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퀴어입니다(1)
- 어쩌다 퀴어: 무지
- 2019. 4. 19. 09:05
나는 퀴어다. 이성애를 벗어난 섹슈얼리티를 실천하고 있는 퀴어다. 나에게 섹슈얼리티는 누군가와 애욕을 포함한 사랑하는 감정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성적 지향 말이다. 따라서 이성애를 벗어난 섹슈얼리티라는 말은 상대방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다. 스무살 중반까지 나는 내가 이성애자인줄 알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스무살 중반에 퀴어임을 깨닫고 퀴어로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성하기 위해서는 두 단계를 필요로 했다. 첫 번째는 남성이 아닌 다른 성별의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한국 사회는 나에게 에로스적 사랑이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만 가능하며 동성이나 그 외의 관계는 ‘극소수’라고 가르쳤기에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소수자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 않았기에 애욕을 포함한 좋아하는 감정은 남성에게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영향력이 막대해서 분명히 있는 감정을 없다고 착각하게 하고 없는 감정을 있다고 착각하게 했다. 살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계속 같이 있고 싶고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성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경우에는 ‘그녀를 존경한다, 절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 외로워서 그렇다’ 등등 다양한 갈래로 마음을 정의했다. 사랑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성인 경우에는 더 자세히 이 감정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기도 전에, ‘아, 내가 그를 좋아하나봐, 사랑하나봐’라고 생각해버렸다. 이성이라는 이유로, 너무도 빠르게 말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내다보니 사랑이 아니라 친근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성별이 착각을 일으켰다.
나는 내 감정에 자신이 없었고 지독하게 조심스러워 남성과의 사랑을 겪어본 후에야 여성에게 느끼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인식할 수 있었다. 남성과 사랑한 이야기부터 하자면, 성인이 된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키스하고 싶다거나 섹스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구는 들지 않지만 몸이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계속 같이 있고 싶고 대화를 더 많이 하고 싶은 한편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났다. 성적 욕구였다. 그와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고 여러 가지를 함께 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힘든 만큼 짜릿하고 달콤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생각했다. 그와 헤어지고 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친구들과 1박2일 여행을 갔는데 그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긴장감을 한 여성에게서 느꼈다. 겪어봤기 때문에 성적 긴장감이라고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되짚어보니 그녀와 같이 있을 때면 자주 이런 긴장감을 느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히 느낌은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불편하거나 당황스러운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도닥이고 그녀에게 숨기기 급급했었다. (성적으로 끌리는 건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러고 나니 지난 과거들이 재해석됐다. 내 첫사랑은 생각보다 더 빨랐고 몇몇 여성들에게 로맨틱한 끌림을 느꼈는데 모르고 지나쳤었다. 일부 여성들이 보내는 연애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도 발견했다. 알고 있던 세상이 전부 무너지고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두 번째는 이러한 감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연애를 하지 않아도 혼자 잘 지내는 스타일이라 남성과도 절절한 마음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상 잘 만나지 않았다. 뜨거운 마음을 혼자 가지고 있기 힘들어 표출하다보니 어느덧 만나고 있더라, 라는 식이었는데 그런 강한 감정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초로 동성 친구에게 사귀자 고백하게 된 것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감정 때문이었다. 이십대 중반의 어느 날, 어떤 남성이 나에게 사귀자는 고백을 했다. 그가 술을 핑계로 불쾌한 행동을 한 후여서 화가 나있었다. 나를 존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굴었는데 심지어 사귀자고 고백까지 하다니,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하고 돌아서는데 그보다 앞서 나에게 고백한 여성 친구가 생각났다. 그녀는 나에게 사귀자 고백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감정을 알린 것뿐이었다. 이 말을 해도 우리 관계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나를 오래도록 사랑해왔다고 고백했다. 나는 매우 큰 충격과 함께 감동을 받았다. 10년 넘게 나를 아끼고 보살펴준 마음이 단순한 우정이 아니고 사랑이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지 않고 고마웠다. 나 또한 아끼는 친구였으니 말이다. 더욱 애틋해졌다. 그녀의 고백을 듣고도 정말 관계는 바뀌지 않았다. 이전부터 그녀와 내가 품은 감정대로 형성된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그 남성에게서 가볍게 사귀자는 고백을 받자 분한 마음이 일었다. 그가 나에게 품은 마음보다 수십 배 강하게 나를 사랑해주는 그녀와는 왜 사귀지 못하고 친구로 남아야 하는가. 그녀와 나눈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인가.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도 사귀자고 고백하는데 나는 왜 못하는가. 그 길로 그녀에게 달려가 사귀자고 고백을 했다. 우리 둘은 깊은 대화를 하며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돈독해졌다는 것 외에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실패한 고백이었는데도 너무도 흡족하고 만족스러웠다.
오롯이 사랑에 취해서, 연애관계가 아니면 안 될 간절한 마음에 한 고백이 아니었다고 해도 선을 넘는 그 감각은 매우 놀라웠다.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귀자 고백하는 것은 퀴어임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일이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쇠창살을 열고 감옥을 탈출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할 수 없는 것, 하면 안 되는 것을 저지르는 느낌이라 두려운 한편 통쾌하고 속이 시원했다. 이상하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고 그에 거스르지 않게 행동한다는 자유로움이었다. 이후 색색이 다른 관계들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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