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첫인사 - 온전한 당신과 함께 읽을 글


안녕하세요,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당신께 인사를 드립니다. 제 이름은 김경진입니다. 2019년인 올해 29세가 되었고, 여성이고, 성폭행피해생존자이며, 사무실 노동자였으며, 차별받았던 딸이고, 누드모델인, 당신의 주변에 흔히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한때 영화 공부를 했고 영상 제작 일을 했었지만 직업적으로 무언가 이룬 적이 없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글로써 한 번도 성취해 본 적 없는 작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인 제가 많은 분들이 애정을 담아 구성하고 있는 소중한 웹진인 쪽에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말로는 제가 잘 하지 못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큰 제목을 <온전히 생존기>라고 정해 놓고 나서야 비로소 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언젠가 글감이 되겠거니, 속에 그저 언제 꺼내 놓을지도 모른 채 뭉쳐 놓았던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놓아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삶이 온전하다고 스스로 반복해서 선언하는 삶은 사실 참 많이 외롭습니다. 반복해서 “나는 괜찮아!” 하고 말해야 하는 삶은 사실상, 많은 타인에게 썩 괜찮은 모양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말로 부연을 해야 하는 삶이거든요. 그것은 비정상성을 가진 삶이고, 우리는 비정상성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불완전하고 불행한 것이라고 너무 오래 학습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괜찮다고 말하면 대단하다고 대답하거나 동정의 눈길을 보냅니다. 나는 정말로 썩 괜찮고 평범하게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느끼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성폭행피해생존자인 ‘내’가 온전하지 않다고 여겨 ‘곧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우울증 앓는 나를 온전하지 않다고 여겨 마음 굳게 먹고 ‘극복’하라고 채근합니다. 꽤 돈 잘 벌던 프리랜서 영상제작자의 삶을 내려놓고 얼핏 단순 신체 노동자로 여겨지는 전업 누드모델이 된 것에 대해 만족할 만큼 쉬다가 나중에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나아지는 것도, 극복하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현재 상태가 아닌 다른 상태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은 모두 나를 위해 하는 말들인 동시에 내가 현재 구가하고 있는 나의 생존을 인정하지 않는 말들이 됩니다.


더 직설적인 사람들은 “넌 그것(비정상이나 불편함으로 카테고라이징 되는 나의 면면들)만 빼면 참 빛나고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합니다. 그 비슷한 말들은 순식간에 내 삶을 인정받는 모습과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양분합니다. 그런 식의 양분은 구미를 맞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한 사람의 온전함에 가 닿을 수는 없습니다. 온전한 생존은 어떤 하나-나의 삶을 가감 없이 응시하고는 완전하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모습만 남기는 것은 이미 서사가 완성된 책에서 본인 구미에 맞는 문장만 띄엄띄엄 덜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덜어낸 문장은 보기 좋지만 그것만으로 책 전체의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나무에서 나이테를 덜어내고 그것이 ‘완전한 나무’라고 선언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흡족해 하는 나의 여러 좋은 모습 또한 그들이 흠집으로 여기는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이도 부딪히고 때로는 도망쳤기 때문에 가져진 것일 테고요.


내 온전한 생존의 모양은 미래나 변화에 있지 않습니다. 성폭행피해생존자라는 긴 단어는 그 의미 그대로 일생 내내 사회적 타살인 성폭행-2차가해와 싸워야 했던 내 삶을 대변합니다. 만성적 우울 기전을 가지고 사는 삶은 통제되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나도 소중하지만 아이도, 내 아이니까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내가 어린 여성이어서 겪는 불합리가 있음을 뼈아프도록 느끼게 했던, 한때는 많은 애정과 노력을 쏟았던 영상제작 업계로는 이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온전히 생존하는 삶을 고민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스스로를 버려두었을 것입니다. 나의 생존이 온전하다고 사람들 앞에서 직선적으로 선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선언으로,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성을 보는 시선’을 나에게 보내는 것을 감내해야 하고 때때로 그것이 많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을 두려워하여 내가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을 속에 눌러 담아 없는 것인 양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재의 큰 제목은 <온전히 생존기>가 되었습니다. 나의 삶은 작지만 나에게 온전합니다. 누구보다도 더 온전히, 내가 겪고 기른 모습 그대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는 당신도 때때로 무너지고 때때로 고민하겠지요. 생각보다 자주 공허해 하고 자주 죽고 싶어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본인을 온존溫存하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주세요.


앞으로 당신께 드릴 글은 이런 흔한 사람 중 한 명인 제가 쓰는, 개인의 생존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이 인사로 우리의 궤적이 닿아, 당신이 당신을 닮은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매주 찾아와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인사를 나누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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