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낳기 싫다 by 허주영

 

* <주말엔 일탈>은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웹진쪽의 새로운 코너입니다.  

 


 

나는 엄마를 낳기 싫다

허주영


집을 구했고, 수소문한 집을 나온다
집은 떠나고 돌아가고 또다시 떠다니는 곳
집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
엄마와 나, 나와 엄마 나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또 다른 집에는 애인이 있고 다른 집에는 엄마와 길을 잃은 개가 산다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헷갈리는지
서로 기억하자고 대답하자고 안아준다
사랑은 흔들리기 위해 땅을 파고 작은 웅크림들과 접촉한다
이어지는 실타래들 나는 집을 나오고 조금 뒤에 이름의 획을 잃고 
주머니가 달린 망토를 잃고 나쁜 습관을 잃는다 좋은 건가
몇 번의 이사와 멀지 않은 옆 동네
그것은 모두 좋은 일이었다
더 넓은 곳으로 옮아 나는 환유로 유괴당한 소녀
유독 나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했었지
넓은 이 넓은 사전에서 너의 이니셜을 찾아 
누군가 나를 챠르르 구해줄 거라, 믿었지
한 번에 한 명씩 나는 나를 낳는다
나를 낳느라 엄마를 낳지 못한다 태어나고 싶어 우는 엄마
날 낳았다고 우기는 엄마 주장하는 엄마 발을 구르는 엄마
엄마는 나를 낳는 나를 목격한다 그렇게도 작은 웅크림들
나는 엄마를 목격하고 이어지는 실타래들
무리 지어 가난한 내가 픽셀의 시를 눌러 쓰고
나를 찾는 속도는 내가 도망치는 속도를 보호한다
나는 나를 낳느라 바쁘고 바빠서 흔들려 흔들려서
뙤약볕의 도시는 흥에 겨워 운다 뙤약볕의 도시가 엉엉 울 때
나는 엄마를 수소문하느라 나를 낳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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