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선 세상으로의 초대
- 이밈달의 낯선 세상: 이밈달
- 2021. 11. 18. 14:00
“공예는 왜 연재를 하면 안 돼?”
친구 D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에세이 도전기.
그래, 만들고 쓰고 전부 다 해보자!
나는 (자칭)예술가 이밈달. 나름대로 복잡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긍정의 색채를 잃지 않는 타고난 예술형 인간이다. 스스로 이렇게 정의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름지기 예술가의 삶이란 ‘표현’과 떼어놓을 수 없는 법.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과 ‘표출’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다리기하며 살아왔다. 방황한 시간만큼 이래저래 발을 담군 곳이 많아 전문분야가 어디라고 특정하긴 어렵지만 편집디자인, 양초공예, 레진공예, 3D프린팅, 사진(포토아트) 등 여러 가지 것들을 두루두루 즐기고 있다.
지난 시간 나는 무엇을 만들든 ‘상처받은 나’에 잔뜩 취한 채 작업했다. 용광로 같은 내면을 견딜 수가 없어 일단 내던지고 보았던 것, 그러니까 ‘표출’하기 바빴던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 있어야 작품을 보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난 이만큼 아프니까,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내 작품을 봐줄 것이며 봐주어야 한다고 착각하며 지냈던 것 같다. 마음 안에 가득 차있는 불신과 증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싶은 아이 같은 내 마음을 누구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이런 나라도 사랑할 수 있겠냐며 끊임없이 스스로와 세상을 시험에 들게 했다.
내겐 15년을 알고 지낸 친구 B가 있다. 서로에게 서로가 가장 가까운 관계라는 것에 이견이 없을 만큼 통하는 사이인데도 난 최근에 들어서야 그녀 마음속 깊은 상처를 이해하게 되었다. 끝없는 외로움, 상실감, 세상에 대한 증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만 아프고 어려운 게 아니었구나.’ 너만 힘든 거 아니라는 말, 남의 입으로 들으면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을 만큼 짜증나는 말이다. 그런데 내 마음에서 이런 말이 우러나오다니.
‘친구가 아파하는 줄도 모르고 내 아픔에만 빠져 지냈구나.’
‘그 많은 시간 동안 내가 진정으로 이 아이 곁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나.’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렇게 혼자 싸우고 있을까’
친구의 고백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손 내밀기 어려운 감정적 덫을 나 역시 모르지 않으면서 어느새 그토록 원망했던 세상 어른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 상처받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고 겸허해지는 순간을 겪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고하는 방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느껴보았다는 것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누구를 만나도,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던 내 마음속 공허를 어쩌면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위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B와의 사건은 내게 젖은 붓에 물감을 묻힌 것과 같다. 물감이 묻은 붓을 들고 있으니 이젠 무엇이라도 그려야 하는 것이다. 이 에세이를 쓰는 이유도 그렇다.
물론 이제 막 자신만의 세상에서 벗어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진솔하게 써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또 다시 자아에 함몰되어 나를 잊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다만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과 부대껴야만 하는 숙명 비슷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처에 관한 이야기는 그것이 얼마나 바보 같든지, 슬프든지 간에 계속해서 사람들 속에서 오르내려야 하는 것이다.
문득 내게 에세이를 써보라 제안한 친구 D가 떠오른다. 예술의 카테고리 안에 있다면 무엇이든 손 대보는 나와 달리 글이라는 한 우물만을 파온 사람. 그녀는 늘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특유의 통찰로 공감을 얻어낸다. 빼곡히 나열된 D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아픔을 발견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느껴내는 것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나처럼 자아감이 약하고 감정과 경험을 잘 느껴내지 못하는 이는. 그러나 혼자만의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감정과 경험을 타인에게 수용받은 기억이 그 한계선을 높여줄 것이다.”
-위단비, 암삵의 삶 No.24 생각하는 삶(3) 중-
D가 웹진 쪽에서 연재했던 에세이 중 일부이다. 이 문장은 내 안의 공허를 건드렸다. 공허를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도망 다니는 것에 익숙했던 나를 건드렸다. 실은 누구보다도 이 뜻 모를 공허를 사랑으로 채우고 싶어 하는 나를 건드렸다. 이 외로움은, 공허는, 혼자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유형의 것이었구나. D의 글이 내게, ‘이젠 도망가지 않아도 괜찮고, 사랑하는 사람들 틈에서도 온전한 나 개인으로서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모두 상처가 치유되기 전까지 영영 외로운 거라 생각했다.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만 곱씹으며 하루를 연명할 따름이라 생각했다. 내 삶이란 아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D의 글을 보며 나는 배웠다. 상처는 해결되어야 하는 문젯거리가 아니라 나와 동고동락하며 삶의 정수를 안내하는 여행 가이드와 같다는 것을.
얼마 전 한 전시에서 본 문구가 떠오른다.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하다.’
-타고르(19세기 인도 시인)-
D와 B, 그리고 나. 세 친구들의 공통점은 풀리지 못한 상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화시키며 어떻게든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괜찮다면 오늘부터 우리도 친구가 되자. 거침없이 아픔을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상처 위에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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