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loween, 2018: 다 뒤집어 줄게 / by 정수

    리부트 <할로윈 2018>은 많은 연작은 다 무시하고 원작 할로윈(1978)의 사건 이후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는 없으나 전복의 의미가 매우 유의미한 작품이다.


여자가 공포영화 좋아하는 게 어때서?


    어린 시절에는 겁이 많아서 매일 자기 전 무서운 꿈을 꾸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혼자 화장실을 가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무서운 이야기나 영화를 즐겨봤다. 그리고 이제는 즐기는 장르가 되었다. 공포영화나 B급 장르 영화를 재밌어 하다 보니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받기도 했는데 내가 ‘여자’라서 더 신기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부끄러움 없이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여성들은 숨기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도 재미있는데도 ‘내가 이런 걸 재밌어할 리 없어’ 하고 부정하고 부끄러워하고 나 역시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 숨기기도 했다.


    어쨌든 공포영화 마니아라고 하기에는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많이 본 정도라 심도 깊은 이야기를 펼쳐낼 수는 없지만 숱한 여혐 범벅의 공포영화들 사이에서 인상깊었던 2018 개봉 영화 <할로윈>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슬래셔 무비(Slash '베다,자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싸이코 살인마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모두 잔인하게 무차별로 죽이는 공포영화 하위장르. <13일의금요일>, <스크림> 등)의 대표 영화 중 하나인 <할로윈>의 리메이크이니 기대감을 안고 보기는 했지만 예상치 못한 통쾌함을 느꼈다. 사실 중반부까지는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후반에 가서는 이 영화의 의도와 섬세한 연출에 감탄하고 다시 되새기며 미쳐 내가 놓친 생각도 붙잡을 수 있었다.

    <할로윈> 원작과 다시 비교하며 보면 공포영화에서 소비되는 여성들에 대해서 얼마나 무감각하게 대해 왔는지, 이런 내용들이 당연시되어 노출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이 해볼 수 있다.


이제 니가 죽어


    <할로윈 2018>은 많은 슬래셔 무비의 전형적인 여혐 클리셰를 재치있게 전복시켰다(섹시한 의상의 여성, 섹스, 성폭력 등등). 호러퀸, 스크림 퀸이라고 불리는 원작 주인공 로리를 연기한 제이미 리 커티스가 그대로 역할을 맡아 50대가 되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부터, 다 뒤집어주겠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정신병동에 감금된 마이클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은 로리는 이날을 위해 준비했다며 복수심에 불타는 느낌이 아닌, 냉정하게 ‘내 손으로 죽이기 위해서’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물론 영화에서 로리와 가족들이 마이클의 그늘 속에서 편안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살인마 캐릭터들에겐 특징이 있는데 할로윈의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의 특징은 어마어마한 힘과 생명력이다. 그러나 2018 버전에서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존재감이 없다는 게 영화의 매력 중 하나로 다가온다.


    슬래셔 무비에서 언제나 여성의 나체와 처참하게 죽은 모습이 전시되던 것과 달리, 원작 할로윈을 오마쥬한 장면들을 전복시켜 남성의 죽음만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죽을 때마다 유독 강조되는 여성의 비명도 없다. 원작 할로윈의 로리는 순진하고 똑똑한 여성이기에 살아남는 공포영화 법칙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항상 살해당하는 인물들은 섹슈얼한 장면, 섹스 도중, 혹은 멍청한 행동을 하다 죽고는 하는데 할로윈 2018에서는 여성이 어떤 성격과 행동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도중에 살해당한다.


    영화 속 베이비시터가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돌봄받는 아이가 흑인아이라는 점도 나에게는 인상깊었다. 내가 본 공포영화 속 대부분의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백인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침입하는 바람에 2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베이비시터가 살펴보려고 올라가려고 할 때 꼬마애가 “가지마, 저 형 먼저 가보라고 해”라고 하는 부분처럼 깨알 같은 재미가 곳곳에 숨어 있다. 


    할로윈 코스튬 파티 장면도 나오는데 로리의 손녀딸과 남자친구는 보니와 클라이드(유명한 커플강도) 속 캐릭터의 성별을 바꾼 코스튬을 입었다. 그 선택이 크게 특별하다 할 것까지는 없지만 공포영화에서 여성이 전형적인 섹시한 코스튬을 입고 도망치는 모습을 전시하지 않고 오히려 남성이 하이힐을 신고 뛰다가 거추장스러운 하이힐을 벗는 장면을 굳이 잡아 보여 줬다는 점이 하이힐을 신고 뛰는 게 불가능하고 불편한지를 보여주는 의도라 생각한다. 


    원작 할로윈의 유명한 장면이 몇 있는데 잔인한 살해 장면, 스릴 넘치는 추격 장면 등 또한 반전되어 연출되었고, 높은 창문에 떨어져 죽은 줄 알았던 마이클이 사라져 있는 장면도 유명한데 그 장면을 똑같이 로리가 해낸다. 그런 부분이 아주 속 시원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모든 남성이 무능력하고 지질하게 나온다. 이 점들이 재밌는 건 현실적으로 공감 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조금 답답한 부분도 있기는 한데 마지막 반전을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었던 것같다.

    답답함을 날려버릴 수 있게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원작 속 주인공 로리의 딸 손녀 세 명의 연대를 멋지게 보여 준다.


    모임 사고뭉치에서 본 첫 영화가 <할로윈 2018>이었다. 그때 나온 의견 중 할머니, 딸, 손녀로 이뤄진 여성 연대를 잘 살렸다는 점이 좋았지만, 꼭 혈육으로만 이뤄진 연대는 식상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강렬한 반전이었기에 마무리는 좀 아쉬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추가로 어린 마이클이 누나를 살해하는 유명한 롱테이크신이 2018년판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는데(그 부분은 조금 불편할 수 있다) 어린아이의 시선인데도 카메라 시선이 너무 높다는 예리한 지적도 나왔다. 

    헐리웃에서는 대박 난 영화고 페미니즘 영화로 이름 난 영화라던데 우리나라에서는 역시 흥행하지 못했고 리뷰나 평가도 좋지 않다.


강간문화


    예전에 공포영화를 볼 때는 ‘왜 여자의 비명이 그렇게 중요하게 연출되는지’, ‘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더욱 잔인하고 자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전시되는지’ 하는 의문을 가지지 못했다. 그저 이유 모를 불편한 마음만 들었다. 

    공포, B급 장르 영화는 소비하는 대상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영화는 남성들을 위한 영화이며 유독 여성의 고통을 보며 남성들이 쾌감을 느끼는 게 최근 잠깐 이슈되기도 했던 강간 문화와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같은 여성이 통쾌한 복수를 한다는 영화도 그 과정이 얼마나 끔찍한지, 얼마나 여성 혐오적인지를 보고 분노만 차오르고 끔찍했다. 여성이 주체로 살인을 하는 영화들도 불쾌한 게 대부분이다.


    요즘엔 조금씩 불편하지않고 괜찮은 공포영화가 나오고 있어서 기쁜마음이다. 물론 예전 영화들도 살펴보면 훌륭한 작품이 있다. 여성혐오를 코드를 완전히 뺄 순 없겠지만 말이다. 1977년 버전 ‘서스페리아’도 훌륭한데 최근 리메이크작은 오히려 여혐 요소가 추가된 느낌이라 실망스러워서 안타까웠다(개인적 의견).


    공포나 B급 장르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남자 감독이 대부분인데 이 장르에도 여성 감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훨씬 무섭고 참신한 영화를 만들어 낼 것임을 장담한다.


illust by celloph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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