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의 세계가 주는 위로, <아수라> by 윤


 

 

 

영화 <아수라>를 처음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믿었던 시절이라 <아수라>를 보고 난 후에는 불쾌감만이 남았었다. 나쁜 일을 겪는 사람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머릿속 꽃밭이던 시절에 봤던 영화 <아수라>는 한물간 영화감독의 그저 그런 범작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제목에 걸맞은 내용과 스토리로 꾸려진 영화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수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지형이 바뀔 만큼 크고 작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던 영화 <아수라>불현듯 떠올랐는데, 그 이후로 <아수라>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영화가 되었다.

 

3년 전 일이었다. 3년을 온전히 힘들어한 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아직도 누군가에게 선뜻 털어놓기 어려운 경험이다.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을 때엔 주위의 어떤 도움도 큰 효과가 없고, 자연스럽게 잊히도록 내버려둬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일이 내 주변을 맴돈 게 3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일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민다. 그 때의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경멸스러우면서 그 당시 하고 싶은 말, 해야만 하는 말을 모두 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기도 하다.

 

퇴사를 한 후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매일 술을 마시며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을 모두 써버렸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항상 울었다. 어떤 날은 취해서 잠깐 기억을 잃고 졸았는데, 흐느끼며 울고 있는 채로 깨어난 날도 있었다. 몸을 돌보지 않고 매일 술을 마시다 보니 체중도 급격하게 늘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자신을 다독여보려고 애썼다. 겪지 말아야 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겪었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무척 외로웠지만 모두들 나를 위로해줬으니 괜찮다며.

 

그 일이 있었던 바로 다음 해에는 오래된 지인들과 관계를 끊었다. 이상할 정도로 악재가 연이어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 시기 역시 무척 고통스러웠다. 오래된 친구가 있는지, 그런 친구를 얼마나 두었는지를 누군가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척도로 삼던 나였다. 그 때문에 나를 부대끼게 하는 인간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 안정감을 주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서 꾸역꾸역 참으며 괴로운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그런데 직장에서 그 일을 겪으며 나는 많이 변했다. 그 일을 겪는 과정에서 내게 의지가 되는 사람을 만난 것이 크나큰 계기였다. 그 사람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고, 불공평함과 무례함에 대해 민감해졌으며, 타인의 평가보다는 내 안의 소리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나를 알아가기 위해 더욱 애썼다. 그렇게 조금씩 민감성을 기르고 나자, 나를 아프게 한 게 분명한데도 애써 모른 척 하며 놓지 못하고 있었던 관계를 끊어낼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조금씩 해소시키고 있을 때쯤 영화 <아수라>가 문득 떠올랐다. 극중 주연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픈 아내를 돌봐야 한다는 명목으로 권력 뒤에 숨어 비리를 일삼는 형사와, 자신의 권력을 악용하여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세력을 확장시키는 정치인, 정의로운 척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검사. 영화는 인간의 추악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결국엔 모두가 처참하게 죽는 결말을 보여주었는데, 이 결말에서 알 수 없는 위로를 얻었다.

 

영화 속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하는 질문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영화는 그럴 여유도, 여지도 없는 삶을 비추고 있었다. 모두들 예외 없이 어딘가 한쪽은 곪아 있는 모습이었고, 모두들 예외 없이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억울한 이도, 억울함을 느낄 새도 없는, 당연함의 세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게 인생이라는 말처럼, 한때는 막장이었다가 또 언젠가는 히어로물이 되기도 하는 아수라같은 영화 <아수라>.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설명이 필요 없는 공평한 죽음들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겪은 아픔들을 무심한 얼굴로 위로하고 있었다.

 

, 아직도 3년 전에 겪었던 그 아픔들을 오롯이 마주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나를 곪게 만들던 관계들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내게 의미가 크다.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묵은 것들을 비워내는 과정은 사춘기에 겪던 정서불안만큼 혼란스러워, 가끔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의 세계에 집중하며 자기다움을 알아가려는 나 자신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고 싶다. 내 안의 소리를 발견하고 나로 가득한 삶을 영위할 나 자신에게. 거기서부터 다시 채움을 시작할 나 자신에게.


illust by yoon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