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상서 by 유영순
- 묵혀온 시간의 방
- 2020. 12. 29. 14:03
by soon
어머님 전상서 유영순
1
어머니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우리는 64년 전 엄마와 딸로 처음 만났지요
가난한 집의 삼남오녀 중 셋째 딸
별로 환영받진 못했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18년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히 계시겠지요
아버지도 만나셨을 테고
우리 형제들 지난날을 추억하며 아직은 형제애로 잘 지내고 있어요
아주 어릴 적 시골에서의 생활은
대나무 골목길에서 먼 산 중턱을 바라보며
일하러 부산 가신 어머니를 태운 버스를
기다렸던 기억밖에 잘 나지 않아요
부산으로 이사 와서는 온천장 파출소 사거리에서
진주 가신 어머니가 탄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지요
언제부터인지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이 많았지요
부모님 솜털 타는 일 하실 때 집에서 잠시 쉬던 어머니
빨리 일하러 오지 않는다고 아버지께서 화내시던 모습
어머니는 가위에 눌려 일어나지 못한 적이 많았다고 하셨지요
저도 가위에 눌려 일어나고 싶은데 못 일어날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참으로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또 그 가녀린 몸으로 공익사업도 하시고
때로는 빚쟁이 때문에 집에도 못 오시고 배회하곤 하셨죠
가만히 있지 말고 그래도 더 일을 해보겠다고
제가 무작정 사온 팝콘 기계를 가지고 나가서는
금강원 가는 길에서 팝콘을 팔았던 일
어쩌면 그 일을 해서 돈은 못 벌고 더 힘들기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엄마
언젠가 숙이 집에 계실 때 너무 마음이 허전해서 위로를 받으러 마산 딸네 집에 오셨건만
그날따라 저는 부부싸움한 다음날이라 돌아가시는 엄마를 붙잡지 못하고
그냥 돌려보냈던 일이 제일 마음에 걸린답니다
엄마
지금의 우리 형제들 형편에 부모님 살아 계셨더라면
그때보다 효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봐요
우아하고 고상하게 생활하시는 모습을 상상해보며
철이 너무 늦게 든 나를 내가 꾸짖어봅니다
다음에 또 쓸게요
안녕히-
2
어머니 어젯저녁 꿈에 오셨지요
언젠가부터 꿈을 꿔도 기억을 하지 못해요
어머니 세상 떠나셨을 때
한동안은 날마다, 아니 잠깐 졸 때조차 어머니 꿈을 꾸었지요
다른 형제들도 보고 싶은 마음에 꿈에 나타나기를 고대하는데
가장 못난 나에게 오시느라 다른 가족 찾아갈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
우리 집의 해결사였던 엄마
때리러 가도 엄마가
맞으러 가도 엄마가
식당 삼오점 근무할 때 네다바이* 당하고 나에게 덮어씌웠을 때
큰이모댁 오빠와 함께 우체국까지 가서 해결해주셨던 일
작은 오빠 깡패에게 맞고 왔을 때 작은 집 아저씨와 함께 해결해주셨던 일
우리 막내 성현이 가출해서 제주도 가서 데려오신 일 등등
참으로 엄마는 우리집의 슈퍼우먼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는 말 한마디 못하고 이별하고 말았을 때
우리는 목 놓아 울었답니다
꿈나라로 자주 오셔요
다음에 쓸게요 안녕히
*네다바이-남을 교묘하게 속여 금품을 빼앗는 짓
3
또 지난날을 추억해보며 보내지 못할 편지를 부모님께 써봅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은 살면서 쨍하고 해 뜬 날이 언제인지요
두 분의 결혼식 때?
많은 꿈을 꾸며 새살림을 꾸렸겠지요
아들 둘을 내리 낳았을 때?
살림 밑천인 딸 둘을 한꺼번에 낳았을 때?
어렵고 힘들었던 한평생
순간의 기쁨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이 너무 짧아 저는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 우리 형제 만났을 때 큰오빠가
아버지 막노동하시는 일 외면한 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는 이야길 했을 때
저 역시 아버지와 같은 버스 탔으면서 초라한 아버지를 외면했던 일이 떠올랐어요
힘들게 일하느라 초라함을 얻은 건데,
그 초라함으로 우리를 상급학교 보내준 아버지였는데,
그걸 배신한 저였어요
그때는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 거였다고 생각해주셔요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내리사랑이라고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것
자식들에게 베풀게요
다음에 또 쓸게요 안녕히
by soon
└ 엄마의 엄마 by 정수
내가 고등학생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학교에 있을 때 연락을 받고는 덤덤했던 것 같은데, 막상 담임 선생님께 소식을 전달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친척들과 친하지 않아서 외할머니와 자주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추억도 별로 없다. 그런데 그렇게 울음이 나온 게 신기했다. 아무래도 엄마가 얼마나 슬플까하는 생각과, 뭔지 모를 죄책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어린애들은 오는 게 아니라고 장례식에 동생과 나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다. 워낙 친척들과 만나는 게 불편했던 터라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이에 낄 수 없는 기분이 들어 참 많이 외로웠다. 우리 가족은 친가든 외가든 어디에도 끼기 힘든 가족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아주 자그마한 체형에 다정한 분이다. 그런 외할머니가 슈퍼우먼이었다니.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의 삶을 몰랐던 만큼 외할머니의 삶도 전혀 떠올려보질 못했다. 그러고 보니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인 것 같았던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혼자 힘으로 그 많은 자식을 다 키운 슈퍼우먼이었다.
지금보다 더욱 많은 것을 짊어져야 했던 그 시대 여성들은 모두 인정받지 못하는 슈퍼우먼이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 어린 시절 기억의 많은 부분을 가족들의 싸움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 엄마를 보는 외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지, 자신을 찾아 집에 온 엄마를 제대로 대접도 못하고 돌려보낸 엄마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내가 결혼하겠다고 하면서 내 삶 중 가장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을 때 엄마가 기뻐할 것 같았는데 약간 슬퍼하셨다. “그동안은 얼마나 힘들었길래...” 라고 말을 흐리면서.
엄마는 내 남편을 참 좋아한다. 질투 나서 엄마에게 종종 농담 삼아 남편이 돈 아끼는 짠돌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어느 날 내가 돈을 잘 못 벌어서 남편에게 구박당하는 게 아니냐고 진지하게 걱정했다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
엄마는 그렇게 살았던 거겠지.
언젠가 차 안에서 엄마의 고된 시집살이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던데”라며 자조적인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가 가장 기뻤던 날은 언제였을까?
엄마는 아들을 낳지 못해서 슬펐을까?
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는 아들이 아니라서 친할머니가 우셨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특별히 내 앞에서 아들 못 낳았다고 욕먹는 엄마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언제나처럼 싸움이 난 명절날, 술에 취한 아빠가 자기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울었다. 그리고 성묘 가는 길에 내가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며 엄마에게 “니는 아들도 못 낳고”라는 말을 했다. 그때 나는 그냥 숨죽여 울었고 태어난 게 원망스러웠다.
지금은 엄마 딸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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