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퀴어입니다(2)
- 어쩌다 퀴어: 무지
- 2019. 5. 3. 09:34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느낌을 갖게 된다. 좋다, 싫다, 별로다, 아무 느낌 없다, 매력적이다 등등.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끌리거나 호감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호감은 꾸며낸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매력을 억지로 뽐낸다고 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 사람이 내 안의 스위치를 눌러 불이 들어온다. 물론 다른 이들도 그 사람에게 내가 받은 것과 같은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이 결정적일 것이다. 상대방도 나를 매력적으로 보고 호감을 느끼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서로 주고받으며 점차 빠져든다.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도 있지만 극복하며 다가간다. 사귀자고 고백하기도 전에 이미 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첫 여성애인과 이런 방식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대화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고 제스처나 옷차림, 말투 등에서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남성들에게 고백 받아 사귀기도 했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 금방 헤어졌다는 이야기, 자신이 여성에게 어떻게 끌리는지 등등. 여성인 그녀가 다른 여성에게 연애감정으로 끌린다는 점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나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어서 궁금했다. 오래, 긴 시간을 함께했다. 어느새 연애를 하고 있었다.
여성을 사귀는 것과 남성을 사귀는 것의 차이점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 내 대답이다. 차이는 남성과 여성에 있는 것이 아닌 개개인들에 있었다. 사귀었던 사람들이 전부 달랐고 따라서 나와의 관계의 모습도 제각각 달랐던 것이다. 연애하는 모습이 성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추측하는 이유는 성별에 어떤 고유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남자답고 여성은 여성스러우니 연애하는데 있어서도 익히 (드라마나 주변 커플들을 통해) 아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에 빠진 이들을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좌표 위에 위치시킨다고 하면 한 점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면, 행동, 감성, 사회적 자아, 취향 기타 등등 세분화된 항목에서 제각각 위치가 달라졌다. 남성이라고 전부 남성적이지 않고 여성이라고 전부 여성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대기업을 다녔던 남성 애인의 경우 사회적 자아는 마초적이고 거칠었는데 내면적으로는 여리고 섬세했다. 반면 사회적 기업을 다녔던 여성 애인의 경우 행동이나 말투는 타인을 배려하고 다정다감해서 부드러웠는데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뚝심이나 행동력은 기백이 넘쳤다. 여성스러운가 싶으면 남성스러웠다. 그렇게 내가 사귀었던 사람들의 남성, 여성 유형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각 개인들이 고유하게 다르니 그들과 맞부딪쳐 발생한 나와의 관계도 전부 달랐다. 그러니 남성과 연애할 때와 여성과 연애할 때로 나눌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성별을 다 겪고 보니 오히려 ‘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나의 경향성을 알게 됐다. 상대방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나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원피스나 치마 같은 여성성이 극대화 된 옷을 입었다. 처음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낯설었다. 상대 여성은 나보다 키도 작고 이목구비도 예쁘고 나이도 어렸다. 어떻게 꾸미는 것이 그녀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것인가.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무엇일까. 따지기도 전에, 그녀는 평소 내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었다.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옷들과 함께 수수한 옷들도 입는 내 평소 스타일 말이다. 기쁘게 내 스타일대로 입고 다녔다. 과거 남성과 데이트 할 때는 보호받고 싶어서 여려보이게 입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를 보면 내가 보호해주었으면 보호해주었지 보호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제야 남성 애인에게도 ‘여자’로 보이고 싶어서가 아닌 그저 내 취향대로 입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남성 애인이든 여성 애인이든 나를 대하는 커다란 경향성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여자’로 대한다는 것이었다. 차가 오면 길 안쪽으로 보호하고, 데이트 비용을 자신이 더 많이 내려하고, 앞으로 자신이 나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남성만 만나봤을 때는 내가 여성이고 상대방은 남성이니 성별에 따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에게서도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여성인 그녀가 ‘남성처럼’ 나를 책임진다고 말한 것이다. 만나는 여성마다 그러는 것을 보고는 결국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성격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위태롭고 연약해 보여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와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여성들이 나에게 끌려하니 말이다. 상대방의 능동성은 나의 연약하고 위태로운 성격, 수동적인 면을 충족시켜줬다. 남성들과 연애할 때나 여성들과 연애할 때나 그랬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여성’으로 대하는 것을 편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갈등했다. 나 또한 한 명의 성인이라고 반감을 나타냈다. (대부분 실패했지만) 데이트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려 하고 집에 데려다 준다는 것을 거부했다. 대접해주는 것을 잘 받으면 되지 왜 거부했을까. 남성이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가부장적 문화처럼 보였던 것이다. 여성 애인도 나에게 그렇게 행동하자 여성조차 ‘남성성’을 흉내 내는 것인가 생각했다. 너도 나와 같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거절했다. 다 내려놓으면 편한 것을, 본능을 거스르려 애를 쓰는 것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나는 수동적이고 제 앞가림을 잘 못하는 사람이니 그저 상대방에게 기대도 되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물었다. 대답은 ‘그럴 수 없다’였다. 상대방이 나를 책임진다고 할 때마다 휩쓸려가는 느낌이었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고 나를 지키려는 본능 또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이고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복속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떠올렸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수동적이면서도 주체적이고자 했다. 매 순간의 행동들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는 민들레 홀씨같이 한없이 연약한 모습이 나오기도 했고 어느 때는 이순신 장군같이 강한 모습도 나왔다. 그 모든 면이 나였다.
남성과 연애할 때도 이런 방식이었다면, 어째서 여성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해방감을 느낀 것일까. 성별의 차이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라고 했지만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까. 의문이 많아졌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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