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혐은 피할 수 없으면 직면하라지만 엄마의 죄책감은... <기억 안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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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읽을 책을 미리 정해두는 편입니다. 도서관 신착도서 명단을 훑기도 하지만, 읽을 책을 고르는 데 있어서 트위터가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합니다. 타임라인을 훑다가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혹하거나 신간도서를 알려주는 계정의 영업에 넘어가기도 하고, 출판사의 홍보에 솔깃해 앞으로 읽을 책 목록에 추가하곤 해요. 오늘 소개하게 된 <기억 안아주기>는 트위터에서 누군가의 후기를 통해 알게 된 ‘소확혐(小’確嫌),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이라는 흥미로운 부제의 책입니다. 이제 거의 지름신 영접을 위한 마케팅 용어가 되다시피 한 ‘소확행’에 기반한 개념이고요. 취업, 물가, 부동산 문제 등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인한 힘듦은 차치하고, 개별적이며 그보다 덩치가 작으면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를 어떻게 대하면 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기대하며 책장을 들추기 시작했어요.

 저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복통이나 구토, 설사 같은 소아의 기능성 질환에 휴머니즘 진료를 도입해 큰 성과를 봤다고 합니다. 환아들의 기능성 질환의 원인이 신체화 증상인 것으로 확인되면 약을 주지 않고 치료하는 의사로 유명하다고 해요. 신체화 증상이란 되풀이되는 나쁜 기억으로 인해 축적된 정신적 문제가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뜻하는데, 이러한 신체화 증상이 질병의 징후와 혼동되면 약물의 오남용과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성인의 경우는 주체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과 증상을 진술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아직 언어화가 서툰 데다 자신의 몸에 대한 주도권이 부모에게 있는 아이들은 본인보다 부모의 주관적 심리에 의해 치료가 좌우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지면의 대부분을 신체화 증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데 주력합니다. 환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가족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들의 공통점이 가족의 과도한 관심, 특히 주 양육자(하지만 한국의 현실상 99%의 확률로 ‘엄마’로 상정되지요)의 불안정한 심리와 집착 등이 관찰되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 무언가를 해보는 것이 더 낫다고 믿기 마련인데, 이 심리적 기전이 ‘행동 편향(action bias)'에서 기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설명도 덧붙이긴 합니다. 인터넷 포탈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부적절한 정보로 인한 불안도 한 몫 하지만, 대체적으로 주 양육자의 잘못으로 애꿎은 애들만 고생한다는 듯한 논조로 말해요. 엄마가 문제라는 거죠.

“...지호의 경우는 엄마가 어려서 입이 짧았고 지금의 지호와 똑같았다고 했다. 엄마가 그랬다면 엄마는 자신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은 아닌지 죄책감에 빠진다. 마음은 안타깝지만 아이를 이해하는 정도에서 끝났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내 소유물이고 내 아이의 손해는 곧 나의 손해로 느끼는 비뚤어진 손실 기피 현상을 보이는 부모가 있다. 이러한 부모는 아이가 자신과 같으면 안 먹고 잘 안 자랄 것 같으니 그것이 두려워 먹이는 데 더 집착하게 된다.”

“사실 심리적인 변 지림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대부분 좋아진다. 냄새가 나기 때문에 친구 눈치도 보게 되고 선생님으로부터 혼도 나며 창피함도 느끼면서 사회생활 속에서 스스로 익히고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혼자서 겪어봐야 하는데 괜한 걱정에 아이의 경험을 미리 막아버리는 엄마 때문에 아이는 더욱 퇴행해버린다. 아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기태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일의 나쁜 기억’으로 인해 늘 두려움에 파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표현이 아직 서투른 아이들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은 요즘같이 각박한 시절에 훌륭한 성품이자 직업적 자질일 것입니다. 유독 아이들의 미성숙함을 못 견뎌 하는, 올챙이 적을 모르는 어른들이 참 많잖아요. 다만 안타까운 것은, 저자가 환아들을 안쓰럽고 사려 깊은 시각으로 보듬는 만큼 아이 엄마에게 그 반만이라도 포용력을 발휘했더라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아이는 코감기, 목감기에 걸렸고 대증치료면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엄마의 걱정이 몹시 심하다. 아이가 입원하면 직장에 휴가를 내고 간병을 해야 하니까 약을 세게 써서 폐렴을 예방해달라고 주문한다. 사실 폐렴이 오는 것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이토록 걱정하는데 그냥 감기라고 했다가 나중에 폐렴이 되면 나한테 크게 원망하겠지 하며 의사도 걱정하기 시작한다. 결국 엄마와 의사의 걱정이 합쳐진 결과가 처방전에 반영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본질적으로 이 걱정이 ‘손해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항생제와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감기 처방전을 낸 의사와 받아든 엄마는 만족한다. 예상되는 손해를 피할 것 같고 걱정이 없어진다. 자, 그렇다면 이제 그 약은 누가 먹는가? 아이다. 내 아이가 이렇든 항생제를 자주 먹고 자라나 정말로 중요한 감염이 닥쳤을 때 항생제 내성으로 쓸 약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피한 손해가 내 아이에게 더 큰 피해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 사회는 주 양육자인 엄마에게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전가되다 보니, 엄마가 한시라도 아이에게 관심을 뗄 수가 없게 죄책감에 잠식되도록 일련의 상황을 몰아갑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에 엄마 탓을 해요. 하지만 엄마도 태어나서부터 엄마였던 게 아니었고, ‘엄마’라는 역할뿐만 아니라 다른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인데, 배우자를 비롯한 가정과 여러 조직과의 적절한 역할 조율이 없다면 결국 과부하가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누군들 자기 아이를 항생제에 절여져도 상관없다고 하겠냐고요. 자녀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비난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리고 의사의 직무태만이 뒤엉켜 항생제의 남용이라는 그릇된 결과에 다다르게 되는 것을 저자는 왜 누락했을까요. 

이러한 현상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라 할 수 있을 육아에 있어 전혀 유연하지 않은 사회, 그리고 낮은 성평등지수 간의 환상적 상관관계에 대한 서술은 이 책의 논점을 흐리고 주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저자는 본문에서 그토록 결과보다 원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원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눈을 감아버리는, 자신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입장을 보입니다. 

 결론은 부모와 가족의 지나친 관심과 걱정으로 인해 아이가 무기력을 학습하면서 기능성 장 질환이 나타나므로, 자녀를 너무 통제하려 하지 말고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을 기회를 빼앗지 말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이 밖에도 여러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합니다. 혐오에 내재된 중요한 의미가 ‘권력관계’이며, 혐오 표현은 ‘힘 있는 다수’가 ‘힘없는 소수’에게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크고 작은 편견들이 집단적으로 강화되면서 혐오로 나아가며, 편견의 강화에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확증 편향이 작용하는 것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상상이 현재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상상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동시에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덧붙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 나뭇가지 분석에 안주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우리가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우리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위험을 인식하고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해왔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에 압도되면 위험에서는 다소 자유로울 수 있어도 더 이상의 변화나 진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인과관계인 것이죠.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조직들은 기존의 프로세스를 답습하는 방식과, 보다 나은 방법을 도입해 변화를 주는 경우의 끝없는 대치와 융합이 얽히고설키면서 구동되고 있습니다. 변화를 기피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아픈 기억에 부딪혀가면서 나쁜 기억의 왜곡을 방지하고, 더 나아가 가보지 않은 길도 나서보는 과정을 통해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해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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