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잇_이어진 이야기> 리뷰 / by 희음

이응과 시옷으로 서로에게 연루되기

: 김지현 <_이어진 이야기>에 부쳐

 

<잇_이어진 이야기> 전시 포스터

2020. 07.10 ~ 08.20 @돈의문박물관마을 G3

 

    김지현 작가의 전시 <_이어진 이야기>는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의 시간을 지금에 잇는 작업이다. '피해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하나하나의 개별자로서 호명하고 있는 듯하다. 구체적인 한 사람을 기억하고, 불러내고,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힘차게 그리워한 흔적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얼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 사람이 바로 김복동 할머니이다. ‘위안부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이면서 동시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여성 소수자의 몸으로 삶을 일궈온 그.

 

    작가는 그가 남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남은 우리가 더 잘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꽤 오래 고민해온 것 같다. 그가 걸었던 길을 함부로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보여주고 싶어 하고 들려주고 싶어 한 딱 그만큼만 그의 삶과 이야기가 보이고 들릴 수 있도록 하기. 그러나 그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김복동 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고, 그의 목소리는 우리의 기억 안에만 있으므로.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어느 만큼인지, 우리는 간접적으로라도 그에게 물을 수 없다.

 

    어떤 작업이 누구에 대한작업이라 할 때라도 그 작업이 꼭 그 누군가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누군가가 원하는 바를 무조건 좇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바로 그것을 해내려는 듯 보인다. ‘그것이란, 듣는 일에 다름 아니다. 더 잘 듣고 더 정확하게 옮기기. 할머니, 혹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너무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고, 그의 삶은 너무 오랫동안 침묵의 체제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노트에서 작가는 묻는다. “집안의 분위기 같은 것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나이, ‘중성화된 나이가 되어서야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은 내가 증인이며, 여기 살아있다고 소리칠 수 있었지 않았을까하고.

 

바다를 등진 장면 /  oil on canvas, 2020

 

    가령 그()가 목소리를 높이고, 연단에 오르고, 눈부신 활동과 헌신으로 넘치도록 단단한 시간을 쌓았다 해도, 그 활동의 시간이 환하면 환할수록 그가 침묵으로 잠재워야만 했던 시간은 그만큼 더 적막하고 고독한 세계로 가라앉게 된 것은 아니었을지. 이 같은 질문 앞에서 작가는 한참을 서성이지 않았을까. 질문은 김복동 할머니의 그림을 만난 뒤 더욱 본격화된 듯하다. 김지현 작가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의 시선을 강렬히 사로잡은 것은 할머니의 그림이었으며,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하던 강인한 사람이라는 첫인상과는 달리 그림 속의 할머니는 흔들리고, 머뭇거리고, 서툴지만 정확한 화자였다고.

 

    작가는 또 할머니가 거칠게 터치한 빗금에 자꾸 눈이 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빗금이 무엇에 대한 상징이었는지 작가는 판단하거나 결론내리지 않는다. 다만 다시 질문한다. 왜였을까, 무엇이 빗금을 반복하게 했을까. 반복된 빗금만큼 작가의 질문도 숱하게 반복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그 의문문을 평서문으로 갈무리하는 대신, 처음 그대로를 남겨두는 방식을 택한다.

 

    그 방식은 어둠도 빛도 아닌 모호한 빛깔을 머금은 숲, 바다, 건물의 형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작가의 그 그림들 역시 김복동 할머니의 그림만큼이나 흔들리고, 머뭇거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 작가가 할머니를 듣는 가장 윤리적이고 정확한방식이라는 것을. 그것은 또한 관객들을 마주하는 작가의 윤리이기도 한 듯하다. 작가의 그림들을 통해 관객은, 관객인 나는 할머니()의 시간과 이야기 쪽으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어둠도 빛도 아닌, 서늘함도 온기도 아닌 모르는 풍경 앞에서, 조심스럽지만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시간을 상상해보려 애쓰게 되니까.

 

남쪽 바다 / oil on canvas, 2020

    

    전시장 초입에 놓인 소시집은 작가가 직접 쓴 아홉 편의 시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중 <>이라는 마지막 시의 한 구절이 이런 작가의 속내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했다.

 

    우리의 시간은 이어져 있어요, 라고 물에 비친 둥근 얼굴을 향해 오랜 것을 말하고 싶었으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나는. - 몸 깊은 곳의 소리를 밀어내는 긴 파동.”

 

    오랜 것을 말하고 싶었으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 즉 입과 손이 얼어붙고야 마는 재현의 불가능성 앞의, 수없이 되풀이되는 질문의 소용돌이 앞의 고백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멀미를 견디며 손끝을 움직이고 입술을 떼어 우리 앞에 무언가를 내어놓았으니, 작가를 이어(‘’) 이제 우리가 흔들릴 차례다.

 

    사람이 사람을 듣는 시간,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시간, 한 사람의 기억에 또 한 사람의 기억을 가까스로 잇대는 느리고 사려 깊은 시간이, ‘이라는 전시 공간을 탄생시켰다. 전시 제목 이미지에서 보이듯, 잇을 받치고 있는 ㅅ자 두 개가 한자 (사람)을 연상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렇게 이 공간은 공간에 든 모두로 하여금 서로를 잇는작업에 기꺼이 참여하도록 이끈다.

 

바다 연작 슬라이드

 

    그런데 이와 별개로 앞선 인용 구절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또 한 가지는, 그 안에 든 파동이라는 단어가 입속의 혀처럼 부드럽게 감긴다는 점이다. 전시를 본 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텐데, 이는 전시 작품으로 유독 바다 그림이 많은 덕분일 것이다. 바다, 하면 파도, 파문, 파동이 따라 붙는 건 당연하니까. 긴 세월, 바다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아 지내온 김복동 할머니의 삶이 이곳 전시장에 고스란히 옮겨놓아진 것만 같았다. 그중 슬라이드 작업으로 엮인, 하나가 아닌 십수 개의 제각각의 바다는, 마치 김복동 할머니의 다양한 마음의 결, 할머니가 겪어낸 입체적인 삶의 시간들을 펼쳐 보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사려 깊음이 아닌가 싶었다. 김복동 할머니와 할머니가 살아낸 삶을 어느 하나, 어느 한 색채로만 환원시키려 하지 않으려는 마음 말이다.

 

    같은 시에 등장하는 다음의 구절도 흥미롭다. “할머니들은 모두 같으면서 모두 다르다. 일십만 명 중에서 나와 이어진 그 사람은 발끝에 이십만 개의 둥근 그림자를 드리운 듯했다. 중심 하나를 나눠 쥔 그림자들은 주름진 연못의 파흔 같으므로. 거기서 몇 개의 그림자만 잘라 가져올 수는 없었다. 나는 손가락을 펴 허공에 조그만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려 넣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감히 짐작한다. ‘아래에 있는 이 할머니를 듣거나 잇는 남은 우리들이라면, ‘이라는 글자 안의 ‘o’은 할머니을 일컫는 것이리라고. 예컨대 십수 개의 색과 형태로 재현된 바다은 김복동 할머니의 시간들인 동시에 할머니들의 시간이기도 할 거라고. 그렇게 우리들은 이응과 시옷으로 서로에게 연루되어 어떻게든 서로를 들으려 하는 중인 건 아닐까. 다만 작가는 어떻게 듣고 어떤 식으로 서로를 책임지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인가를, 다양한 갈래로 흔들리며 뻗어나가는 회화의 형식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가려지다 / oil on canva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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