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결혼이 뭐길래 (1)

    대학 시절, 생활비가 급해 무슨 일이건 일단 받아서 하던 시기에 지인의 소개로 잠깐 결혼정보회사에서 일을 받아다 한 적이 있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전달해주는 프로필들을 보고 적당한 멘트를 만들어내어 누군가의 구혼을 돕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유튜브 같은) 온라인 영상 콘텐츠들에 관심이 집약되던 시기였다. 때문에, 온갖 업계에서 본인들이 하는 일을 영상 콘텐츠화 하려고 애쓰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연히 조회 수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만드는 사람들도 프로필을 제공하는 사람들도 사실 그 콘텐츠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만들어낸 멘트는 성우의 입을 통해 읊어진 다음 별로 촘촘하지 못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모션그래픽 화면과 함께 온라인에 올라갔다. 기획을 촘촘하게 하고 사람마다 멘트를 차별성 있게 뽑으려면 자료가 많이 필요한데, 제공되는 프로필에는 항상 정보가 적었다. 몇 살, 무슨 대학교 무슨 전공 졸업, 혹은 무슨 대학교 무슨 전공 재학 중, 무슨 일을 하고 있음, 돈을 많이 벌고 있음. 일주일마다 비슷비슷한 프로필이 아홉 개씩 오면 나는 이걸로 무슨 수를 써서든 차별점이 보이는 멘트를 써서 넘겨줘야 했다.

    매우 짜증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지속했던 이유는, 노동에 들어가는 시간에 비해 페이가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세 편씩, 일주일 중 삼일 동안 아홉 편의 멘트를 써주면 한 달에 36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멘트 한 편당 작업 시간은 20분도 채 되지 않았으므로 그만하면 소위 말하는 ‘꿀알바’였던 셈이다.

    매주 나에게 넘어오는 프로필들에는 항상 사진이 없었으므로, 나는 나이와 전공, 직업 등을 통해 그 사람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소개 멘트를 썼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키워드를 몇 개 정해놓고 그걸 돌려쓰기도 했다. 남성의 경우에는 능력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매너 좋은, 뭐 그런 말을 썼던 것 같고 여성의 경우에는 단아한, 아름다운, 통통 튀는, 매력 있는, 등의 말을 썼다. 남성을 소개할 때는 능력과 태도 위주의 단어를, 여성을 소개할 때는 외모를 수식하는 단어를 주로 썼다는 얘기다. 나는 그야말로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그릇된 성 의식을 고착시키는 데에 일조하는 콘텐츠를 생산하며 연명했다.

    변명하자면, 당시의 나도 그렇게 쓰기 싫었다. 어느날 명문대 재학 중인 여성의 프로필이 들어와 ‘똑똑하고 재능 있는 여성분’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회사에서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여성 구혼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는 무리가 있으니 수정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구혼 시장에서는 똑똑하고 야망 있는 여성상보다 나이가 어리고, 예쁘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원한다는 껄끄러운 얘기를 그냥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돈을 주니까. 이후로 아무리 ‘똑똑하고 멋진 여성’이라 쓰고 싶어도 ‘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 구혼 시장에서 여성을 수식하는 단어는 무조건 외모와 나이에 대한 것이어야만 했다.

    넘어오는 프로필 중 남성 프로필의 대다수가 40대 이상인 남성들의 것이었는데, 그중에는 초혼이 아닌 남성들도 꽤 많았다. 두 번째, 세 번째로 결혼을 하려고 하는 남성들도 많았는데 비고 항목에는 자주 ‘30대 미만의 여성을 원함.’이라고 적혀있었다. 대신 그들은 돈이 많고 영어권 국가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여성들은 극 대다수가 초혼이었고 20대 여성들이었다. 대부분 본인의 의지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상담을 받고 가입하거나, 부모님이 당사자 몰래 가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성 프로필의 비고 항목에는 종종 ‘외모가 아주 수려함.’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이 일을 반년 조금 안되게 하다가, 회사가 유튜브에 대한 야망을 접어준 덕에 잠깐 손가락을 담갔던 구혼 업계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노동에 비해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을 잃게 된 것은 아쉬웠지만 성 역할을 고착화하는 일을 더는 해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마음만은 편했다. 이 일을 하며 나는 관성에 젖어 죄책감을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죄책감을 모른 척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다시 비슷한 일이 들어와도 거절했을 것이다.

    구혼 업계에 잠깐 있으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요즘 세상에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들에게 결혼은 필수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회사에서 연결해주는 사람들과 맞선을 보려고 한 달마다 일주일씩 일정을 빼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맞선을 보는 여성들은, 맞선 상대인 남성에게 ‘여성스럽게’ 보이기 위해 스타일 컨설팅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그 후로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업계 규모가 커지고 있다니 아마 시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방식으로-성 역할을 고착화하는 방식으로-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왜 결혼하려 하는가, 왜 결혼을 장려하는가, 오랜 의문을 다시 꺼낸 시점에서 떠오르는 단어는 ‘정상성’이다. 적당한 시기에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시선 때문에, 그 정상성이라는 것을 본인의 삶에 실현 시키지 못하면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고 나면 이후에 또 드는 의문이 있다. 누가 ‘적당한 시기에 결혼하여 아이 낳고 사는 것’을 정상이라고 규정하고, 그렇지 않은 삶에 불안감을 가지게 했는지가 궁금해지고 만다.

    이 의문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풀릴 수도 있다. 결혼이라는 것이 집단적인 현상이 되면 이득을 보는 게 어느 쪽인지를 조금 생각해보면 된다.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이성애자인 남성과 여성 둘이 결혼해 열심히 돈 벌고, 세금 내고, 기존 세대가 모두 죽은 뒤에도 똑같이 세금 내고 결혼할 아이를 낳아주고, 아이 낳은 김에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차적인 보호-돌봄-교육에 대한 책임도 개인에게 좀 떠넘겨주고, 그럼으로써 국가는 저비용 고효율로 유지될 수 있다.

    실제로 국가는 전형적인 4인 가족-부모와 자식 둘-이 유행하던 시기보다 아이를 낳지 않는 2인 가구, 1인 가구가 늘어나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국가는 국민을 지키는 울타리여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만들고 그들이 결혼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임대주택사업에서도 가장 먼저 지원하는 계층이 신혼부부인 것을 보면, 국가가 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얼마나 유용하게 써먹어 왔고, 써먹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에 선행해 가임기 여성 지도 같은 이상한 것까지 만들며 출산에 대한 중요성을 공고히 했으니 이제야 결혼의 실체가 드러난다. 도대체 결혼이 뭐길래 이 난리인가? 결혼은 수많은 관계 양상 중 하나이기 이전에, 두 사람이 맺는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기 이전에,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이 저비용 고효율의 방법론을 공고히 하려고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는 형태로 애정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자꾸 나중으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야 ‘나중에’라는 말이 폭력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개인에게 쏟아지던 그 말들이, 인권을 완벽하게 말살하고 누군가의 삶을 지워내는 것을 우리는 본 적이 있다. 그간 보이지 않던 많은 관계 양상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1인 가구가 보편적인 가구의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생활 동반자 등록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지만, 국가는 ‘나중에’ 해주겠다고 하고는 불안으로 점철된 1인 가구들의 일상을 너무나도 간단히 뒤로 치워버렸다.

    나는 홈 셰어를 하는 1인 가구이다. 홈 메이트는 나와 전적으로 생활권을 공유하는데도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안전을 도모해 줄 수 없다. 나는 나중에 수술받을 일이라도 생기면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은 호적상 가족들에게 연락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 늦기 전에 결혼해서 새로운 법적 가족을 만들라는 누군가의 은근한 협박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그렇다, 나는 결혼한 사람들만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1인 가구의 삶을 지속하면서, 사회적 시스템이 보장하는 안정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정을 추구하려면 결국은 결혼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 협박을 당하는 상황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떠밀리듯 결혼을 선택해버리면 과연 행복할까? 결혼을 선택한 직후가 아니라 나중에라도 나는 결혼해서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이야기를 잔뜩 써놓았지만, 이미 과거에 나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던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의 확신을 담아 현 체제에서의 결혼이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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