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고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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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쯤 잊고 있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금은 2017년 5월 29일의 아침이다. 부지불식간에, 삽시간에 쏟아지듯 기억이 회복되는 감각을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다. 기억은 너무나 참혹하고 믿기 힘든 내용이었기 때문에,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르자마자 그 직후에 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실내 온도가 23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따뜻한 나날 중에 전기장판까지 틀어놓고도 온몸이 저릴 정도로 차가워지는 이상한 증세를 겪으며 몸을 떤다. 그날까지 처리해야 할 과업들이 있지만 도무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다. 결국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스틸녹스 10mg을 복용한다. 우선 두 알을 먹고 잠시 누워 있다 다시 일어나 두 알을 먹는다. 다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한 알을 더 먹고 눕는다. 간신히 잠든다. 잠들었다 깨면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만일 이것이 기억이 아니라 꿈이라면, 자고 일어나는 틈에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것을 기대한다. 잠든다.


    다시 깨어났을 땐 2017년 5월 30일 오전이다. 과연 잠은 효과가 있다. 패닉 상태로 혼자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사고들을 모두 피할 수 있었고, 폭풍에 휘말려 공중을 뒤덮은 것처럼 산발적인 이미지로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어느 정도 스스로 정렬해있다. 대신 수면제를 과 복용했으므로 끔찍한 두통에 시달린다. 

    나는 두통과 목마름을 견디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그것들을 계속해서 곱씹는다. 이미지를 분석하듯 한 장 한 장 면밀히 보고, 한 장면 한 장면 멈추어 가며 본다. 리포트를 쓰려고 영화를 분석할 때처럼 한 컷 한 컷 일시정지를 눌러가며 본다. 때때로 멈추지만 곧 다시 이어간다. 한 두어 시간 그런 작업을 계속하고는,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구체화되고 나자, 오히려 몸을 덜덜 떨며 침대에서 스스로를 끌어안고 버거워 하던 전날보다 훨씬 안정적인 상태에 돌입한다.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나는 7년 반 전 고등학교 졸업 뒤풀이 자리에서 A에게 강간당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뒤풀이에 참석했고, 고등학교 졸업 뒤풀이는 학부모님이었나 하여튼 학교와 뭔가 인연이 닿아 있는 어른께서 운영하는 호프집에서 열렸다.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을 맡았던 선생님들과 담임선생님, 일부 학부모님들까지 참석하시는 안전한 자리였다. 고교시절 내향적이던 나에게는 말 섞고 지내는 친구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마무리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다. 

    나는 심한 알코올 불내성 체질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알코올 알레르기라고 말하고 음주를 하지 않는다. 현재는 잘 인지하고 적절히 행동하지만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체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냥 남들보다 조금 술이 약한 줄로만 알았다. 고등학교에서 비교적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 A가 그날따라 집요하게 술을 권했다. 맥주 몇 모금을 받아 마시고는 테이블에 엎드리지 않으면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다. A가 바람 좀 쐬자며 나를 어깨로 지탱하여 건물 옥상으로 데려갔다. 옥상 난간에 잠깐 기대어 앉아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다. 겨울이 끝나가지만 아직은 춥다. 바람이 축축하다. 비가 오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의 직후, A가 나를 건물의 비상계단 후미진 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끌려갔다. A가 어떤 의도로, 어떤 곳에 데려가는지 나는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A에게 이끌려 그곳에 도착해서야 그곳이 어떤 곳이며 A에게 어떤 의도가 있는지 알았다.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었다. A는 내가 왜 우는지, 왜 웃는지도 모르고 얼굴을 맞댄 채 따라 웃었다. 순식간에 그 일이 지나간 후에 A는 “내가 사실 짧게 여러 번 하거든?” 하고는 그대로 나를 버려둔 채 졸업 뒤풀이가 계속되고 있는 호프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방치됐다. 방치되어 누운 채 알코올 불내증 때문에 빳빳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팔을 움직여 간신히 속옷을 올리고, 상의를 내렸다. 그쯤 되어서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친하지도 않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다른 동기 몇몇이 옥상에 들렀다가 나를 못 본 척 지나가고, 한 친구가 엉망인 나를 발견하고는 수습해서 뒤풀이 장소 근처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주었다. 나는 거기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깨어나면서부터 전날 일이 희미해지다가, 며칠에 걸쳐 그 일을 잊어버렸다.



    기억은 적절한 수순에 맞게 정리된 것 같다. 그러나 우선 무언가 행동하기 전에,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보다 좀 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나를 수습해 집으로 데려갔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고등학교 졸업식 후 정말로 뒤풀이를 했는지, 뒤풀이 중 내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네가 인사불성이 된 나를 수습해 집에 데려가 재웠는지를 묻는다. 친구는 영문을 모른 채 대답한다. 그런 형식의 졸업 축하 자리가 있었고, 갑자기 사라졌던 것은 맞는데 당시 분위기가 워낙 시끌벅적해서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는 모르고, 술을 깨러 잠시 옥상에 들렀다가 복도 구석에 누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보니 그게 경진이라서 부모님께 허락을 구한 뒤 본인의 집에서 재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의 질문도 너무 평범한 말투로 나왔고, 친구의 대답도 너무 평범한 말투로 돌아왔다. 도무지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억상실을 일으킬 만큼 어마무시한 외상이 된 사건을 재확인하고 검증하는 중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은 직후 나는 SNS에 짧은 글 을 올렸다. 평소 내 SNS를 자주 들여다보는 A라면 글을 올린 직후 무언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예상과 달리 A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자나 전화가 오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글을 읽지 못했거나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좀 더 기다려보자. 

    그리고 며칠 뒤, 나는 A의 SNS 계정이 친구 목록에서 지워진 것을 발견하고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혹시 A가 나의 글을 보고 SNS 계정을 삭제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A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면서도 나와 7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친구 사이를 유지했다는 말이 된다. 내가 알코올 불내증이 있어 당시에 심신 양면으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으며, 그런 상황에 가지는 성관계는 합의 없는 강간임을 인지할 충분한 감수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나에게 강간 가해를 하였음을 인지하고도, 나와 그 긴 시간 동안 절친한 사이를 유지했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왜? 

    당장 SNS에 접속해 있는 고교 동기 몇몇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다. “님, A 페북 비활? 탈퇴?” 잘 모르겠으나 본인에게도 A의 계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A는 SNS 친구 수가 적은 반면, SNS 접속은 자주 했었다. 글을 올리진 않지만 주로 친구들이 올리는 글이나 페이지에서 올리는 콘텐츠들을 구경하는 용도로 SNS를 이용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글을 올린 당일에 A는 글을 읽었을 것이고, 며칠 정도 죄책감이나 여러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발언을 시작할 기미를 보이는 나에게서 눈을 돌리고 관심을 줄이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만나지 않으려 마음먹으면 만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물리적 거리가 확보된 시점에서 가장 손쉽고 불편하지 않은 선택이니까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시작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었다. 우리는 성폭행피해를 입었지만 생존했고, 괴롭지만 그래도 일상을 살고 있고, 매 순간 그 일 때문에 힘들지는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나만의 발언으로는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갈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터뷰할 이들을 몇 섭외해 그들의 성폭행 피해 사실과 현재의 일상에 대한 얘기를 듣고 영상으로 찍어놓기까지 한 상태였다. 

    실제로 나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었고, 인터뷰를 위해 만난 사람들 또한 대부분 그랬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더 깊게 본인의 상태와 형질에 대해 고민하여 더 큰 자아를 가진 사람들로 자라난 듯이 보였다. 흔히들 말하는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이들도 꽤 있었다. 믿을만한 주변인들에게 다큐멘터리 제작 소식을 알렸고, 많은 지지를 받아 한껏 자신감이 고무되어 있는 때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기억이 떠올라 혼란스러우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지 않았고,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려는 A의 반응이 어느 정도 납득되기까지 했다. 오히려 이걸 잘 갈무리한 이후에 다큐멘터리 내부에서 언급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내적 방황은 그날 하루로 마감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A가 반응을 보인다면 대화를 나눈 후 종국에는 용서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고, 나에게 지지를 보냈던 이들이 나를 도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그들은 나의 친구들이니까. 

    그러나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나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며 내가 도움을 구하고 싶었던 이들이 나의 친구들인 동시에 A의 친구들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다음화에서 계속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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