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빠친구딸의 결혼식(1)

아버지는 가끔씩 내게 결혼하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 ‘아빠 퇴직 2년 남았어. 그 안에 결혼해야 축의금을 회수하지’, ‘회사 가지 말고 시집이나 가’, ‘친구가 아니라 남편을 데려와야 할 거 아니야’ 등등. 그때마다 나는 왜 아버지가 나에게 결혼을 하라고 할까 궁금해 하며 그 이유를 추측하곤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모라는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 말이다. 아버지는 회사 다니는 것이 너무도 지겹고 힘들지만 ‘너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내색을 내 평생에 걸쳐 하셨다.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물리적인 것도 함께, 성인이 된 후에는 정서적으로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물론 그런 것들이 회사 다니기 싫다는 뜻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등학생 때는 직접 그런 말을 듣기도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돈을 어느 정도 모은 동생이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동생이 나간 방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면서 너무 좋아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께 취미를 즐길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는데 가족들 때문에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시집 가’ 만이 아니라 ‘너는 언제 동생처럼 독립할 거야’ 라고 말하시는 것을 보니 방이 하나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로부터 결혼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아버지는 이미 부모역할에서 벗어났는데 왜 그러시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미 성인이고 아버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아버지께 알려드리지 않은 내가 잘못한 건지 아니면 나를 놓지 못하는 아버지 문제인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부모님 세대는 자식이 결혼을 해야지만 ‘성인’이 되었다고 인정하니 이것은 세대갈등인 것일까. 결혼하라고 압박하는 아버지와 결혼할 생각이 없는 나의 갈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주 혹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서 결혼하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가능성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어서 집안일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내와 두 명의 딸만 있어서 그랬는지 아버지의 왕 노릇은 심각했다. 자신이 왕이면 아내는 왕비이고 딸들은 공주 대접을 해줬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 외의 다른 가족들을 전부 ‘시녀’로 대했다. 나는 결혼을 하면 여성은 그런 상태가 된다는 감각을 온 몸으로 익혀버렸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된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내가 굴종을 내면화했다는 점이 비극이었다. 상대방이 그렇지 않으면 뭐하나 내가 그러고 있는데. (손님으로 초대된 집에 가도 저절로 집안일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나에게 결혼하라는 말은 다른 남자의(혹은 그 집안의) 시녀가 되라는 뜻이었다. 너무도 굴욕적이고 분노가 치밀었다. 이 이야기를 아버지와 한 적이 있었다.
 
“얼른 결혼해.”
“나는 엄마같이 살기 싫어. 결혼 안 할 거야.”
“아빠같은 사람이랑 결혼을 안 하면 되지.”
 
아버지의 심정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스스로를 안 좋은, 실패한 남편이라 말하면서 딸에게 자신 같지 않은 사람을 만나라고 하는 말이 어이가 없었다.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라면 행동을 고치면 될 텐데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화가 났다. 자신은 가부장적인 남편이고 아버지이지만 행동을 고칠 생각은 없다는 것. 그렇지만 자신의 딸은 자신 같은 남자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논리였다. 가부장적이지 않은 한국 남성을 ‘유니콘’에 비유하는 게 이해가 갔다.
 
아버지가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혹은 몸에 밴 가부장적 문화 때문에 가족들에게 그렇게 대했으리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사는 게 지긋지긋했고 내 스스로가 싫어졌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버지가 자식을 낳지 말고 혼자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어머니와 둘이 살든지. 둘이 결혼해서 사는 것까지야 내가 알 바 아니지만 아이는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원망했다. 부모님을 탓함으로써 나 스스로를 부정해왔던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이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와도 오랫동안 싸워왔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감정은 내가 싫다는 감정과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상대방은 슬퍼할 것이었다. 그게 또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들었다. 감정표현이나 행동이 너무 과하거나 극단적이 되었다. 연인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것이 힘들었다. 연애가 이런데 결혼은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현 한국 사회 제도권의 결혼(그러니까 일반적인 결혼)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래도 최후의 의심이 남았다. 아버지는 자신과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내가 혼자 살게 걱정돼서 자꾸 ‘독립해라, 결혼해라’ 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결혼이나 독립은 결국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 내가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문제이니까 말이다. 내 명의의 집도 없고 안정적인 직장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 돈벌이가 시원찮아 보이니 결혼하는 것으로 살아갈 뒷배경을 만들라고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었다. 직장 문제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애인도 같은 말을 했다. 네 아버지가 이해 간다면서, 너에게는 결혼이 답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다른 남자에게 ‘보내주겠다’고 말을 덧붙였다. 누가 누구를 보내는 것인가. 보낼 수 있는 문제인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홧김에 네가 만약 헤어지자고 한다면 다음에도 다른 여성이나 트렌스젠더를 만날 것이라고 응수했다.)
 
취집(취업+시집)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경우 결혼은 회사에서 쓰일 노동력을 집안일로 옮긴다는 의미일 터였다. 아버지와 애인은 집안일이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리라. 이 부분이 너무도 기분 나빴다. 어머니의 삶을 보면 집안일은 전혀 쉽지 않았다. 가사노동에 덧붙여 정서적, 정신적인 돌봄과 애정 쏟음 등의 돌봄 노동은 사람을 갈아 넣는 일이었다. 더욱이 회사일보다 집안일이 더 ‘열등하다’는 인식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 온 돈을 쓰는 데 눈치를 봐야했다. 아버지가 집에서 큰 소리를 쳐도 어머니가 딱히 별다른 대항을 못/안하는 것도, 아버지가 생활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어 와도 어머니가 회사일을 평생에 걸쳐 계속하는 것도 다 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존을 지키기 위해 회사, 집 가릴 것 없이 만능으로 일하는 슈퍼우먼이 됐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힘들어 보였다.
 
어머니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요즘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과 결혼하면 된다고 반박하셨다. 하지만 나는 선천적인지 아니면 후천적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받으면 어떤 형태로든 돌려주지 않고는 못 견뎌하는 성격이었다. 사랑을 받으면 그 ‘값’만큼의 의무, 책임, 역할, 다 아니라면 적어도 똑같이 사랑을 줘야한다고 개념에 박혀있었다. 사랑을 조건 없이 받는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 대신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하며 커서 그런 것일까. 맛있는 식사, 좋은 옷, 애정, 이 모든 것이 부모님의 말을 ‘잘 들어야지’만 주어진다고 배워서 그런 것일까. 연원을 파고들어봤자 나는 이미 교환가치로 사랑을 파악해버리는 구제불능이었다. 이런 나에게 취직 대신 결혼을 하라는 말은 남편에게 시녀 혹은 하녀로 취직하라는 뜻이었다.
 
한때는 이러한 뿌리 깊은 결혼 혐오 때문에 내가 퀴어가 된 것은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남성이 아닌 다른 젠더들과 연애함으로써 결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차단 해버린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결혼 문제가 아니더라도 남성들에게서 엿보이는 아버지스러움이 싫어서 남성들과 연애를 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스러움이란 타인의 입장이나 마음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돈이면 전부 해결된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남성을 피했다고 하기는 첫 연애의 시작이 남성이었으니 말이 되지 않았다. 나와 코드가 잘 맞는다고 여겨지는 남성들은 가뭄에 콩 나듯 있었고 나는 남성이라는 젠더 때문에 이들을 피하지 않았고 사랑에 빠져 잘만 연애했다. 성별에 따라 연애상대를 골랐다기 보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소통이 잘 되고 다정다감한 사람들과 잘 지냈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다정다감한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 스펙트럼에 걸쳐있는데 여성들에 더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취향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결국 퀴어였던 것이다. 결혼하기 싫어서 남성을 피했던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답습할 수 있는 '폭력성을 긍정하는 남자다움, 공감능력이 결핍된 남성성'을 혐오하고 피해온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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