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통통한 수다쟁이 할머니, 아녜스 바르다 by 정수

    작년 여름, 친구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보게 된 영화가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고, 허허롭던 일상에 에너지가 한가득 차오르는 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를 작고 통통한 수다쟁이 할머니라 불렀던 바르다 감독은, 마치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바르다 감독은 원래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영화감독이 되었고, 노년에는 설치 미술 작가로도 활동하며 많은 업적을 쌓았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당시 프랑스의 유일한 여성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자신이 여성감독으로 과소평가됐다는 평가는 원하지 않았다.


“저는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요.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는 충분치 않겠지만요. 비록 페미니즘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제가 해온 작업의 결과로 저는 페미니스트가 되었죠.”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스틸컷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여성 정체성의 위기를 그린 바르다의 첫 번째 시도였다고 한다. 바르다는 클레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제게 클레오는 전형적인 캐릭터예요. 벌거벗지 않은 캐릭터 클레오는 아름답죠.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의 주위에 차단막을 쳐요. 미신, 교태, 과장된 여성성 같은 것들로요.”


    자신이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클레오, 그는 어디를 가나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런 클레오가 불안감에 사로잡힌 상태로 두 시간 동안 카페를 다녀오거나 쇼핑을 하고, 택시 또는 버스를 타고 공원에 드는 과정을 카메라는 충실하게 뒤쫓는다. 그렇게 1960년대 초 파리의 일상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아름다운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마치 바로 옆에서 클레오가 함께 걷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흐트러져 가는 클레오는 주변 지인들에게 불안을 털어놓지만 그들은 클레오의 감정에 무관심하다. 클레오의 주변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무심한 대사 안에 그들이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잘 드러난다. 그들에게 여성은 그저 아름다운 얼굴로 아름다운 표정만 짓고 있으면 그만인 존재다.


    이후 클레오가 검정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고 혼자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되면서 클레오에게 변화가 시작된다. 클레오는 누드모델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간다. 클레오는 누드가 부끄럽지만, 클레오의 친구는 그들이 벗은 몸을 보는 게 아니라 형태나 아이디어를 보는 거라며 당당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누드는 바르다 감독 영화의 공통적인 주제 중 하나다.


“제게 누드는 형식적 아름다움과 도덕적 아름다움의 영역이 만나는 지점이에요. 이 지점은 특권적인 영역이죠. 벌거벗은 몸은 아름다움의 척도예요. 더욱이 정신적으로 벌거벗은 사람, 다시 말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은 감동적이고 아름답죠.”


    클레오는 모델 친구의 모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낯선 군인과의 만남으로 자신이 무언가에 제대로 빠져본 적이 없고 벌거벗은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 초반에는, 어디를 가나 시선 세례에 놓일 뿐 아니라 그 시선 안에 갇히기만 한 듯 보이던 클레오가, 그 깨달음 이후부터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주체가 된다. 아름다운 ‘대상’이었던 클레오에서 인간 ‘주체’ 클레오로 화한 것.


“영화 전체에 보여지는 여성이 클리셰가 되기를 거절하는 순간, 더 이상 수동적으로 주변의 시선을 받는 게 아닌 그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시선이 집중되죠.”


    영화 후반에 클레오는 병원을 가기 전 우연히 들리게 된 공원에서, 한 군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의 외모가 아닌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그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그것은 클레오가 두려움을 이기며 제대로 된 소통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자신이 그간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소하고도 소중한 것들을 깨닫고 어떤 정체성을 찾기에 이른다.


    죽음이 다가오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클레오의 정체성 찾기의 발단도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 역시 두 분 다 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이어가는 중인데, 죽음에 대처하는 두 분의 모습은 참 많이 달랐다. 얼마 전 두 분이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간 병실에서는 옆에서 코고는 소리, 앞에서 구토 소리, 그리고 그 옆자리에선 ‘오버 더 레인보우’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담담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대처하며 소통하던 그 장면이 나는 지금껏 잊히지 않는다.


@<방랑자> 스틸컷


    바르다 감독은 주체적인 여성의 정체성과 현실 속 모순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모든 영화의 주제는 모순과 이중성이다.


“저는 모순에 관심이 많아요. 내적 모순. 이 내적 모순은 한 사람을 동시에 세 명으로 만들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순간순간 아주 다르게 변할 수 있죠.”


    그의 또 다른 영화 <방랑자>는 극단적 자유를 추구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여성 모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모나의 변사체가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죽음이라는 결말을 먼저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감독은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하기보다 관객이 그녀의 상황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모나의 죽음의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은 알리지 않은 채, 모나가 살면서 만나 온 다양한 이들을 보여주는 장면들로 영화를 꾸려나감으로써. 그런 형식을 통해 모나와 그들 간 가치관의 차이, 위선과 배려·소통 등의 여러 모순이 드러난다. 모나의 삶 안에 내재된 모순 역시 마찬가지다. 모나는 자유를 원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 속에서는 더러움과 배고픔을 견뎌야 할 뿐 아니라, 폭력에도 무방비하다.


    하지만 주지할 것은 이 영화가, 좋다 나쁘다 같은 표현이 없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전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고 전적으로 좋은 사람도 없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다만 모나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바르다가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듯 보인다. 영화 속에서 한 남자는 모나에 대해 “엉덩이가 근사했다”라고 하는데, 바르다는 이를 모나의 죽음과 연결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한 여자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엉덩이가 근사하다, 라면 그건 사실상 그 여성을 파멸시키는 거예요. 그 사내가 바로 그렇게 말했죠. 그게 모나를 죽인 거예요.”


    아직 많이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본 바르다의 작품은 아름답고 유머러스하며 즉흥적이기도 했다. 가볍게 지나쳐 버릴 만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을 자연스럽게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그의 삶의 태도를 닮고 싶어서, 나도 덩달아 내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 쪽으로 자주 눈길을 보내게 되었던 듯하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겁내지 않는 바르다 감독은 그의 삶의 큰 걸음을 보여주는 연보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우며, 그의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내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 아녜스 바르다 감독에게 존경과 사랑을 전하고 싶다.


*인용 자료: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 영화 <방랑자>,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ILLUST: celloph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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