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밥의 기억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 가스레인지 켜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계란 하나와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두었다. 나는 왼쪽, 엄마는 오른쪽에 서 있었고 먼저 스위치를 잡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내 손 위에 엄마 손이 포개졌고 돌리는 법을 배웠다. 이때 내 손을 쥐던 엄마의 힘은 무척 강했고 그래서 내심 놀랐던 기억이 있다. 힘을 조금 주고 돌린 다음 몇 초가 흐른 뒤 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불 조절을 하면 된다고 끄는 법은 쉽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식용유를 두른 팬에 계란을 올렸고, 계란프라이는 그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만든 요리가 되었다. 그 생애 첫 요리의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을 다루는 것이 살아생전 처음이었기에 무척 긴장하고 두려웠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겁이 났던 탓에 힘 있게 돌려야 했던 스위치를 난 아주 조심스럽게 돌렸고 탁탁탁 거리는 소리만 엄마와 나 사이에 한참 동안 흘렀다. 이러면 퓨즈가 고장이 난다고 주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든 요리는 라면이었다. 냄비에 넣는 물의 양과 불을 켜고 끄는 법을 반복해서 배웠다. 밥상에 수저와 그릇을 미리 준비하는 것과 끼니를 때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두 사람은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밥은 항상 찬밥이어서 데워 먹는 것이 당연했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서 먹는, 반찬이 정해진 식사를 자주 했다. 매일 같은 반찬을 먹었던 탓일까 나는 그것들을 섞어 비빔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칼을 사용하기에는 무섭고 불을 사용하는 법 또한 모르니 직접 요리를 하기는 어려워, 손쉽게 쓸 수 있는 가위를 이용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막 섞기만 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다가 나중에는 요령 하나를 터득해 동그랗게 주먹밥을 흉내내서 만들어 먹었다. 할머니집에 가서 참기름의 존재를 배워 와 참기름을 넣어 만들기도 했다. 만들어 먹기 시작하자 조리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 뒤부터 엄마와 할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할 때면 옆에 서서 눈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칼질을 배웠다. 칼을 쥐는 올바른 방법과 손이 다치지 않게 써는 법을 먼저 배웠다. 익숙하지 않던 탓에 검지뿐 아니라 검지로부터 이어지는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던 기억이 난다. 물론 피도 몇 번 봤다. 심하게 다친 적은 없었지만 자주 베인 뒤에야 내게 편한 사용 감각을 익혔던 것 같다. 이렇게 쥐어야 하는구나, 이 속도로 썰어야 내가 안심하고 계속 썰 수 있구나 하는 감각은 꽤 나중에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하루 종일 학교에 있었기에 요리를 할 시간이 없었고 대학교에 들어가 방학이 되어 그 당시 제일 좋아했던 올리브 티브이에서 하던 요리 방송을 보게 된 것이 보다 더 어려운 요리의 시작이었다. 감자 대파 수프를 만들거나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먹었다. 한식에만 사용하던 대파를 수프라는 서양 요리에 넣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가게에 가서 먹던 까르보나라라는 요리가 생크림을 이용해 만들어진다는 것도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과하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내심 만족해하고 기뻐하던 엄마의 얼굴과 묵묵히 많은 양을 먹어준 동생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렇게 밥의 기억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살려고 해먹는 밥과 호기심에 만들어 먹는 밥의 비율이 반반 정도. 얼마 전에는 양하의 깔끔하고 가벼운 식감에 빠져 샐러드며 찌개며 온갖 요리에 양하를 넣어 먹고 있다.

    그리고 밥 이야기의 하이라이트. 밥을 먹고 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설거지다. 설거지라는 것이 가사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확실한 노동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고등학생 때이다. 명절이면 모이는 가족들의 삼시 세 끼 식사 후에 주방으로 몰려 들어오는 그릇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시집가면 많이 하니까 벌써부터 하지는 말아라. 시집이란 제도는 제쳐 놓고 그저 눈앞에 놓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인인 할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혹은 며느리가 되는 사람들이 하고) 가장 젊은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고부간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도 싫어 고무장갑을 뺏어 들고는 ‘그냥’ 내가 했다. 왜 그 어느 누구도 (그러니까 우리가 아닌 그들 중에, 심지어 아빠조차) 주방에 오지 않았을까. 주방은 눈에는 보이나 건널 수 없는 섬 같았다. 하지만 딱 한 발 뛰기면 될 거리였는데 십 몇 년의 시간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누구도 건너온 적이 없다. 그 점이 나를 굉장히 무력하게 만드는데 그와 동시에 무척 허탈하다 보니 그저 웃음이 나온다. 설거지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그들에게 감정을 토해버린 걸 보니 당시에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안에서 해소가 되지 않았나 보다. 아마 아무 힘이 없어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느낀 무력감과 부조리함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기에 나 또한 방관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죄책감을 어린 시절 내내 반복해서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설거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기 전에는 정말 하기 싫다가도 막상 해내고 나면 설거지만큼 뿌듯한 일이 없다. 텅 빈 싱크대를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다음날 아침 물기 없이 말라있는 싱크대를 보면 전날의 나를 칭찬하며 자기애가 샘솟는다. 그래서 자기 전에는 꼭 설거지를 한다.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고 설거지를 끝내고 바로 눕는 보상을 자신에게 주기도 한다.

    지금 이렇게 요리를 좋아하게 된 것은 분명 가스레인지 켜는 법을 배웠던 그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때 여자가 시집을 가면 밥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혹은 여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이유로 요리를 배웠더라면 지금 이 정도로 요리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나는 분명 반항했을 것이고 그럼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엄마가 없으면, 하는 전제로 시작되는 이유를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 해야 한다는, 무게감과 의무감이 듬뿍 담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큰 거부감 없이 요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 어떤 이유도 덧붙이지 않은 채 덤덤하게 요리를 가르쳐 주어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다시 부엌에 선다. 나는 먹고 살아야 하고 반면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싶으니까. 저녁은 돼지고기 목살과 양하, 낫또를 가지고 요리를 해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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