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분치 인생 / by 채은
- 포에틱 페미: 오네긴 시창작 그룹
- 2019. 3. 14. 16:00
2인분치 인생
구두 신고 다니던 대장군
고무신 신는 이와 만나
장화 신고 논에 들어가다
하기 싫은 건 손도 대지 않던 대장군
바깥에 나갈 때 허락을 받고 나가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던 대장군
매일 밤 숨어 마시게 되다
손에 물도 안 묻혔던 대장군
여섯 집의 김장과 하루에 열 번 밥상 차리느라
물 마를 새 없어지다
너는 결혼하지 말아라
학교에 가 내 삶도 네 삶도 공부해라
나는 대장군을 찢었다
뒤꿈치부터 머리털 끝까지
그녀의 피땀을 먹고 자라
그녀를 증오했다
그보다 더 증오했다
가까운 만큼
눈물지어지는 만큼 더 증오하고
닮을까봐 더 증오했다
혼자 있어도 어깨가 무거웠다
털어내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고
모른 척한다고 몰라지는 게 아니어서
아직도 왼쪽 어깨에 내 인생 1인분
오른쪽에 대장군 1인분
한 걸음 내딛기 무섭게
발이 푹 푹
몸이 점점 늘어지고
수면 저 아래로
아래로
사라져
아무 일 없게 되다.
시인 '채은'은
외자 이름 아닙니다.
내 언어를 갖고 싶어 시를 썼습니다.
인생 목표는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
현재는 천방지축 삽니다.
인류애를 잃은 지 오래지만
사실 다 같이 잘 살고 싶은 페미니스트입니다.
'포에틱 페미: 오네긴 시창작 그룹'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그런 줄 알았지 / by 홍지연 (0) | 2019.03.07 |
---|---|
애도는 사랑하는 도路 / by 정슬 (0) | 2019.02.28 |
형법 제269조 / by 강윤지 (0) | 2019.02.21 |
맨스플레인 / by 희음 (0) | 2018.11.27 |
너는 내 운명 / by 단단 (0) | 2018.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