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데이비드 슬레이드의 <하드캔디>: 스스로 집행하는 자

*해당 에세이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복수를 상상해본 적 있는가? 구체적으로 특정 개인을 파괴해야겠다는 욕구를 느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나는 있었다. 오래 전 내게 스토킹과 자살 협박을 했던 한 문인, 나는 매우 오랫동안 그를 죽이고 싶었다. 문단 내 성폭력 폭로 운동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 나는 내가 겪은 거지같은 일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뒤늦게 밀어 닥치는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가해가 진행됐던 그 시간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출근길 지하철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어둠 속을 노려보며, 나는 수도 없이 상상했다. 매일 아침 그의 집에 찾아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를 죽인다. 혹은, 과거로 돌아가 자살하겠다고 협박 전화를 받던 그때로 돌아가 온갖 통쾌한 말로 되돌려주는 상상, 반지하 집 창문 너머로 불붙인 그의 책을 끝도 없이 밀어 넣는 상상...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내가 가진 살의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떤 상상도 성에 차지 않았고, 죽어야 할 건 내가 아니었음으로 "진짜" 그를 죽여야 온전히 살 것 같았다. 지금의 내가 살인범이나 방화범이 되지 않고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용서와 지지를 주었던 여성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그에게 복수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상상하며 홀로 미쳐갔을 지도 모른다.

 

   탓하긴 너무 쉽지, 안 그래?

 

   영화는 한 소녀와 한 남자가 야릇한 채팅을 주고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헤일리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사진작가 제프와 직접 만나기로 한다. 똑똑하고 발칙한 이 아이는 가끔 수줍은 듯 그를 유혹한다. 그가 사준 초콜릿 케이크를 맘껏 음미하며 아이처럼 좋아하고, 그가 선물 해준 티셔츠를 바로 화장실에서 갈아입으며 속옷 차림의 모습을 그에게 슬쩍 보여주기도 한다. 짧게 대화를 나눈 뒤, 헤일리는 제프와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한다. 그는 매우 들뜬 모습으로 보드카 칵테일을 만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상의를 벗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제프는 점점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영화의 분위기는 여기서부터 완전히 역전된다. 얼마 뒤 제프는 의자에 묶인 채 깨어난다.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자신 앞에 서있는 헤일리에게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묻는다. 헤일리는 다짜고짜 그가 아동성범죄자라고 비난한다. 제프는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며 억울해하다가 발끈한다. 헤일리는 그런 그에게 이렇게 쏘아 붙인다.

 

   제프 너가 날 먼저 꼬셨잖아!

   헤일리 이봐, 그게 그들이 늘 말하는 방식이지, 제프

   제프 그게 대체 누군데?

   헤일리 누구냐고?! 바로 아동성애자들이지! ‘오, 그녀는 너무 섹시했어요. 그녀가 그걸 원했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는 미성년자이긴 하지만, 성인 여성처럼 행동했어요.’ 애들을 탓하긴 쉽지, 안 그래? 애가 어른 흉내를 낼 수 있다고 해서,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야!

 

   내가 누구냐고?

 

   이는 아동 성범죄가 발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자, 위계구도 속에 있는 모든 성범죄 가해-피해의 구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위치한 계급과 위치를 평평하게 지우고, 가해와 피해를 전도시키는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걔가 날 꼬셨어. 걔도 나랑 하고 싶어 했어. 너도 즐겼잖아! 그러면서 이제 와서 날 가해자로 몰고 가다니, 난 억울해! 헤일리는 그런 그를 갖은 방법으로 협박한다. 그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 그가 가장 수치를 느끼고 굴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헤일리는 그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제프’라는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가 무고한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한 것과 같이. 이 영화에서 명장면을 꼽는다면, 거세시술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그의 멘탈은 한계에 다다르게 되고, 이젠 도리어 헤일리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제프 널 찾아낼거야! 칼라바사스 출신에, 아버지가 UCW 교수인 애를 찾기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 안 그래?

   헤일리 그걸 다 믿었어?

   제프 ...너 도대체 누구야

   헤일리 난 니가 쳐다보고, 만지고, 상처주고, 망가뜨리고, 죽인 그 모든 소녀야.

 

   헤일리의 범행 동기는 첫 장면에서 유추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까페에서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 사이로 실종된 소녀 도나를 찾는 포스터가 스쳐 지나간다. 제프가 바로 그 소녀를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한 범죄에 가담한 아동성범죄자임을 영화 마지막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헤일리가 단순히 ‘똑똑하게 미친 소녀’가 아니라는 사실도. 헤일리는 실종된 소녀의 친구였을까? 사실 영화는 헤일리와 실종된 소녀 도나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헤일리도 직접적으로 도나가 자신의 친구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사라지고 죽어간 모든 소녀가 ‘자신’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지 ‘여성’, ‘약자’라는 이유로 오랜 세월 욕 먹고 맞고 사라지고 죽어갔던, 여성 폭력의 역사 속에 우린 ‘나’이자 ‘너’였다. “헤일리”는 바로 그 폭력의 고리를 끊는 자, 스스로 집행하는 자다.

 

분노 이후의 삶

 

    카메라는 복수를 성공적으로 마친 헤일리를 얼마간 따라 다닌다. 제프의 집을 빠져나온 그는 잠시 바위 위에 넋을 놓고 앉아 있다. 영화 내내 제프에게 날카로운 분노를 퍼붓던 헤일리는 사라지고, 한 평범한 소녀가 거기 있다. 복수가 허망하다는 이야길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아무리 통쾌하게 복수를 마치더라도, 사라진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 복수를 마친 뒤에야 비로소 슬픔을 표출할 수 있었던 것처럼, 헤일리 또한 이제야 겨우 상실감에 빠질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장 큰 동력원으로 삼아 쉼 없이 달려왔다. 분노는 분명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나, 개인의 삶과 일상은 분노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까지 '분노만'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지 지치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일상의 작은 행복을 손에 쥐고 살아가야 한다. 일상의 근간을 다시 천천히 쌓아가는 일, 분노 이후/이외의 삶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되어야 한다.

 

   지난 해, 나는 6명의 여성 필자들과 함께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 중 5편을 실어 공동 시집을 내게 되었다. 다시는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분노와 무력감 속에서 지나온 시간이 무용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야 겨우 내 삶 전체를 돌려받은 것 같았다. 물론 지금도 나는 종종 분노에 휩싸인다. 어떻게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다니는지 불가해한 분노 속에 놓여 비슷한 불안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 모두를 포함하여, 내 일상은 이어진다. 분노가 오래가지 않아서, 그 감정을 잠시 놓쳤다고 해서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는다. 그만큼 내 삶이 오롯이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헤일리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유유히 사라진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어딘가에서 그의 삶이 계속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건 곧 내 삶,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염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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