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인의 얼굴을 보고 있는지 내 얼굴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 슬픔을 건너는 법: 윤목 (연재종료)
- 2021. 9. 30. 00:10
자조모임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색의 팔찌다. 각 색깔은 고인과 사별자의 관계를 상징한다. 고인이 자신의 형제자매라면 주황색을, 애인이나 파트너라면 빨간색을, 친구라면 보라색을, 부모라면 흰 색을 착용한다. 이렇게 팔찌를 착용하는 이유는 고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가 애도의 모습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모든 죽음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숙제다. 그런데 이 팔찌 색깔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간에 긴장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나도 2년 넘게 매달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말하는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해결되지 않은 내 안의 문제들 때문인 경우가 많다.
몇 달 전에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 고인의 친구를 의미하는 보라색 팔찌를 찬 분이 모임에 참석했을 때였다. 우리 모임은 자살 ‘유가족’이 아니라 자살 ‘사별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임으로, 법적인 가족이 아니더라도 고인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가족보다도 더 가깝고 사랑했던 친구와 애인도 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별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모두의 슬픔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충분히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할수록 느끼는 것은 가족과 친구가 마주한 문제가 아주 다르다는 점이다.
가족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 예컨대 상속, 빚, 장례식 처리 등을 두고 갈등한다면, 친구들은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고인과 관련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어 소외되고 갈등한다. 친구들은 장례식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초대받는 사람이고, 장례식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 경우에는 마지막 인사조차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자살로 사망한 젊은 사람들에게 삼일장을 해주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가족들은 누가 친구인지 잘 몰라서 부고를 돌리는 것도 쉽지 않다. 내 경우에는 동생이 죽은 날 밤을 꼴딱 새고 컴퓨터와 핸드폰 비밀번호를 알아내 카톡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부고를 썼다. 본인의 카카오톡 아이디로 도착한 부고를 장난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답장으로 욕설을 받기도 했다. 내게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욕설에 상처받았고 답장할 수 없었다. 내가 답장하지 못한 사람들 중 몇몇은 단체를 통해 부고를 전해 듣고 장례식장에 오기도 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참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들이 장례식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친구들은 가족이 모르는 고인의 삶의 어떤 면을 알고 있고 더 직접적인 애정을 주고받기도 했을 것이다. 우정이 주는 친밀함은 가족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생겨나기도 한다. 가족 안에서 경험한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가족에게 분노하면서 우정은 깊어진다. 이것은 우정의 문법이기도 하다. 죽음 이후에 친구들이 가족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되는 것은 이러한 복합적 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고인의 가족에 대한 비난을 모임에서 직접 들을 때 당황하지 않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친구들의 분노는 너무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 분노에는 해결해야만 하는 불순물과 모순이 별로 없다. 그저 고인에게 상처를 입힌 나쁜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족에게 그렇게 순진하게 분노할 수 없다. 내가 가족이고, 그 폭력은 내가 당한 것이자 공모한 것이며, 빠져나간다 해도 내 어딘가에 영원히 새겨진 역사이고, 나는 그 역사를 압도하는 죽음 이후의 비통함을 항상 보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부모에게 느꼈던 분노를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죽음 이후에는 고인에게 상처를 입힌 모든 사건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살아있었을 때는 사람 사는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지는 것들도 죽음 이후에는 그렇지 못하다. 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몰랐는지, 왜 허영심을 부채질했는지, 왜 더 일찍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는지와 같은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잘못과 실수가 구분되지 않고 폭력과 사랑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실수였든 잘못이었든, 사랑이었든 폭력이었든 지독한 고통을 벌로 받고 있으므로 구분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친구들의 순수한 분노 앞에서 나는 좋아만 할 수 있는 사이의 편리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이 언제나 증오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유대감만 느끼는 사이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거리두기가 가능한 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당혹감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가족에 대한 친구들의 분노가 어느 가족을 향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퀴어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렇다. 퀴어의 죽음에는 친구들이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가 있다. 퀴어 혐오가 뿌리깊은 사회에서 퀴어들은 원가족을 벗어나 일종의 새로운 친족을 구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원가족은 증오의 대상이고, 상처의 원천이며, 폭력의 장소다. 죽은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그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퀴어들 간의 동일시는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 잔인한 치킨 게임에서 친구는 먼저 갔을 뿐이고 언제든 자기 차례가 올 수도 있다고 느끼게 된다. 자연스럽게 가족에 대한 증오도 겹쳐진다. 나는 두 가족 모두를 향한 분노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은 친구의 가족이 자기 가족과 같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더 몰인정해진다. 사람은 왜 자신에게서 먼 사람들에게는 쉽게 연민을 느끼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잔인해질까?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슬픈 이유는 그 자식이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관계가 살갑게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도 아니다. 세월호 희생자 부모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나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을 함께 마음에 담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가 가족의 전부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스럽고 착하고 재능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더라도, 지독하게 싸우기만 했던 자식이었다고 해도, 죽음은 똑같이 비통하다. 그 비통함을 잘못 표현하는 부모들도 보았다. 처음부터 없는 자식인 척했던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누구도 겉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슬픔의 깊이와 모습을 헤아릴 수는 없다.
동생이 죽고 몇 달 후 서교동에서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어요’라는 제목의 전시에 갔다.
여기서 안미선 작가의 <대면>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대여섯 개의 그림이 연속으로 놓인 이 작품은 작가가 죽은 동생 혜선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얼굴은 동생이 아니라 점차 작가 자신을 닮아간다. 나는 이 그림 앞을 떠나기 어려웠다. 당시는 죽은 동생과 나를 거의 분리할 수가 없을 때였다. 실제로도 우리는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장례식에 왔던 친구 한 명이 동생의 영정 사진을 보고 나와 너무 닮았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 사진은 동생이 한참 약을 먹고 부작용 때문에 얼굴이 많이 부었을 때 찍은 것이었다. 병으로 인해 표정도 많이 사라졌었다. 친구는 그런 사실은 몰랐다. 나는 우리의 닮은 구석에 대해 오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알게 된 것은 동생과 나 둘 중에 누가 먼저 죽을지 알 수 없는 게임에서 동생이 어쩌다 먼저 가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나는 전혀 애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동생이 받은 상처가 아니라 내가 이입할 수 있는 상처에 아파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 밑에 자랐지만 다른 내면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동생을 똑바로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내 상처와 그의 상처를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서 비롯된 극심한 슬픔은 어쩔 수 없이 나르시시스트적이다.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주위를 돌아볼 수도, 헤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죽은 친구의 가족에게 분노를 내뿜는 사람들에게서도 내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에 또 다시 화가 나는 스스로에게서 해결되지 않은 동일시의 잔여물들을 발견한다. 잘 애도하기 위해서 벗어나야만 하는 고통도 있다. 그의 죽음을 나의 고통으로 흡수하지 않아야 다른 사람의 애도 방식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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