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어른일 필요는 없는 거예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 by 지혜





나이가 마흔에, 영화 피디였던 찬실은 항상 함께 합을 맞추던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예술 영화만 하던 찬실을 영화판에서 찾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아는 동생 영이에게 마음을 고백했으나 아주 젠틀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차인 외롭고 또 외로운 찬실 씨.

 

마흔이 되면, 아니 서른이 되면, 아니, 사실은 스무 살만 돼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늘 녹록지 않다. ‘뭐 굳이 어른이 되어야만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머리로는 애써 그렇게 생각했지만, 솔직히 마음마저 그렇게 담담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어도 결혼을 안 하거나 혹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해가 지날수록 더 실감한다. 나는 이 세계에서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고, 오래도록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내 한몸, 나아가 반려동물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유기견 구호활동과 같은 동물복지에 금전적으로 힘도 쏟고 싶고, 작업실로 쓸 수 있는 공간도 내게는 필요하다. 책이나 영화, 비싼 만년필, 쓸모없는 여러 굿즈, 일리 커피 머신, 배쓰밤 등 사치품도 적당히 사고 싶다.

 

그렇게 내 취향이 가득 담긴 공간도 있고 물건도 사야 하니까 어찌됐든 나는 계속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더 살아남고자, 회사에서 내 가치와 능력을 인정받고자 아등바등 마음 졸이며 살고 있으며, 사회에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그래,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말고, 그냥 딱 잘라 말하자. 나는 일잘러가 되어서 많은 사람의 부름을 받는 사회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고 나니깐 그냥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찬실 씨가 마스카라가 다 번지도록 버스에서 엉엉 울었을 때 나는 진짜로 어른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구태여, 낑낑거리며, 아등바등 어른이 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나이 마흔에 엉엉 우는 게 뭐 어때서.

 

찬실 씨에게 집 주인 할머니가 그래서 영화 피디가 뭐하는 건데라고 물었을 때, 그 질문에 그냥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른은 어쩌면 그냥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 나도 누가 나에게 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찬실 씨는 오래도록 방황하다가 결국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영화의 세계로 돌아간다. 오래 전 좋아했던 영화에 대한 라디오를 녹음해두었던 테이프를 카세트에 꽂아서 듣는 찬실 씨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을 때, 찬실 씨만 볼 수 있는 죽은 장국영의 영혼이 계속해서 찬실 씨의 가능성을 알아주었을 때, 내겐 그저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나는 어른이 아니다, 나는 너무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도 그게 뭐 어떻고,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



 

영화 말미에는 관객이 아무도 없는 극장 상영관 안에 찬실 씨만 홀로 있다. 결국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참패하게 되고 관객이 들지 않았어도 찬실 씨는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그리하여 나도 귀엽고 귀여운 찬실 씨가 계속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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