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by 정연




 

    성당은 영어로 Cathedral이다. 카시드럴? 캐시드럴? 강세가 th에 붙는구나. 발음을 기억하기 쉽지 않네.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 소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대학교에서 일했다던 로버트 아저씨도 그런 이름의 소설은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퍼블릭 도서관에 단행본은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스물아홉 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큰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안 되기 전에 한번 해보고 싶었다. 대충 시기에 맞춰 들어간 회사라 미련도 없었다. 다시 만난 남자친구에게도 그 얘기를 제일 먼저 했다. 워킹홀리데이를 가야겠다고.

 

    교환학생 이외에 처음 겪을 외국살이라 준비는 해야 할 것 같아 회화학원도 다녀보고 여기저기 정보 수집 같은 것도 좀 하고. 알아볼수록 워킹홀리데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 그 자체였다. 알아도 가고 싶었던 건 그냥, 역시 안 되기 전에 뭐라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할리팩스라는 동쪽 끝 도시에 가기로 정하고 꼭 하고 싶은 일을 몇 가지 생각해뒀다. ‘고래투어 참여하기’, ‘한국으로 엽서쓰기같은 몇 가지와 ‘<대성당>을 영어 원문으로 읽기가 나란히 적혔다.

 

    그때 영어로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읽긴 다 읽었는데··· 그래서 어땠더라.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샌드위치를 만들고 낮 세시면 퇴근하는 일상을 보내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대성당>을 조금씩 읽었다. 한글로 이미 내용을 알고 읽었기 때문에 아주 어렵진 않았던 것 같다.

  

    주인공은 아내의 친구가 집으로 방문한다는 소식에 시종일관 툴툴거린다. 유색인종에 맹인이라는, 무엇보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내 친구의 갑작스런 등장이 여간 마땅치 않다. 마지못해 셋이 식사를 함께 하고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TV 화면에 대성당이 등장하고, 아내의 친구는 화면을 궁금해 한다. 대성당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을 그에게 주인공은 대성당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대성당>의 장면 장면들은 영화처럼 눈앞에 그려지다, 말미에 이르러서 불을 켜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어둔 방에 불을 , 하고 켜는 기분이랄까. 어딘가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투덜거리는 듯한 초반 부분도 영 우습고 남일 같지 않고.

 

    모자란 영어로 원문을 더듬더듬 읽고 싶었던 건 원작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였다. 대성당을 처음 알게 된 건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했기 때문이었고, 번역작을 좋아하게 된 건 김연수 때문일 수도, 내게 가장 익숙한 한글로 내용을 접해서였을 수도 있었다. 원형에 가까운 텍스트에서 같은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뭔가를 정말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도 같고, 괜히 인생이 매끈해질 것도 같고.

 

    그래서 원문으로 읽기를 마쳤을 때에도 불을 탁 켜는 그런 느낌을 받았는가 하면··· , 역시 잘 모르겠다. 거기에 가 닿고 싶어서, 더 이해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노력한 기억만 남아있다. 고래도 보고, <대성당>도 원문으로 읽고 샌드위치도 말고 바다 건너 세상을 1여 간 구경한 뒤 시간이 흘러흘러 한국에 돌아와 그럭저럭 회사를 다니고 주인공 못지않게 툴툴거리며 살고 있을 뿐이다.

 

    <대성당>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대성당을 묘사하는 와중에 의도치 않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다른 세상을 하나 들이게 된다. 불 켜는 느낌이 좋아서 저기 멀리가 아닌 여기서 이해하려 혼란스러워 하고, 부대끼면서 산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무섭고 설레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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