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드는 밤에

내가 잠드는 밤에

 

 

내가 잠드는 밤에, 그리고 무용한 하늘에 

세상의 텅 빈 아름다움이 감도는 밤에,

도시의 어둡고 높은 집들이

숨결이 사라진 묘비들처럼 평온할 때,

 

용해된 죽음 앞에 이제 불공평한 차이란 없어

나의 영혼 없는 이마와 너의 파괴된 육체,

그리고 별다른 것 없는 최후와 음울한 똘레랑스 사이에도.

침대들의 침묵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원문: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la-nuit-lorsque-je-dors.php

 

    죽음을 이야기할 때 평온한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크루엘라>의 에스텔라는 웃는지 우는지 구별이 안 되는 표정에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으며 모종의 목표를 이뤄줄 의상 디자인에 매진한다. <블랙 위도우>의 나타샤는 어두운 전투복을 차려입고 양손에는 무기를 든 채 빌딩숲과 심지어는 다른 행성을 누빈다. 각각의 세계관에서 두 캐릭터는 확실히 비장하고도 비범하지만, 적보다 먼저 죽지 않기 위해, ‘너와 나’를 위해 기꺼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모습에서 잔잔함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용해된 죽음’은 약속된 죽음이다. 누구에게나 차이 없이 주어지는 이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죽음으로 가는 길을 내딛는 사람의 발걸음으로만 꽉 채우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어떤 여성들에게는 이 일이 몇 배는 더 어렵다. 잘 살다가 잘 죽기. 위협과 한계와 혐오라는 단어를 모르는 생활 방식. 군더더기 없이 그냥 좀. 잘 지내기. 이를 악물고 살지 않아도 되고, 볼멘소리하면 편하게 살라고 세상이 비켜주는 상황일 때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많은 인물이 너무 많은 방해를 받으며 살아간다.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에도 많은 죽음이 나온다. 소문과 유령으로 학교를 떠도는 이미 죽은 사람, 죽을 만큼 힘든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나온다. 교감(김서형 분)은 잊힌 과거의 기억으로 현실과 환상과 악몽 사이를 오가는 인물이다. 그의 삶은 고등학교 시절 이후 줄곧 악몽이었고 이대로 죽는다면 죽음이 아니라 악몽에 침수되는 일로 보였다. 그가 이끌리듯 모교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학생들을 구하고 자신도 구하기 위함으로 묘사된다.  N번방 범죄가 연상되는 가해자의 행각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제 있었지만 잘 조명되지 않았던 피해 유형이 서사에 등장해 슬픈 공포를 배가한다. 직접 영화를 관람하면서 처음에는 단지 무서움만으로 오싹해하던 몸이, 후반부로 갈수록 서럽게 끔찍해서 닭살이 돋았다. 김서형의 노래가 나오는 엔딩크레딧을 보며 실제로 당시 광주에서 여학생들이 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동행에게 들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영화 정보 페이지에 들어갔는데 남성 관람객 별점이 10점 만점에 3점대, 여성 관람객 별점이 6점대로 2배에 가까운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닌가. 여성 중에도 교장, 선생, 학생들이 다채롭게 악하게 등장하기도 했는데, 남자를 너무 악마화했고 서사가 단순하며 그 와중에 현재 진행형인 이슈들을 녹여서 몰입을 해친다는 내용이 낮은 평점의 댓글로 달려있었다. 글쎄, 고통받는 여성들이 서로를 구하려고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싸우는 이야기가 내게는 공포이고 현실인데. 누군가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눕던 자리를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고요함을 생각하는 죽음이 가능하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싸움을 하는 사람도, 그 싸움의 혜택을 받는 사람도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에 빠져서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기본이라면… <내가 잠드는 밤에>는 <여고괴담>보다 더한 판타지가 아닐까? 죽으면 다 똑같다는 말을 노아이유 작가도 한다. 살아도 다 똑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다.

 

 

글 | 민주
그림 | 다은

 

작가 소개

 

안나 드 노아이유 Anna de Noailles (1876~1933)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1901년 출간한 첫 시집 『헤아릴 수 없는 마음 Le cœur innombrable』 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집 『사랑의 시들 Poèmes de l'amour』(1924)을 비롯 소설과 자서전을 남겼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이 불발되자 여성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페미나 문학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이후 프랑스어 문학을 드높인 공로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내 최고의 명예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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