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하늘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하늘에 무지개가 예쁘게 떠 있었고, 평소와 달리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카메라 셔터음이 많은 걸 눈치 채고 버스 기사님이 잠시 버스를 세웠다고 한다. 승객들은 무지개를 감상하거나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찰나였지만 모두가 마음에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가졌다는 기사였다. 기사를 읽자 내 딱딱한 마음이 말랑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기뻤다. 내가 하늘을 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그래야한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은 역 근처에 위치한 높은 빌딩 중 하나로 한 면이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해가 지는 것도 매일 구름의 모양이 다른 것도 비가 올 때의 하늘이 어떤지도 관찰할 수가 있는데, 문제는 그걸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에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잠깐 휴식을 취하려 해도 마무리를 해야 하는 일이 머릿속에 있다 보니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날씨가 어떤지 구름 모양이 어떤지 하늘의 색은 어떤지 잠시 잠깐 숨을 돌리는 것도 불가능할 만큼 매일 일이 많다. 전 직장은 관광지 숙박시설 프론트 사원이었기에 노을이 끝내주게 예쁜 곳에서 일했어도 막상 제대로 하늘을 감상한 날은 적었다. 늘 건물 입구와 엘리베이터에 시선이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타이밍에 손님이 들어올지 모르고 프론트에 찾아올지 모르니 밖 경치가 아니라 ‘사람’만을 바라본 날이 대부분이었다.

    하늘을 자주 바라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중 정적인 찰나를 만들 수 있어서다. 창을 열어 집 안 공기를 환기하듯, 하늘을 바라보며 그 풍경에 집중하다 보면 내 안에 쌓여있던 많은 감정들이 터져 나오듯 밖으로 빠져나가 맑은 정신을 회복하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하늘을 바라봄으로써 말라가던 감정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일터에서는 하루 종일 모니터만 쳐다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일 이야기만 주고받고 야근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한다. 마치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병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하늘을 바라보면 메말라가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식물에 물을 주듯 넌 인간이라고, 감정을 가진 존재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그렇게 인간다움을 회복한다. 

    세 번째 이유는 안정감을 느껴서이다. 하늘은 그 존재 방식에 인위적인 것이 없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이해타산적인 요소가 전혀 없고 고개를 들면 늘 그곳에 있다. 나에게 명령하지도 않고 강압적이지도 않다. 나를 기다려주고 나를 바라봐준다. 내 편이라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네 번째 이유는 비밀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너무나 속상한 일이 있던 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상황에 여유가 없을 때 하늘에게 말한다. 남에게 이야기하기에는 비참해서 속으로만 곱씹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이기적인 것도 알고 잘못한 것도 알지만 인정하기는 싫을 때도 털어놓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다섯 번째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시멘트 건물 안에서 철로 만든 교통수단을 타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옷을 입고 고무로 만든 신발을 신고 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유화 같기도 때로는 수채화 같기도 하다. 세상에 빨주노초파남보만이 아닌 색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준다. 존재 자체가 아름답다.

    그런데 만약, 하늘을 쳐다보지 못한 날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그것에 무뎌지면 나는 어떤 내가 되어있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어쩔 수 없었으니까, 라며 상황 탓을 하고, 나중에 보면 되지 뭐, 라며 미루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나를 좋아할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어쩌다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진 않을까? 내가 싫어지면 어떡하지. 혹여나 인간으로서 소중히 해야 할 무언가를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기사님은 일어나서 사진을 찍는 승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어떻게, 차 좀 세워드려요?”

    버스 기사님이 존경스럽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든 말든 상관 말고 마포대교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셔터음으로 승객들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버스를 세워 모두의 기억에 남을 일을 만들어낸 그분의 마음씀씀이에 감동받았다. 그리고 기사님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수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나 제안하는 말의 내용이 일상의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용기가 필요하다. 혹여나 기사님의 좋은 의도와는 반대로, 가는 길이 바쁘다고 빨리 출발하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쉽게 찾지 않는 울퉁불퉁한 길을 걷기 쉬운 길로 만드는 여정은 당연히 너무나 고되고 길다. 하지만 뒤를 돌아봤을 때 펼쳐질 광경을 마주한 때, 또한 그 길 위를 걷고 있을 누군가를 만나게 된 때 마음은 저절로 뜨거워질 것이다. 

    다시 다짐을 한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자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감정을 메마르게 하는 일 천지인 세상 속에서 내 뺨을 내려쳐서라도 정신에 힘주고 살아가자고 다짐을 한다. 그러니까 하늘을 보자. 계속해서 하늘을 보자.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을 다시 깨닫기 위해서, 각박한 일상 속 잠시나마 숨을 돌리기 위해서 말이다.

 

참고기사: “마포대교 무지개 찍으세요” 버스 세운 기사님[아살세]-국민일보 (kmib.co.kr)

 

“마포대교 무지개 찍으세요” 버스 세운 기사님[아살세]

연일 폭염에 이따금 호우주의보까지 내려지는 여름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미친 듯이 쏟아졌던 소나기가 지나가자 찾아온 깜짝 손님이 있었는데요.

new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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