다. 고용 시장이 언제나 안 좋았던 것 같지만 우리 핵 끼인 세대들은 좀 나았던 시기와 나빠진 시기 사이에 딱 끼어서 자신을 끊임없이 다독이는… ‘겉늙속으앙(겉은 늙어가나 속은 으앙 울며 한없이 자신을 다독이는 서투른 사회 초년생)’으로 진화한 것이다.

    GNSEA(겉속으앙) 세대는 몇 년 후 MZ세대의 하위 목록으로 편입하는 신조어가 되는데, 이들은 대체로 불만이 많고 꼰대를 싫어하며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제도에 편입해서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과 사회를 바꾸고 싶은 정의감이 투철한, 자신의 적극성을 드러내는 데에 수줍은 집단이라고 평가된다. (예상)

내 나이가 너무 좋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이나 사회현상 해석의 일환으로 이름 붙인 세대 명에까지 불만을 늘어놓았다. 역시 난 GNSEA~!

    한 손에는 강아지 줄, 한 손에는 아빠 손을 잡고 아침 산책을 다녀온 엄마가 “늙은이를 틀딱이라고 부른다던데. 당신 자꾸 이상한 말 하면 틀딱임.”이라며 웃고 아빠는 약간 열받은 채로 아니라고 하는 모습을 보는데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선생님처럼 거들어도 틀딱이라는 말에 자조와 해학을 섞어서 장난을 치는 모부님 목청에 묻히고 말았다.

*

    로즈 와일리라는 현대미술 작가의 전시가 집 근처에서 열린다고 해서 친구들을 소집했다. 도서관에 다녀오다가 우연히 전시 책자를 발견한 것인데, ‘할머니 화가’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나처럼 박막례 할머니 등 여러 멋진 분들을 인생 스승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할머니라는 말만 보고도 전시 갈 날짜를 정하지만 동시에 왜 굳이 할머니라는 단어로 홍보를 해야만 했는지 필요 이상으로(사실 적당하고 응당하다고 여기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굳이 여성임을 밝힌 ‘여제’, ‘여장부’ 등과 의존적인 표현인 ‘누구 여친’, ‘누구의 딸’, ‘누구 엄마’, ‘누구 부인’이라는 말은 위대한 개인의 성취를 격하하고 성공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거나 미쳤더라도 시원하게 타파해버린 신상 정보를 쉽게 접근 가능한 가십의 영역으로 끌고 내려온다. 나는 은근히 짜증스러워하며,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손흥민 그림도 그렸대] 축구를 좋아하는 작가는 경기를 관람하다가 그 재미의 에너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역시 책자에 써진 정보였다.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손흥민이라는 이름은 당연히 알거니와 무언가에 자극받으면 창작욕이 불타는 느낌도 공감되어 친구들에게 말하게 된 것 같다. 이 정보는 합격이군.

    막상 전시장에 가보니 작품들은 기대보다 더 좋았고 위트 있으며 밝았다. “나이로 평가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작가 소개에 크게 적혀 있었다. 전시의 마지막에도 불만스러운 문구가 “현대미술의 이단아”로 바뀌어 있었다. 더 좋고 더할 나위 없는 멘트 선정에 기분 좋게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40대에 미술 학위를 받고 70대에 유명해지고 80대에 전성기인 로즈 와일리의 경력에서 ‘전형적인 봄’, ‘제때의 청춘’ 등을 짚어낼 수 있을까? 매일 밤잠을 자고 해가 뜨면 깨어나는 따뜻하고도 치열한 시간을 우리는 보내고 있다.

 

작가 소개

안나 드 노아이유 Anna de Noailles (1876~1933)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1901년 출간한 첫 시집 『헤아릴 수 없는 마음 Le cœur innombrable』 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집 『사랑의 시들 Poèmes de l'amour』(1924)을 비롯 소설과 자서전을 남겼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이 불발되자 여성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페미나 문학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이후 프랑스어 문학을 드높인 공로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내 최고의 명예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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