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를 잃어버려서 다행입니다 by zxcv

* <주말엔 일탈>은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웹진쪽의 새로운 코너입니다.  


 

  담요을 잃어버려서 다행입니다

  zxcv

 

  담요를 잃어버려서
  다행입니다

 

  저를 잘 길러 돌려주세요, 홍학이 말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택견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홀새김첫단을 시작합니다 회목치기 밭장치기 학치지르기 안짱걸이 깍음다리 세계사의 한 축으로 우리는 리듬과 스텝이 되어 각자 참전했습니다 휴전을 잊었습니다 사랑하지만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잠깐 떠올렸습니다 낮에 웃는 학생들이 낯설었습니다 허수아비를 하나둘 안아줍니다 무림의 고수가 여기 동료를 찾아왔다는 듯이

 

  흰 천에 코를 풀고 싶었습니다

  흰 천에 입을 닦고 싶었습니다

  흰 천에

  고개를 파묻고 일어나지 않고 싶었습니다

 

  어우르지 않는 밤의 캠프파이어는 신에게 바칠 제물을 고르느라 한참입니다

 

  흰 천으로 덮은 상자 속의 무언가

  우리의 비밀을 너그러이 이해할 순 없을까요

  다 알면서

 

  어른은 촌스럽게 살 수 없어요 혼자 춤을 추는 중이에요 상처를 모르고 물러날 거예요

  버스의 목적지는 별의 장막을 걷어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담요를 잃어버려서 다행입니다

 

  돌아왔습니다, 모두의 주머니엔 그가 선물한 홍학이 조금씩 들어있습니다 하루가 끝나지 않을 대련으로 끝난다는 사실이 몹시 어울립니다 좀 더 화사해지는 방의 구석이 내 자리였단 걸 깨닫습니다 이젠 밀실의 교과서를 펼칩니다

 

  도무지 이기고 싶지 않습니다

  평범하게 불투명해집니다

  멸종을 기억하는 우리가 멸종해본 적은 없어서

  나를 퀴어로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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