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고발(2)

    주변인들에게 이를 털어놓아야 할까, 털어놓는다면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해야 할까 등을 고민하며 일상을 지킨 지 한두 달여가 되어가던 어느 날, 우연히 다니던 대학 내의 상담실 홍보간행물을 보고 상담 치료를 시작할 마음을 먹었다. 당시의 나는 학교를 늦게 복학해 마저 다니느라 삶의 터전을 꾸려 놓았던 서울로부터 홀로 떨어져 먼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오전과 오후 시간에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오후 늦은 시간부터 새벽 늦게까지는 영상 기획이나 편집 작업을 하여 생계를 꾸리고, 주말에는 누드모델로 일하거나 앞선 화에서 말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거나 당시에 교제하던 남자친구를 만났다. 사방에 낯선 타인들만이 가득했다. 규칙적이고 피로하고 목가적인 나날의 연속에서, 어디에도 털어놓고 의논할 곳이 없어 나는 점점 소모되고 있었다. 떠오른 것들이 닻처럼 자꾸 발목을 잡고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스스로도 답답하던 차였다.

    교내 학생회관의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담실 근무 직원 두 분이 곁눈질로 나를 보다가 친절하고 형식적인 어투로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제가 예전에 성폭행을 당했어요.” 여느 20대 초반 아이들의 이성 교제, 진로, 학과생활 같은 일상적 사유의 고민만 접하다 느닷없이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들은 탓인지 두 직원은 약간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빠르게 표정을 정리하고 상담 과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우선 종합 심리 검사지(Full Battery), 다면적 인성검사지(MMPI), 문장완성검사지(SCT) 등 여러 검사지를 작성 후 그 지표를 기반으로 상담 선생님께서 상담을 진행해 나가실 거라는 간단한 설명이었다. 본격적으로 상담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안내받은 후 조금 기다리자 검사지들과 함께 티백 녹차를 종이컵에 우려서 가져다주셨다.

    여러 검사지를 한꺼번에 받아드니 양이 너무 많아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도합 평균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긴 검사인데 나날이 수면이 부족해서 계속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따금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등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중간중간 쉬어가며 검사지를 작성했다. 그러는 사이 상담 선생님께서 도착하셨는지 밖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는데,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안에서 검사지 작성하고 있는데요, 성폭행 당했대요. 예전에.” 하던 직원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내담 예정인의 사유를 저런 식으로 전달해도 상담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간에 그분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해주셨고, 담배를 피우고 나서 상담실로 다시 들어갈 때면 “검사가 길어서 힘드시지요?” 하고 물어주셨다. 늦게 도착하신 상담가 선생님도 웃으며 인사해 주시고 내가 차분히 나의 속도로 검사를 마칠 수 있도록 끈기 있게, 오래 기다려 주셨다.

    몇 백 문항이 넘는 검사지를 다 채우고 나니 상담 선생님께서 내 앞에 와서 앉으며 인사를 다시 건네주셨다. 우리는 서로의 손끝보다는 약간 깊이, 하지만 손바닥이 맞닿지 않을 만큼만 서로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검사지를 파일에 정리해 넣으신 선생님께서 앞전에 직원에게 언질을 못 들은 것처럼, “그런데, 이렇게 예쁜데 무슨 고민이 있어서 왔을까?” 하고 아이 다루는 어투로 말을 꺼냈을 때는 상황이 조금 웃기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나는 본격적으로 내담에 들어가기 전에 쭉 길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냥 대략적으로 이야기 드려야 하는지를 먼저 물은 다음, 이전화에 쓴 것과 비슷한 정도의 어투로 상황에 대해 전달했다. 사실 몸에 닻이 달린 듯, 아니 그 닻에 몸이 깔린 듯 무거운데도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담담한 어투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스스로도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그렇게 했다.

    선생님은 내내 표정으로 ‘나는 네가 안쓰럽다’는 간접적 의사 표현을 하시며 끝까지 내 얘기를 들으셨다. 나의 내담을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성폭행피해생존자란 불행하고 기댈 곳이 필요한 가여운 존재라는, 어떤 고정 값을 정해 놓고 나를 대하시는 듯했다. 내가 지금은 진정이 되었고 괜찮다고 말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불편했다. 물론 불행을 겪었다는 사람이 앞에 앉아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공감능력을 발휘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것이 통상적인 좋은 사람의 작동임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내가 겪은 불행이 나를 보다 약하고 낮은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어, 내가 하려는 이야기나 나 자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싫다. 무엇보다도 동정은 어느 정도 시혜적이다. 상대적으로 불행하지 않은 ‘내’가 불행한 ‘타인’을 대상화할 때 비로소 일어나는 감정이 동정의 정체성이다. 혹시 정신과를 다니는지 물으셔서 정신과를 다니지는 않지만 자주 불면증이 있어 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스틸녹스 10mg을 며칠 분씩 처방받아 먹고 있고, 평소에는 반으로 잘라 5mg씩 복용, 정도가 심할 때 10mg 복용,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휴약 기간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은 스틸녹스가 무슨 약인지 얼른 알아듣지 못하셨다. 졸피뎀이요, 하니까 그때야 알아 들으셨다.

    나에게 불면증은 익숙한 상태이다. 그게 아니면 자발적으로 복용량을 조절하고 내성 관리를 하며 일상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의 불면증은 성폭행 내상으로 인한 병리적 증상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느낄 만큼 이야기했는데도 나는 그 상담 테이블에 앉아 나의 불면증이 성폭행으로 인한 병리 현상인 양 취급을 받았다. 성격이 남들보다 예민한 것도, 섹슈얼한 콘텐츠에 관심이 없는 것도,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 것도, 다치고 버려진 죽기 직전의 고양이들을 길에서 주워 기르고 있는 것도, 사람이 싫은 것도, 다 네가 성폭행을 당해서 그래. 불쾌했다.

    내가 가진 이 복합적이고 많은 분모들이 죄다 ‘고작’ 성폭행 때문에 생긴 것이라니? 앞에 앉은 이 사람은 어찌 되었건 간에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돕고 싶어 하는 좋은 사람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방식으로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납득 시킬 생각만으로도 나의 일부가 소모되고 피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앞에 앉은 이 사람과 나의 일상을 나누고 싶은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더 대화를 이어가기가 피로했다. 그래서 내담을 그만 진행하고 내 방, 내 침대에 가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선생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잠깐만, 하시고는 ‘생명 사랑 서약서’라고 볼드 한 서체로 제목이 적힌 문서를 한 장 꺼내셨다.

    생명 사랑 서약서. 나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절대로 자살하지 않을 것을 다음과 같이 약속합니다. 나는 이런 것이 없어도 충분히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고 있었다. 20대 초반까지 자해를 좀 하기도 했지만 이미 예전 일이었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인해 밑바닥 없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기다리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알고 혼자 잘 견디게 된 것도 벌써 꽤 되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예민함과 불안에 대한 문제는 스스로 잘 컨트롤하고 있고, 최근에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몇 가지 의논을 드리기 위해 찾은 상담실에서 잠재적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가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이루어 놓은 안정 상태가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

    서명을 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지만 선생님은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서명 밑에는 증인도 적어야 했다. 내가 자살하지 않게 지켜보고 조력할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했는데, 보통은 부모님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는다고 했다. 나는 독립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게 된 지 10년이 되어 가는데 부모님 이름을 적을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당시 남자친구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나서야 의자에서 일어 날 수 있었다.

    흔히들 본인에게 맞는 상담사를 찾기 위해 많은 과정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내 상담실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정신의학과는 택시를 타고 30분 거리에, 상담 센터는 그보다 더 멀리 있었다. 교내 상담실도 그 센터에서 상담 선생님들이 파견 나오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이때 처음 해보았는데 첫 내담이 이렇게 풀려버리니 답답함과 불쾌감을 느끼며 상담이라는 분야에 대한 회의를 품었다. 더 좋은 선생님, 페미니즘과 여성 심리와 정신의학에 좀 더 능통하여 더 편안한 내담을 진행할 역량이 있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안 것은 이보다 나중의 일이다.

    내담 중 불쾌감이나 탈력감을 느꼈다거나, 상담사의 역량 부족을 느꼈다거나, 상담 시설에서 오히려 2차 가해를 당했다는 등의 경험담은 너무나 많다. 상담 센터를 이용해 본 지인들에게서 들을 때도 있지만 보도자료, SNS에 올라오는 관련 콘텐츠들을 접하기도 한다. 이 글로 첫 내담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나는 별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상담 별거 없던데? 그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 하며 넘길 수 있지만 내상이나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문제를 홀로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도움과 치료가 필요해서 상담실을 찾았다가, 도리어 더 깊은 내상을 입고 밀폐된 공간에서 2차 가해를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좋을까?

    나는 상담 업계의 업태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의료와 마찬가지로 상담도 재화를 지불하고 선택하는 서비스로 본다. 어떤 장소에서건,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어야 그것을 서비스 업종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의료 서비스의 경우는 수준이 어느 정도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몸이 아프면 쉽게 집 근처 병원에 가 약을 처방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몸이 아플 때에는 나에게 맞는 의사를 찾기 위해 치료의 골든타임을 넘기면서까지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상담 업계에서는 이미 아픈 상태인 내담자가 본인에게 맞는 상담사를 찾기 위해 반복해서 본인의 내상을 들춰내며 괴로워하고, 반복적으로 검사지 기입에 시간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고 있다는 인상도 받는다.

   그런 불편을 느꼈음에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일주일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상담실을 찾았다. 그리고 나에게 하나 통보도 없이 상담 선생님이 재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교내 상담실에서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졌다.

    검사 결과를 듣고는 싶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안정되어 일상을 잘 컨트롤하고 있는지, 그것이 지표로 어떻게 잡히는지 궁금했다. 바뀐 상담 선생님에게 간략하게 이전 방문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하고 검사 결과를 들었다. 요약하자면 우울과 트라우마에 대한 수치가 엄청 높게 나왔지만 스스로 그런대로 잘 컨트롤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결과를 듣고 나서는 그냥 마음이 바뀌어서 상담실에 재방문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결과 지표도 스스로 잘 컨트롤할 수 있다고 나왔으니 더더욱 상담이 불필요할 것 같다, 내담 담당해 주셔서 감사하고, 추후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재방문 하겠다고 말씀드린 뒤 상담실을 나섰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스스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뭘 하면 좋을지, 누굴 만나야 할지에 대해서 나는 좀 더 긴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기로 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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