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자취하는 여자

   이번 연재의 작은 제목을 자취하는 여자라고 정해놓고는 자취하는 여자,라고 조용히 읊조려 본다.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실상 대단히 불손하다. 언젠가 ‘자취하는 여자’라는 주제로 작업한 사진들을 본 적이 있는데 반라의 여자가 속옷을 반쯤 내리고 변기에 앉아있는 모습이나 통돌이 세탁기 안에 들어가 고혹적인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었다. 이 이미지들을 처음 접했을 때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자취하는 여자는 인기가 좋다는 저급 농담의 저변에 깔린 성적 판타지가 그대로 투영된 이미지들은 현실과는 너무 거리감이 커서 화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내가 그 ‘자취하는 여자’다. 2009년 9월 초쯤 집에서 쫓기듯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으니 올해, 2019년 9월이 지나 자취하는 여자 10년 차가 됐다. 근래에는 많이 없지만, 자취를 오래 했다고 하면 이상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을 아직도 종종 만난다. 자취를 막 시작한 10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그런 사람들에게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놓고 캐물을 수 있을 만큼 내가 억척스러워졌다는 점이다. 내가 자취를 하는 것이 재미있느냐고, 무엇이 웃겨서 웃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웃음의 기색을 숨기지만 몰상식한 몇몇은 끝까지 그냥, 자취하는 여자면 인기 많겠네요, 한다.

    이런 뉘앙스는 일단 기분이 나쁘다. 내가 다른 사람이 낼 모텔비나 아껴주려고 그 고생을 해 주거 환경을 마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그런 농담은 현상적으로도 나쁜 작용을 한다. ‘그런 농담’을 하는 이들은 그런 농담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여성이 혼자 삶을 일구어 나가는 데에 어떤 고초가 있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농담은, 그 가벼움은, 나를 포함한 자취하는 여자들의 삶을 그냥 가십거리 취급해버리고 그 삶들이 가지고 있는 실제적인 위험이나 여러 문제들을 손쉽게 가려버린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살게 된 방은 집값 싼 동네의, 개중에서도 방값이 가장 싼 고시원이었다. 공용 주방에는 언제 마지막으로 설거지를 했는지도 모르겠는 프라이팬이 걸려있고 매트리스 때문에 방문을 활짝 열고 환기할 수도 없는 좁은 방에 살았다. 창문도 환풍구도 없어 방문을 닫고 있으면 해가 어디쯤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방에 빨래를 널 공간이 없어 공용 세탁실에 빨래를 널어두면 종종 옷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겉옷이 사라지는 경우는 그나마 괜찮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내 사용감 역력한 속옷을 누군가가 며칠에 한번 꼴로 훔쳐 가는 것이었다. 겉옷은 며칠이나 몇 달 뒤에 공용 세탁실에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속옷은 한 번도 그렇게 다시 나타난 적이 없었다. 입으려고 가져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내 속옷을 공용 행거에서 걷어가는 사람이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옆방 아저씨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맞은편 언니인지, 아니면 내가 파악하지 못한 다른 거주자인지 알 수 없었다.

    공용 샤워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사람이 드문 이른 오전이나 늦은 밤에 씻는 등으로 신경을 썼지만 때때로 남성인 거주자가 헐거운 샤워실 문 앞에 서 있거나 하면 놀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샤워기 수압이 약하고 온수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 빨리 씻고 방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겨울에 옷을 탈의하고 샤워실에 들어가면, 샤워실 구석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나는 샤워기에서, 온수까진 아니어도 미지근한 물이 나오길 기다리며 알몸으로 PT 체조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추위였다. 바깥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거주자들은 내가 알몸으로 PT 체조를 할 때 나는 제자리 뜀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오면 목욕 바구니들이 문 앞에 주인 대신 줄을 서 있었다.

    반 년 만에 고시원에서 탈출한 이후로 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거 환경을 보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장마철이면 비가 새서 천장이 내려앉는 반지하 방에도 살아보았고, 보증금만 맞출 수 있다면 좋다는 생각으로 유흥가 대로변의 1층 방에도 짐을 놓고 살았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안전하려 애쓰는데, 삶이 안전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지나치게 느렸다. 수도권 집값은 너무 비쌌다.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저금을 하고 나면 개인의 욕구는 너무도 간단히 거세되었다.

    내가 악착같이 ‘좀 더 나은 곳’에서 거주하려고 애쓴 이유의 저변에는 공포가 깔려 있었다. 누군가 내가 입었던 속옷을 훔쳐 간 걸 알고도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을 때, 손님이 찾아올 리 없는 반지하 방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을 때, 대로변을 향해 뚫린 창문을 통해 누군가가 잠든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공포를 느꼈다. 내가 주거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쓴 돈은 그런 공포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비용이었다. 그 방들에서 나와 2층에 살기 위해, 방범창과 CCTV가 있는 건물에 살기 위해, 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안전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특별한 불행이 아니다. 자취하는 여자들 대부분이 안전을 걱정하고 공포 때문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산다. 자취하는 여자는 누군가의 판타지로 인해 섹시한 모습으로 가공된 콘텐츠가 아니라 실제로써 삶을 살아가는 주변의 이웃이다. 그 누구도 현실의 삶에서 ‘섹시해 보이기 위해’ 속옷 차림으로 세탁기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누군가 자취를 한다고 할 때, 내가 궁금해지는 것은 그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가 아니라 과일을 챙겨 먹는지, CCTV가 있는 건물에 사는지, 삶이 지나치게 괴롭다고 느끼지는 않는지 등이다. 1인 가구 여성으로서, 제도권 바깥에서 삶을 연명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고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8년인가 9년인가를 홀로 떠돌며 자취하는 여자로서의 덕목-억척스러움이라든지, 생활력이라든지, 거주에 필요한 여러 법률이라든지, 대출이라든지-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다가 재미있게도 처음 자취를 시작했던 동네에 다시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나는 이제 고시원 골방이 아니라 상가 건물 위층 투룸에 산다. 적어도 이제는 샤워기를 틀어놓고 PT 체조를 하지 않아도 되고, 누가 방범창을 잡고 흔들까 봐 두려워하며 잠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지점은 있다.

    바깥에서 일을 보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굴다리 밑에서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기분이 좋지 않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 동네의 골목길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큰 길가에는 새 아파트가 올라오고 도서관이 지어지지만 후미진 뒷골목에는 여전히 돈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내가 살았던 고시원 건물도 여전히 10년 치 만큼 더 낡은 채로 그 자리에 간판을 달고 서 있다. 나는 운이 좋아 그 열악함에서 오래전에 탈출했지만, 여전히 그곳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

    예전에 SNS에 비슷한 요지의 짧은 글을 썼다가 ‘중산층 부르주아의 배부른 소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살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있다면 본인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남았지만, 그런 방식의 삶이 개인에게서 인간성과 취향을 침탈한다는 생각을 놓기는 어렵다. 근래는 1인 가구들의 삶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고들 한다. 정부에서도 1인 가구를 위한 여러 임대주택 사업을 실행하고 있고, 여러 대출상품도 많이 나와 있으니 발품을 좀 팔면 충분하지는 않아도 살 수는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주택 사업마다, 대출상품마다 여러 기준들이 존재하는데 당장 프리랜서만 되어도 소득 증빙에 어려움을 겪어 여러 임대나 대출상품을 이용하기가 힘들다. 만 19세를 넘지 않은 청소년은 특수한 몇몇 경우-가정폭력 피해자인 경우라든지, 청소년 가장이라든지-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복지 사각지대가 넓어지는 정책을 좋은 정책이라고 칭찬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해 제출하는 서류들은 본인의 열악함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한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다. 본인의 가난을 스스로 전시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제도의 집행 방식 자체가 나에게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의식주는 보장해야 국가가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이것이 서류의 형태가 아니라 말의 형태라고 생각하면 끔찍함이 더욱 구체화된다. 나는 가난합니다. 나는 가정폭력을 당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과 부양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없습니다. 남들 앞에서 수십 번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렇구나, 너는 불행하구나, 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임시 거처라도 마련이 된다니 이건 너무한 비극이다.

    나의 열악함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서류더미들 앞에서,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꺾일지를 생각하면 제도 자체가 일정 부분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증명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층위의 사람들은 그대로 열악하고 위험한 곳에서 주거하도록 내몰릴 수밖에 없다.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계층의 사람들이 여전히 뒷골목에 즐비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 중에 예전의 나와 비슷한 10대 후반 여학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내 현실의 악몽이다.

    누군가의 삶은 이래도 되는가, 그래도 뭔가 주니까 감사하게 생각하고 침묵해야 하는가, 이렇게라도 살아남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멈춰도 되는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다 보면 ‘자취하는 여자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그 대수롭지 않은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그냥 농담이 아니다. 누군가의 공포를, 열악함을 눈 감고 문제의식을 말살하는 잔인한 말이다. 폭력이다. 인간을 더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고민들이 이 농담 앞에서 휘발되어 버린다.

    내가 당장 1인 가구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을 보장할 세련된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 글은 개인의 불평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아닌 그 누가 발언한다고 해도 내일이나 몇 달 뒤, 몇 년 뒤에 세상이 바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경험을 토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정책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자취하는 여자’를 야한 농담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낼 수는 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1인 가구 여성의 현실에 대해 발언을 지속할 수는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농담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색하고 화를 낼 것이다. 내 삶의 고충을 누군가가 여흥거리로 소비하고 희롱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나 혼자 잠깐 참고 넘겨도 될 불편을 모두의 것으로 바꾸는 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굴다리 앞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눈을 뜬 채로 악몽을 꾼다. 두렵고 돌아가기 싫은 고시원으로 홀로 들어가는, 자취하는 여자. 그 10대 후반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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