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 어쩌다 퀴어: 무지
- 2019. 4. 5. 16:44
그녀가 나에게 친구 이상의 끌림을 느낀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렸냐면, 사람이 갑자기 변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여름 그녀를 포함한 몇 명의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항상 심각하고 말 수가 별로 없는 어두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전혀 달랐다. 잘 웃고 밝고 재미있는 농담도 잘 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내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단다. 나는 그날 긴 머리를 짧은 단발로 자르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갔었다. 어릴 적 만화영화 세일러문에 나오는 머큐리를 좋아했었는데 그날의 내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 뒤로 연락이 잦아졌다. 그녀는 나에게 사소한 선물들을 했고 여행을 가자고 했으며 자신의 지인을 소개팅 해주겠다고 했다. 웃기면서 귀여웠다. 주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로맨틱한 끌림이 있을 때 쓰는 방식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옆에 바짝 붙거나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하며 조금씩 떠보았다. 역시나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전에 여자 애인을 사겨본 터라 그런 모습이 낯설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별로 연애할 생각이 없어서 알고 있었음에도 더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멀거니 귀여워하면서 지켜봤다.
연애에 있어 타이밍은 정말 무서운 요소다. 어느 날 문득 깊은 내면까지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웠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가 보였다. 주변 사람들 중 가장 끌리는 사람, 이정도의 느낌으로 배고픈 악어처럼 그녀에게 슬슬 접근했다. 그리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많이 무거운 마음도 아니었다. 당기면 금방 넘어올 것 같았는데 한 발자국 다가갔나 싶으면 열 발자국 멀어졌다. 예상대로 되지 않자 매우 의아했다. 다가갈 때마다 알게 되는 그녀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왜 어려운 게 더 재미있는지. 그녀의 실체를 낱낱이 알고 싶어졌다.
내가 먼저 그녀에게 어떤 끌림을 느끼고 있는지 밝혔다. 하지만 그녀의 솔직한 마음을 듣는 것은 시간이 걸렸다. 끈질기게 기다렸다. 그녀는 자신을 후천적 레즈비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고 했다. 우리 관계를 책임질 수 없을 것이란다. 분명 꼬임 당한 것은 나인데 이제와 오리발이라니, 오기가 생겼다. 잔칫상을 차려놓고 슬그머니 자리를 뜨려는 그녀를 눌러 앉히려 무진장 노력했다. 후천적 레즈비언이 무엇이냐고 직접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무슨 뜻인지 헤아렸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여자 애인을 만들지 않았지만 그녀는 약 여자 7대 남자 3의 비율로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에게 끌린다고 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영영 여자 애인을 둘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았다. 가족들을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부모님이 동성애자를 전혀 모르시고 이해하시지도 못한다고 했다. 나는 부아가 났다.
“성인인데 그게 뭐 어때서요? 부모님이 반대한다고 해도 연애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게 좋지 않나요?”
대화를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서 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빠져들었다. 그녀의 사고방식, 마음, 행동, 그녀 자체가 전부 이해됐다. 위험한 것인 줄 알면 도망가야 하는데 오히려 엉터리 같은 모습에 매혹당했다. 모난 그녀의 모양대로 나도 그렇게 모가 나있어서 그런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때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우선 끌려들어갔다.
“알다시피 저 위로 언니가 있고 남동생 이렇게 1남2녀에요. 첫째, 둘째가 딸인데 셋째가 아들이라는 의미 알 텐데, 저희 아버지가 큰 아들이셔서 대를 이어야 한다고 남아선호가 심했거든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까지도 남동생을 장손으로 보고 애지중지 키웠어요. 둘째 딸인 저는 집에서 알아서 컸고요. 저희 아버지가 엄하고 무서웠어요. 그랬는데 IMF가 터져서 집 사정이 안 좋아졌어요. 세간살이에 빨간 딱지가 붙었으니까요. 집에서 차별이 더 심해졌어요. 자원이 동생에게 전부 갔고 저는 스스로 살아남았어야만 했어요. 남동생보다 내가 못한 게 무엇이 있는가, 보란 듯이 잘 살 수 있다고 스스로 되새김질 했어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싫고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여자한테 끌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남동생과 나를 동일시해서 여자한테 끌리게 된 것이라고요. 남자들 보면 ‘그 몸 내가 더 잘 쓸 수 있는데, 그렇게 쓸 거면 나 주지. 부럽다’ 이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이러지 말아야지 계속 다잡아도 잘 안돼요. 여자 말고 남자를 좋아해보려고 노력해도 잘 안 돼요.”
그녀와 연인이 되든 안 되든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관계로든 그녀가 자신을 긍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원래 이성애자인데 차별을 받아 레즈비언이 된 것이라면 실컷 여자와 연애를 하다보면 정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 것이든 나에게 로맨틱한 끌림을 느낀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든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받는 관심이, 그녀의 욕망이 싫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타인과 깊이 소통하고 다정하게 스킨십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녀에게 다가갔던 것이니 말이다. 병리증상이라고 해도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욕구를 필요로 했고 그것은 그녀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끌렸던 것일까? 스킨십 욕구야 누구와도 충족시킬 수 있지만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그녀의 어떤 점에 빠지게 됐는지 뒤늦게야 알게 됐다. 처절한 자기 부정이었다.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나 자신을 잃고 인형처럼 살고 있는 와중이었다. 부모님이 나에게 투자한 비용에 합당한 성과를 내지 못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왜 나를 낳은 것인지 낳아 달라 한적 없었는데, 살기 싫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부모님의 기대를 기준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해도 충족이 안 되니 나 자신을 버렸던 것이다.
그녀와 나는 아버지의 딸들이었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여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아버지 밑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딸들이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너무 못 받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많이 받았다. 왜곡된 사랑은 아이를 어른으로 기르지 못하고 비틀린 애어른을 만들어냈다. 그녀를 통해 텅 비어있는 나를 보았다. 울분이 차올랐다. 살고 싶어졌다. 잘 살고 싶어졌다. 뜨겁게 사랑하고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싶어졌다. 그녀를 욕심을 내는 것이 부모님을 벗어난 내 욕망을 갖는 일처럼 보였다. 계속 그녀 생각이 났다. 가슴이 미어지고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더 많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녀가 밀어내도 내 쪽에서 놔줄 수가 없게 됐다.
산책하자 부르고 밥 먹자고 부르고 미술관 가자고 불렀다. 꽃과 함께 시를 지어주었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잘 받았다. 원석을 다루는 보석 세공사처럼 나는 그녀를 섬세하게 보듬었다. 그녀는 부드럽고 편안하게 미소 짓는 사람이었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알맞은 위치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난 5년 여간 알지 못했던 그녀가 꽃을 피웠다. 너무도 달달한 나날이었다. 다정한 행동과 따뜻한 체온, 그윽한 눈빛, 한없이 아득해지는 기분. 완벽했다.
우리 관계를 누가 책임져야 한다면 그건 나라고 생각했다. 안된다고 밀어내는 그녀를 최후의 순간에 옭아맨 건 나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진 그림자는 나를 욕망하면서 동시에 거부했다. 결혼 적령기, 주변의 시선, 사회의 대우, 무엇보다 부모님의 뜻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낙관적인 태도로 그녀를 만났다.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차례차례 이겨나가면 된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닥치면 어떻게든 잘 될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책임질 사람이 못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1년을 채 만나지 못하고 헤어졌다. 별일 아닌 것으로 싸웠는데 싸우는 과정에서 극한에 몰렸고 나는 그녀보다 나를 먼저 챙겼다. 내 그릇이 드러난 것이다. 계속 만나면 안 되겠냐고 그녀에게 매달렸다. 나는 그녀와 동성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뜻을 전했는데 이 말에 그녀는 자신과 궁극적으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실감했다고 했다. 점차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고 친구로 지낼 방법이 있었을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없었던 것 같다. 퍼즐 조각이 맞아 떨어지듯 나를 길러낸 모든 것들이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고 그녀를 길러낸 모든 것들이 나를 유혹했으니 말이다. 매혹적인 것들이 항상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우울과 절망, 고통과 같은 어둠들 또한 사람을 홀렸다. 어둠에 홀린 것을 감히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까.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 외에 그 당시의 심정을, 마음을, 행동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극한에 몰린 사람들이 부딪쳐 발생한 마음을 비난하려면 극한에 몰아넣은 환경을 탓해야 하리라. 우리의 사랑은 단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과 가족과 사회라는 공간에 펼쳐진 문화인류학적 현상이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내 자신의 어둠과 싸워 때로는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했다. 어떤 어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또 살아오면서 새로운 어둠을 얻었다. 그녀를 사랑하던 그때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와 되돌아보니 그녀에게 끌렸던 지점을 통해 그 당시의 내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둠 때문에 사랑에 빠진 것이 뭐 어떤가. 그녀를 사랑하면서 햇볕이 들어 조금이라도 살고 싶어졌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그녀도 나도 힘든 시절을 넘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사랑이 제 역할을 다 한 것 아닐까. 사랑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의미에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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