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과 <비밀은 없다>/ by 이나
- 글 다락: 사고(思考)뭉치
- 2019. 7. 16. 16:57
흔히 여러 가지의 해석이 쏟아지는 작품이 잘 만든 작품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다양한 논의를 가능케 하고 너도 나도 다르게 해석하면서 화제에 오를수록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반도의 민족에게 있어 필연적으로 이러한 이슈는 곧 ‘돈’이 되기 때문에 일종의 입소문 마케팅과 맥락이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일찍이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일부러 여러 갈래로 해석되어 논란이 될 수 있도록 결말을 모호하게 연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불친절한 영화’는 흥행 요소일 수 있을까? 수많은 예술 영화들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불친절하지만 그 때문에 외면당하는 걸 보면 또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함량미달의 깜냥으로 한 번 유추해 보자면 당연히 재미있어야 하고 시대상을 반영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동시에 논란의 여지라는 조미료가 몇 스푼 들어가야 하지 않나 싶다.
한국영화, 그리고 페미코인
현재 한국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은 단연 페미니즘이 아닐까?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페미코인’은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의 개념임에 분명하지만 일부 남성은 진지하게 그렇다고 믿고 있는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가까스로 넘거나 흥행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수준에 도달한 여성주의 작품이 요즘에야 그나마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근자에 이러한 특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는 적지 않았지만 그들 중에서도 <미성년>과 <비밀은 없다>를 함께 살펴보았다. 우선 둘 다 여성서사인데다 연출 측면에서 매력이 넘치고 소재가 논란의 대상이며 재미있지만 아쉽게도 손익분기점 돌파엔 다다르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여고생이 지질한 아버지의 씨뿌리기 뒷수습을 위해 친구와 함께 백방으로 발품을 판다는 설정이 영화의 중심축이라는 것이 닮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아내가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도 비슷하다. 남주인공이 워낙 변변찮게 나와 역할을 고사한 배우들이 많았다는 점과, 같은 맥락을 이유로 남성 관객의 싸늘한 외면을 받게 된 공통점도 있다.
감독만 남자인 완벽한 여성 서사
<미성년>의 경우, 연기자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인데 ‘젠더 설화사건에 휘말렸던 남성의 뜨거운 반성문’이라는 한줄평이 포털 사이트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가 앞서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개봉 행사에서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농담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것을 오히려 홍보 포인트로 차용한 셈이다. 이는 서사의 중심을 여성에게 두면서 남성이자 제작자인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오지 않길 바랬다는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남성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우대로 보여 못마땅하지만, 영화 자체가 근래 한국 '알탕영화'와는 다른 페미니즘의 결을 섬세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미움이 조금 가시기도 한다. 남성 캐릭터는 납골당 버스 운전사를 제외한 학교 선생님, 편의점 손님, 두 여고생의 아버지들 등 하나같이 나잇값 못하는 속물로 그려지는 반면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입체적인 여성상이 마치 선물세트처럼 쏟아진다. 특히, 노련한 음식점 사장과 철없는 엄마의 두 가지 얼굴을 지닌 내연녀라는 넓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통해 타인에게는 손님의 내면을 헤아릴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성숙함을, 자신이 편하다고 느끼는(이라 쓰고 ‘만만하게 여기는’이라 읽는다) 딸에게는 날 것 그대로의 무책임함으로 일관하는 그녀의 복합적인 모습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그간 엄마에게 부여했던 허울 좋은 모성애라는 감옥을 깨부수는 듯한 후련함을 느꼈다. 그래, 이런 엄마도 저런 엄마도 있지! 그 동안 엄마 캐릭터가 좀 천편일륜적이었나. 또한 배우자의 외도라는 심적 위기 상황에서도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또 다른 엄마 캐릭터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병실의 모녀(사실 자매일지도), 간호사, 주차비를 삥뜯는 시골 아주머니 등 하나같이 총천연색 존재감을 폭발시키는 여성 연기자들을 보며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마치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연주자 개개인이 모여 이룬 오케스트라 협연과 같은 느낌이다.
감독도 여자인, 하지만 현생만큼 복잡한
이처럼 <미성년>의 완성도는 젠더 감수성을 지닌 배우 출신 감독의 섬세한 디렉팅과 여배우들의 호연으로 이뤄졌지만 감독이 남성이라는 아쉬움이 있는데, 이를 달래줄 수 있는 작품으로 감독도 주인공도 여성인 <비밀은 없다>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모녀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지라도 지극한 애정을 갖고 각자의 방식으로 위선적인 가장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려다 벌어진 비극이 다소 불친절하게 전개되는데, 누가 범인인지 파헤쳐 나가는 과정도 지역감정, 신분 및 빈부격차, 정치적 이권 다툼, 학교 폭력과 비인격적 교육제도 등의 이슈와 맞물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나같이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임에는 이견이 없을 듯. 사건의 본질을 향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정치인의 충실한 반려자라는 일종의 꼭두각시에서 감정이 있고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엄마로 거듭나고, 결국 남편의 불륜에서 모든 사건이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그녀는 한 마디로 폭발하여 상식과 비상식의 언저리에서 가장 잔인하게 남편을 벌한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달관에 다다른 듯한 연기가 인상적인 <미성년>과는 달리 <비밀은 없다>는 손예진을 위한 영화다. 딸의 죽음을 계기로 180도 변하게 되는 만큼 폭넓은 연기력을 요구하는 역할을 제 옷처럼 소화해 보여준다. 인상깊었던 점은 손예진의 각성 및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다소 혼란스럽다는 점인데, 딸의 실종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건에 한국사회의 병폐로 간주되는 것들이 빼곡히 엮여있다 보니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어디부터 손을 대야 그나마 나아질지 감이 안 잡히는 어지러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법과 상식의 사각지대에서 기댈 곳도 없는 채로 끝없이 대상화되며, 그 고통스러운 과정마저 소비되는 유명인의 삶은 돈과 지위라도 있다 치지만 불가촉천민 수준인 한국여성의 삶에는 대체 남는 게 뭔가 곱씹게 만드는 것이 감독의 제작의도에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고장난 시스템 속에서 인생이 제대로 꼬여버리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예외는 없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수혜자는 특정 성별과 집단으로 항상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러스트 by 보선
http://sagomungchi.creatorli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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