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한 노래

열렬한 노래

 

애정이 담긴 기타 연주, 정열적인 노래는

관능과 우수, 힘에 눈물을 흘립니다,

햇볕에 나무껍질과 잎사귀가 그을린 나무 아래에서,

낮고 뜨거워진 집 담벼락 앞에서.

 

줄기 위의 꽃들이 살랑거리듯

욕망은 넘실넘실 바람에 몸을 흔들고,

한탄하고 몽상에 잠겨 오던 영혼은

희망과 기대, 아찔함에 죽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아, 온화하고 청명한 창공이 어찌나 황홀한지!

나의 사랑, 숨을 골라요, 훗훗한 돌풍 속에서

경쾌한 매미 울음소리를 이끌어내는 음악 속에서,

공기 중에 흩어지는 꽃가루처럼 흐르는 노래 속에서.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la-chaude-chanson.php

 

다은

    여름이 견디기 어렵게 더워졌다.
    덥다고 느끼기도 전에 솟구치는 습기가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보니 여유롭게 해를 쪼이는 여름은 이제 없는 걸까. 온열 질환을 피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 에어컨. 기계의 쾌적한 공기를 누리기란 그 잔악성에 비해 너무도 손쉽다. 불같은 더위도 버튼만 누르면 ‘해결’이니까. 애써 땀 흘리고 있는 사람들을 우습게 만든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보내야 하는 도시도 있는데 서울은 참 편리하네.

    2019년도 여름에도 프랑스는 기온이 최고치에 달했다. 역시나 기후위기 때문이었고 파리를 포함한 도시들의 기온이 40도에 임박, 일부 남부지역은 46도까지 도달하여 온열질환자에 대한 기사로 가득했다. 뉴스를 전해들은 친구들과 모부님이 내가 쪄 죽을까 걱정 어린 연락을 해왔지만, 북부인 파리마저도 너무 더운 탓에 '괜찮아^^'는 나오지 않고 '어…. 덥지…. 근데 그거 알아? 여기는 에어컨도 없어….'라고 자조적으로 답했다. 프랑스에서는 에어컨이 없는 것이 기본값이라는 것, <현대 문물에 흠뻑 젖어 살던 내가 아날로그적인 파리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 1>이었다. 프랑스의 여름은 본래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온이 많이 오르지 않고 건조한 덕에 그리 덥지 않은 계절이었기 때문이었으나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폭염에 대한 대비가 한참 부족한 것을 실감케 했다. 도시 계획 때부터 파리를 채웠던 오래된 집들은 상수도 공사마저도 절차가 복잡한데, 설치비도 비싼 에어컨이 흔할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인지 가정집에서는 이동식 에어컨이 드문드문 보이는 수준이었고 별이 몇 개 달린 호텔마저도 에어컨이 없기 일쑤였다. 그렇게 견디지 못하게 더운 날이면 사람들은 일제히 에어컨 설정 온도가 18도인 듯한 스타벅스로 피신했다.

    마침 면접도 약속도 없던 어느 날도 태양이 뜨겁게 내리꽂혔다. 몸이 해에 달궈지는 감각을 즐기던 나지만, 새어 들어오는 빛마저도 피하고 싶어져 바람 통할 만큼만 커튼을 걷어내 집을 암실처럼 만들었다. 찬물 샤워를 하고 그대로 좁은 이층 침대에 드러누웠다. 벌써 새어 나오는 땀이 매트리스까지 스미는 것을 느끼고 있으려니 절망스러웠다. 이러고 있을 거면 뭐 하러 프랑스에 왔어?
    무기력이 발목을 잡던 시기였다. 두 번째 집이 있던 파리 15구는 있을 건 다 있는 편리한 동네였다. 골목에만 나가면 에펠탑 머리가 보였고 조금만 걸으면 10호선 샤를 미셸역, 조금만 더 나가면 보그르넬 쇼핑 단지와 마트, 영화관 각종 상업시설이 모여 있었다. 센강마저도 가까워 정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동네였지만, 애쓰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이 되려 새로 떠날 동력을 소멸시켰다. 마음먹고 샤틀레까지 쎄베*를 돌리러 나간 날에는 집에 돌아오느라 지쳐서 며칠 동안 밖에 나가는 일을 미뤘다. 그 여름날 끈끈한 더위는 집을 나서 파리를 돌아다니며 축적한 황당한 순간을 끌어 모아 내게 붙였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들, 주머니를 털려는 집시 서명단, 멋대로 인사하고 말을 거는 중년 남성들, 쎄베를 돌리러 들어간 매장의 직원에게 서린 의아함, Dan이라고 말해도 Tai라고 적힌 음료를 주는 스타벅스.
*이력서를 뜻하는 CV의 프랑스식 발음.

    부정한 생각들을 떨쳐내고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꺼낸 물병을 껴안고 누웠다. 누가 뭐래도 오늘 침대 밖으로 안 나갈 거야. 하마터면 '오늘 헛되게 보냈네.'하는 죄책감의 음성에 '회피적인 내가 답답해.'하고 응할 뻔했다. 내가 나한테 왜? 잘 알면서도 한 번씩 헤맨다.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사이에서 마음을 안정시킬 시간과 스트레스를 흘려버릴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면 나의 자아이고 신체인데도, 자신의 상태를 돌보고 기다리는 시간에 박해진다. 세상이 돌아가는 시간에 맞춰 “정상인”으로 보여야 한다고 몸과 마음을 학대한다.
    외딴곳에 서면 늘 불안함이 솟았지만, 그때마다 머릿속에 음성을 만들어냈다. '어차피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 여기까지 왔잖아. 이미 너는 “정상” 궤도에서 틀어질 만큼 틀어졌는데, 뭐 어때. 너는 너의 페이스를 잃지 말아.' 꼴사납게 늘어지던 날이었지만, 그다음에는 움직일 힘이 충전되었다.
    올해 서울의 여름도 파리에서 선풍기만으로 폭염을 버티며 보내던 것만큼이나 덥다. 서울의 집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실내의 공기를 시원하게 하고자 바깥으로 열을 뿜어내는 잔인한 방식에 질려 리모컨을 치워버렸다. 얼마 못 가 고양이 동생 옥희가 바닥에 녹아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결국 에어컨 스위치를 누르고 말았지만. 인간이 이끌어낸 결과로 너의 보드라운 털이 버거워지는구나, 너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다시 더위가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언제부터 이렇게 더워졌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할 때임에도 눈을 돌리는 게 참 인간답네.'
    이제는 행동을 해야지. 마음이 조금 개운해진 것 같은데 이제 일어날까?

 

작가소개

안나 드 노아이유 Anna de Noailles (1876~1933)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1901년 출간한 첫 시집 헤아릴 수 없는 마음 Le cœur innombrable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집 사랑의 시들 Poèmes de l'amour(1924)을 비롯 소설과 자서전을 남겼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이 불발되자 여성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페미나 문학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이후 프랑스어 문학을 드높인 공로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내 최고의 명예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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