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우리 안의 야성
- 내가 사랑한 영화들: 은수(연재 종료)
- 2019. 9. 18. 15:56
※ 본 리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로 떠난 아이
나를 포함하여,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편부모 가족의 가슴 따뜻한 성장 서사, 벅차게 흘러가는 영상들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장면은 철창 안에 갇힌 늑대를 홀로 바라보던 둘째 아메의 뒷모습이었다. 늑대가 있는 쪽은 환한 빛으로 가득하고, 아이가 선 쪽은 철창과 같이 어둡다. 갇혀 있는 쪽은 늑대인데, 그 앞에 선 소년이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늑대와 인간의 혼종으로 태어난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왜 동화 속 늑대는 항상 나쁘게 묘사되는지 의문스러워했다. 성장의 기로에 서서 무엇으로 자라야 할지 알 수 없는 아이는 인간의 몸 안에 갇힌 자신의 야성을 철창 안의 늑대를 통해 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메의 뒷모습을 통해 나를 보았다. 불안의 기로, 내 본연의 무언가가 갇혀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그 장면을 통해 내 안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 아메는 늑대가 되기로 선택한다. 인간인 엄마 하나는 그를 좀 더 곁에 두고 지켜주고 싶어 했지만, 아메는 거대한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늑대"로 성장하게 된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는 하나의 외침을 뒤로 한 채, 산 정상으로 단숨에 올라가 길게 포효한다. 하나는 결국 그의 성장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키운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 또한 원래 살던 곳에서 평온하게 살아간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엄마'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가
영화는 엄마 하나가 대학에서 몰래 수업을 듣던 한 남자를 만나며 시작되었다. 그 둘은 사랑하게 되고, 남자는 자신이 사실은 늑대인간이라는 비밀을 하나에게 밝힌다. 하나는 그의 비밀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기로 한다. 이내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만, 쌍둥이인 유키와 아메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인 늑대인간은 사고로 죽게 된다. 늑대와 인간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에서 사는 것이 힘에 부친 하나는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한다. 고단한 적응 과정을 거쳐 시골살이에 익숙해질 무렵,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의 삶을 찾아 나간다. 둘째 아메는 이미 10살 무렵 늑대로 살기로 결정하여 집을 나가게 되고, 첫째 유키는 인간으로 살게 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기숙학교에 가게 되어 집을 나가게 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걸린 시간 12년. 실제 인간의 아이가 자라는 시간보단 짧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는 인간의 시간순으로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정하기도 전에 '엄마'로 살아야 했다. 하나는 여전히 아이들이 어릴 적에 쓰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에 혼자 남아, 뒷산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아메의 하울링 소리에 기분 좋게 귀를 기울인다. 그런 하나를 보며, 정말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나는 밝고 씩씩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미소를 잊지 않는 여성이다. 작중 시골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요즘 도시 사람'과 다르게, 그는 구시대의 가치를 간직한 현명한 여성상에 딱 들어맞는 인물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도, 앞으로의 삶도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하나'라는 캐릭터는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캐릭터의 성격 탓에 하나는 영화 내내 제대로 무너져보지 못했다. "어려울 때도 항상 미소를 잃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이 담긴 하나의 이름은 사실상 늘 여성에게 강요되어 왔던 ‘미덕’의 쇠사슬이다. 아메와 유키가 집을 떠난 뒤 하나에게 남는 감정은 평온함이 아니라, 나는 대체 무엇이었고 앞으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착잡함에 가깝지 않을까. 그간 하나는 자신을 중심으로 일상을 살아오지 못했고, 이것을 새로 재편성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을 기꺼이 다하고 소진된 자신의 삶을 환한 미소로 받아들이는 '하나'라는 캐릭터는 '자고로 아이를 가진 여성이란 어떤 미덕을 갖춰야 하는가'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아릅답게 마무리하여 관객의 무의식 속에 남는다.
아이는 어떻게 '여성'으로 자라나는가
늑대의 삶을 선택한 아메는 사실 어릴 땐 야성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였다. 아메가 늘 엄마에게 꼭 붙어 바들바들 떨었던 반면, 첫째 유키는 어릴 때부터 집안이면 집안, 마당이면 마당, 산이면 산, 모두 자기 구역처럼 뛰어다니며 살아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활기찬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는 마을 아이들과 같이 초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어렵게 엄마의 허락을 받은 유키는 학교에 가게 되고, 밝고 활기찬 성격으로 무리 없이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하지만 이내 다른 '여자아이'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 또한 얌전하고 조신한 '여자아이'가 되고자, 늑대로 변하지 않는 마음의 주문을 열심히 외운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남학생 소헤이가 유키에게 '짐승 냄새'가 난다며, 혹시 개를 키우는지 묻는다. 자신의 비밀을 들킬까 두려워 소헤이를 피해 다니던 유키는 결국 그와 실랑이를 하다 야성을 드러내게 된다. 영화 말미에 유키는 소헤이에게 비밀을 털어놓게 되고, 자신이 ‘잘못된 존재’가 아님을 ‘인정’받는다. 소헤이가 유키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비밀을 지켰다고 말하자 유키는 안도한다.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 아이가 '여성'으로 자라나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왜 유키는 인간으로 살기로 결정하게 된 것일까. 만약 영화 속 설정인 "인간의 삶"과 "늑대의 삶"을 세상의 틀에 맞춰가는 것과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이것은 여성으로 태어난 아이와 남성으로 태어난 아이의 실제 성장 과정처럼 보인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물건과 옷을 좋아하고, 개구쟁이처럼 뛰어놀지 않고, 조신한 말투를 하며 재잘거리는 것은 유키의 본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키가 인간으로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여성'으로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에게 요구되는 것들이다. 여성의 야성, 본연의 모습들은 그렇게 깎여 나간다.
만약 이 영화가 인간 사회의 틀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야성을 되찾아 산과 들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호기로운 늑대 유키와, 인간과 늑대의 조화로운 삶을 모색하며 동화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인간 아메로 끝을 맺었다면 어땠을까. 그리하여, 제법 적성에 잘 맞는 산림 관리원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여 새로운 삶을 꿈꾸는 엄마 하나와 동생 아메가 누나의 하울링 소리를 들으며 평온하게 웃으며 끝났더라면? 그랬다면 이 답답함이, 아쉬움이 조금 가셨을까.
우리는 모두 한 마리의 늑대를 가슴 속에 품고 살고 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철창 앞에 선 아메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내게도 계속해서 현실과 불화하는 본연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더라도 너는 여자니까, 너는 누나니까, 라는 이유로 수많은 철창 속에 갇히는 건 사실 '여자아이'들 쪽에 가깝다. 그 세계는 타인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인정'받는 방식으론 해방되지 않는다. 무례한 말을 한 대상에게 분노(야성)를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참지 못해 분노해버린 자신을 탓하고, 혹여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편해질까 두려워하는 유키의 모습이 이전과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소년'의 서사보다 '본연의 모습을 잃고 자존감을 잃어가는 소녀'의 서사가 실은 나의 이야기였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새로 쓰여야 할 것이다. 암벽 위 네 발로 당당히 땅을 짚고 서서 붉은 털을 휘날리며 야성을 만끽하는 유키. 자기 안의 야성과 평행을 달리던 그가 마침내 야성과 융화를 이루고 늑대 본연의 모습이 되어 달리는 모습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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