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빠친구딸의 결혼식(2)

   결혼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왜 별별 이유를 다 붙여서 결혼 안 해! 라고 외치는 것일까. 찬찬히 들여다보니 사실은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었다. 애인과 데이트를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마다 같은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헤어지기 싫었다. 사회인이다 보니 주중에는 바빠서 주말에 겨우 만날 수 있는데 그조차 각자 약속이 있으면 만날 시간이 더 줄었다. 주중에도 볼 수 있었으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가는 곳에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보고 싶을 때만이 아닌 싸울 때도 그랬다. 전화로, 텍스트 메시지로 소통하다가 다툴 때가 있는데 바로 옆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더라면 싸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 결국 결혼하고 싶은 거 아닐까 싶었다.

    같은 집에서 산다고 결혼은 아닐 것이다. 결혼함으로써 발생하는 사법, 의료, 재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법적 보호자 행위, 기타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묶이게 되는 것이 형식적 측면에서의 결혼이니 말이다. 상대방과 엮이고자 하는 의사가 있어야지만 결혼을 결심할 수 있을 터였다. 한국은 동성결혼이 허용 안 되어 있으니 애인과 결혼한다고 해도 제도 안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에 대해 숙고하는 김에 법적으로도 결혼하고 싶은가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노년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명을 다해 죽는 시점에 옆에 아무도 없을까봐 두렵다는 내용의 대화를 했었다.
 
    “아무도 없긴, 내가 손 꼭 잡아 줄 건데. 그동안 고마웠다고, 당신 있어서 한 평생 살만했다고 말해 줄 거야.”
 
    청혼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누구보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웠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둘 다 꽤나 감상적이어서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손을 잡고 나란히 다니는 노인들을 보면 우리도 저렇게 늙자고 속삭였고 울컥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마음이 결혼을 원하는 마음 아닐까.

    그럼에도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마구 쏟아낸 것은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답습할까봐 무섭고 두려워서였다. 내 몸과 마음에 깊게 새겨진 가부장제 문화와 폭력성이 나 혹은 상대방을 향해 표출되어 관계를 망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애인과 한 차례 두 차례 만날수록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다양한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도 다수 포함했다. 애인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도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서 안달한다거나 애인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질투해서 심통 내기 일쑤였다. 내 생각, 감정대로 애인을 좌지우지 하려 해서 크게 싸우기도 했다. 욕은 하지 않았지만 둘 다 크게 소리를 치며 싸운 적이 있었는데 시간을 갖자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연인 관계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말이 ‘헤어져’와 ‘시간 좀 갖자’ 아닐까 싶은데 이를 생각해보면 심각하게 싸운 것이다.) 결혼을 혐오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부모님의 불화와 아버지의 정신적‧물리적 폭력이었으면서 나도 마찬가지였다. 애인과 별별 일로 신나게 싸우고 또 싸울 게 틀림없어 보이는데 부모님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른 점은 많았다. 나는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의 불화를 바라본 것이니 말이다. 부모의 불화가 아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나와 애인은 아이를 기를 생각이 없었다. (법적으로 불가능하니 말이다. 만약 가능하다고 한다면 기르게 될까? 그것도 의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 둘에게만 영향력을 끼칠 터였다. 우리 둘 뿐이더라도 화가 나서 물건을 집어던진다거나 세간살이를 부순다거나 사람을 때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내 자신이 안 그러니 말이다. 애인에게서도 (아직까지)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다툼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면 같이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하게 싸웠을 때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고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화가 나는 것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애인의 모습은 (지금까지) 괜찮았다. 애인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렇듯 싸웠어도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부정적인 것들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질투 나고 억울하고 화나고 짜증나고 슬픈 감정보다 애인과의 관계를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싸우는 도중 관계가 끊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 때면 꽤나 져주었다. 사랑에는 약자와 강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애인은 자신이 더 많이 져준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남성은 회사일을 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한다는 성별 이분법에 따른 분업 개념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3 나는 퀴어입니다2’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 애인들이 나를 ‘여성’으로 대하고 자신은 ‘남성’처럼 구는 면이 있으니 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나를 책임지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경보가 울렸다. 자신이 경제력을 책임지고 나에게 내조를 요구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여성들은 (자라온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안일이 마법의 지팡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집안일의 책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회사일과 집안일을 균형 있게 해내는 애인을 보고 있으면, 둘이 같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적으로 평등하고 평화롭게 말이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더욱더 같이 살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현실은 사랑을 망친다고 함께 사는 것이 사랑에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사이가 좋았던 연인들도 한 집에서 같이 살기 시작하면 치약을 짜는 방식 가지고도 싸운다고 하니 말이다. 경제, 건강, 부모님 부양 같이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해지는 현실이 무거운 압박감이 될 것이고 함께 사는 것이 숨 막힐 수도 있었다. 인간의 삶 어느 때고 ‘완전한 행복’은 불가능하고 불안과 고난, 고통이 일정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서로의 존재가 행복인 동시에 불행이 될 가능성도 컸다. 몸과 마음이 지쳐 힘들면 원인을 따져 내려가서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라고 상대방을 탓하게 될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했는데 문득 부모님 싸움의 단골 레퍼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랑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부모님의 영향력이 깊숙이 박혀있는 것일까. 부모님뿐만 아니라 항간에 부부는 전생에 원수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랑하는 이가 원수가 되는 일을 너무도 많이 목격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난을 겪기에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도 고난의 파도를 넘어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힘들 때면 종종 부모님을 향해 원망의 화살을 겨눴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통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부모도 한 사람의 개인이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에 불과하다는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괴로울 때 누군가를 탓하는 초라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다른 이를 원망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을까. 불안해졌다. 원망하게 되는 이는 나와 아주 가까운, 끈끈한 감정으로 엮인 이가 될 가능성이 컸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처럼 내가 다른 이에게 지옥이 되고 다른 이를 지옥처럼 느낄 위험이 항상 도사렸다. 애인에게 내가 지옥이 되고 애인이 나에게 지옥이 되면 어떻게 하나. 꼭 결혼만이 아니더라도 타인과 밀접하게 엮여서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런 이야기를 애인에게 한다고 했을 때 애인이 보일 반응이 그려졌다. 실제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내 안에 있는 애인의 영혼이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힘들면 얼마든지 나를 탓해도 돼. 그렇게 네 옆에서 위로하고 지지해줄 거니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또 울컥했다. 내 부모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닌데 내가 어떤 짓을 하든 다 감싸주겠다는 애인이 고마웠다. 물론 직접 들은 말이 아니니 애인의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말은 바꿔 말해 내가 애인에게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애인이 고통 속에 나를 탓한다면, 괜찮다고 얼마든지 탓하라고 고통스럽지 않게 될 때까지 옆에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몇 차례 노력이나 설득을 하고 그 후에는 애인의 뜻을 따라줄 것이다. 물론 잘 지내는 지금이야 그렇지만 나중에는 또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어쩌다 퀴어: 무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정체성 수난기(1)  (0) 2019.08.09
#9 아빠친구딸의 결혼식(3)  (0) 2019.07.26
#7. 아빠친구딸의 결혼식(1)  (0) 2019.06.28
#6. ‘남자친구’라는 단어  (6) 2019.06.14
#5. 현실 도피를 위한 공상  (0) 2019.05.31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