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빠친구딸의 결혼식(3)
- 어쩌다 퀴어: 무지
- 2019. 7. 26. 16:51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가족끼리 친하기도 해서 부모님이 나에게 결혼식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안 그래도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사연 많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통에 부담스러운데 같이 가자니, 전혀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 두 분만 다녀왔다. 그 후 가열차게 결혼하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일인지 시들시들했다. 아버지께 너무 가까운 사람이어서 그런지 감정이입이 많이 된 모양이었다.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 복합적인 감정을 주는 듯 했다. 복잡한 눈빛으로 멍하니 앉아계시던 아버지가 나에게 혼잣말 같은 대화를 거셨다. “너 어릴 적에는 뽀얗고 예뻤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냐.” 지금 못생겨졌다는 말이기에 발끈해서 ‘내가 뭐 어때서?’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웃기면서도 애잔했다. 어릴 적 나를 무척 예뻐해서 집 근처나 공원, 여러 모임에 데리고 다녔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 말로 듣고 사진으로 봐서 아는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그때 내가 얼마나 뽀얗고 예뻤는지를 종종 말씀하시곤 했는데 무뚝뚝한 말투여도 사랑이 뚝뚝 묻어났다. 그런 아버지를 알아서 지금 왜 이렇게 됐냐는 말이 어릴 적과 지금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의 내가 그립다고 말하는 것임을 바로 알았다.
혹은 그 당시에는 말도 잘 듣고 어여뻤는데 지금은 결혼 할 생각도 안 하고 제멋대로 굴어 얄밉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너는 언제 결혼 할 거냐’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게 느껴졌다. 굳이 과거와 비교한 것은 현재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를 떠올린다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의 축 쳐진 어깨와 나지막한 말투가 그런 느낌을 가중시켰다. 문장은 달랐지만 세월의 흐름이 애석하다는 말로 들렸다. 쑥스러운 건지 속내를 들키기 싫은 건지, 돌려 말하는 아버지가 웃기면서도 마음은 그대로 보여서 애틋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사랑을 준 한편으로 지난 <아빠친구딸의 결혼식1>에서 말한 것처럼 폭력들도 같이 주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 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모님을 통해 인간이 선악으로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모순된 존재라는 것을 배웠다. 내 안에도 부모님의 모습이 고스란히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황과 기분에 따라 천사처럼 따스한 사랑을 주다가도 태풍이 몰아쳐 뇌우를 쏟아내니 말이다. 변덕스러운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어쩌면 결혼을 하는지 안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핵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싫고 무서웠어도 나를 딸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인정하면서 인연을 끊지 않고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끝없이 변화하며 요동치는 존재들이 서로 관계 맺고 믿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견디는 힘, 속았음에도 용서하는 너그러움, 환상 등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견디며 살아왔다.
아버지 친구 딸의 결혼식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고 이를 닦고 있는데 화장실 거울 너머로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너 이 다음에까지 혼자 살고 싶은 건 아니지?”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랑 아빠 다 죽으면 너 혼자 될 거 아니야, 그때도 혼자 살고 싶은 거냐고.”
지금 내가 혼자 외롭게 지내서 불쌍하다는 어투가 있어서 살짝 역정이 났다. ‘아닌데, 지금 나는 사랑하는 이와 깊이 관계 맺고 있어서 외로울 틈이 없는데’ 라고 반발하고 싶었으나 누구인지 밝힐 수 없으니 속으로 눌렀다. 한편으로 그런 관계가 없다고 해도 그게 큰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애틋하게 사랑하는 1대1 관계를 맺고 있었던 시간은 매우 짧았고 그 외의 시간은 거의 솔로였다. 나는 혼자일 때도 바빴고 즐거웠고, 흡족하고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풍요로웠다. 그건 사랑하는 이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말은 솔로인 사람, 혹은 에이섹슈얼(무성애자-로맨틱한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을 차별하는 말로 들렸다. 연애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왜 불완전함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불쌍한 것으로 여겨져야 하는가. 연인 혹은 배우자가 없다고 해서 완전히 혼자인 사람은 없을 터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살아가니 말이다. 꼭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꽁꽁 묶인 두 사람이 같이 살아야지만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 두 분이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외롭지 않게 잘 살았다면 모르겠는데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더 외로운 상황도 많이 벌어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랬으면서 나에게는 늙어서 혼자 외롭게 될 거라고 협박하는 것이 너무도 얼토당토않았다.
애인과 생을 마칠 때까지 함께할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고 또 그렇지 못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마음 가깝게 잘 지낼 것이니 혼자는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노년에는 부부 단 둘이 사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언젠가 TV에서 봤던 노인공동주거와 비혼주의 공동체에 대해 신나게 말씀드렸다. 배우자가 없더라도 혼자 살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이 비웃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이와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었다. 독립할 자금도 없고 앞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도 희박해 보이는 현재의 나를 바라봤다. 태연한 척 해도 이따금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결혼하라는 말로 내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님이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불안감을 부추겼다. 그럼에도 청사진이나 계획 없이 나는 지금만을 바라보고 지금을 살고 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고 애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갑을 털어 선물하면서 말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삶의 태도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불안이 그다지 크지도 않으니 말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 말고 도대체 무엇이 더 있는 걸까. 도저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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