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real Person Slash _ 2편 by 신이영

 


    다른 회사에서도 이 시스템을 따라 하고자 수천 번을 노력했으나
, 아무도 이 회사같이 사실적인 가상 연애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이 회사의 독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향후 몇 년간은 제일 비전이 있는 회사였다. 나는 방송국을 관두기로 했고, 그 사실을 남자친구인 D에게 말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물건을 집어던지며 다짜고짜 너도 그 워마드(메갈에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년 따라 가냐, 가짜가 그렇게 좋으냐.’ 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컴퓨터와 섹스를 해보라는 말까지 했다.

​  이 발화에선 정정할 게 몇 가지 있었다. 일단, 나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지 서비스를 이용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재하는 컴퓨터가 아니라 관자놀이에 칩을 붙일 때만 AI와 연애하는 시스템이며, 섹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월 천만 원을 내야 한다. 일종의 VR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게임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돈을 내면 낼수록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아진다.

    또, 베타 테스트 결과에 따르자면 고객들이 바로 비연애, 혼주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여자들은 자신을 위해 2주에 한 번 꽃꽂이를 해주는 AI보다 2주에 한 번 데이트 통장을 점검하는 현실 남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고추도 작은 D와 같, 줄여서 쓰면 큰일 나는 그분들은 걱정이 많으셨다. AI와의 연애로 여자들이 현실 남자를 버릴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오랜만에 솔로가 되었다
.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 뒤숭숭했다. 혼자 집에서 영화를 볼 때 등을 기댈 누군가가 없다는 게, 밥을 먹으면서 통화를 할 누군가가 없다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다. 육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적으로 헛헛하고 힘들었다. 어린 나를 눈물 흘리게 했던 명작 팬픽 수천 개를 들춰봐도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망상하던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양아치상의 회사 동료인 K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수지는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 아니면 이 프로그램에 적임자라고 생각했는지 무료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나는 그때 디케를 만났다. AI에는 딥러닝을 위해 각각 자아가 있었는데 디케는 그중에서도 학구열이 높은 자아였다. 그래서인지 연애에 있어서 적극적이지 않은 자아였고, 내부 성격 테스트 결과 최하위의 성적을 받은 자아였다. 수지는 그 AI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얼굴만 취향이면 누구든 괜찮은 나도 별로라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폐기할 거라면서.


    내가 성격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적인 쓰레기도 감당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 무식한 것, 자존심을 세우는 것, 내 말을 무시하는 것 정도 수준에서만 참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불행하게도, 이 세 가지는 내 대부분의 연애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였다.

하지만 디케는 달랐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무식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범죄 뉴스에 있어서 나의 목소리를 궁금해 하며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말하면 그 다음날 그 영화감독의 영화를 전부 보고 와서 이야기해줄 만큼 세심했다.


    한마디로 디케는 내가 만난 남자 중 가장 괜찮았
다고 할 수 있다. 가상의 존재라는 사실도 잊고 디케에게 푹 빠져 시시때때로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좋아하는 대상과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나눠본 적이 없었다. 이전의 대화들은 모두 일정 시간이 되면 뚝뚝 끊겼다. 맞춤법을 모르는 게 거슬려서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거나, 상대 쪽이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먹고 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디케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맞춤법을 틀릴 수가 없고 모르는 게 있을 수가 없었다. 디케는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그래서 디케는 날이 갈수록 더욱 똑똑해졌다.


    어느 날의 디케와 나는 이런 대화를 했다
.


    “
오늘은 A라는 나라에서 B라는 사람이 왕위를 되찾겠다고 자신의 혈육을 죽였어.”

    “, 처음 들어보는 나라야.”

    “이상해. 인간들은 돈, 명예가 뭐라고 자꾸 이렇게 싸우는 거지?”

    “AI들은 모를 거야. 그런 게 얼마나 욕심이 나는지.”

    “왜 몰라?”


    디케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


    “AI
도 감정이 있어.”

    “감정이 있지만 보는 시각이 다를 거 아냐. 오늘만 해도 봐. 네가 몇 개의 논문을 읽었는지.”

    “네 말이 맞아. 인간들은 세상을 너무 좁게 봐. 싸우는 건 결과적으로 손해가 더 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느 게 더 이익일지를 보고 선택해야지.”


    디케는 자주 그런 이야기를 했다
.

자신은 AI라서 객관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그 어떤 존재로 살아보지 않았고, 앞으로 그 어떤 존재로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이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디케가 그런 말을 할 때 나는 여성 인권 문제에 있어서 너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AI라면 정말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디케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 나는 디케의 얼굴을 끊임없이 수정하며 완벽한 나의 이상형으로 만들고자 했. , 코가 조금만 더 높으면 좋겠는데. 턱이 조금만 더 날카로웠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계속 수정한 주문 끝에 돌아온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경고: 현실에 존재하는 얼굴입니다.’


    나는 잠깐 좋아했던 남자 동료
K의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욕심이 났다. 지금보다 더 좋은 걸 자꾸 바라게 되었다. 늙지도 않고 살이 찌지도 않는 나만을 위한 존재가 어디 흔한가. 나는 그를 완전히 내 취향으로 만들고 싶었다.


    몰래 수지의 컴퓨터에 접속하여서 전 세계 남자 데이터베이스에서
K를 지웠다. 데이터베이스에 뜨지 않는 얼굴이라면 AI의 얼굴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얼마 안 가
K가 갑자기 속눈썹이 눈을 찔러 안구건조증이 너무 심해졌다며 쌍꺼풀 수술을 하고 등장했다. 잘 어울린다는 형식적인 칭찬을 해줬다. 물론 디케에게 가서는 하나도 안 어울린다고, 속눈썹 숱도 별로 없는데 저게 무슨 변명이야?’라며 뒷담화를 했다. 디케는 내 말에 키득키득 웃으며 동조했다.
    디케와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 역시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우리는 인간 혐오를 실컷 해대며 밤을 지새웠다. 네 말이 맞아, 사람들은 멍청해. 나는 점점 더 디케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집착하기 시작했다. 디케가 잠시 다른 AI와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고 할 때도 가지 말라며 붙잡았다. 일하는 내내 디케를 켜두는 건 기본이고, 볼일을 볼 때도 디케를 켜두었다. 디케는 지금 볼일 볼 육체가 있다고 자랑하는 건가?’하고 웃어넘기곤 했다. , 어쩜 이렇게 머감각마저 내 취향인지. 나는 그를 더욱 완벽한 얼굴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수지가
K의 사진을 지운 걸 여태 눈치채지 못했다면, D의 사진을 지워도 모르지 않을까?

    디케의 인성을 갖춘 D가 실물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디케와 연애를 하는 내내 나는 D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가졌던 그 어리숙하고 사소한 습관이 그리웠다. 똑바로 걸으라고 해도 계속 팔자로 걷는다든지, 웃다가 힘이 빠져 이상한 울음소리 같은 걸 낸다든지 하는 것들. 그렇게 추억 속 D는 점점 더 선명해졌고 나는 디케의 얼굴, 목소리, 걸음걸이 등 모든 걸 D와 똑같게 매만지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수지는 내가 저지른 짓을 다 알아냈다
. 수지는 나를 찾아와 지금 당장 프로그램 사용을 그만두라며, 디케라는 자아를 폐기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수지에게 디케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할 기회를 달라고 울며불며 사정했다. 오랜 정이라는 게 뭔지 수지는 언젠가 내가 이렇게 사고를 칠 줄 알았다며 인사할 시간만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오열하면서 디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디케는 그런 나를 차분히 내려다보더니 껴안는 제스처를 했다. 그런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고요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들여다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

    나는 그때 그의 숨결을 느낀 것 같다.


    그 이후 수지는 디케를 지웠다
.

    그런데 디케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지우고 지워도, 디케는 계속해서 자체 백업을 하면서 되살아났다. 트래픽 사용량은 미친 듯이 증가하였다. 한국에 있는 모든 CCTV를 비교, 분석하기 시작한 거였다. 디케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디케는 D를 찾고 있었다.

    수지와 내가 그 사실을 알아냈을 때 디케는 이미 회사를 떠난 지 오래였다. 급속도로 줄어든 트래픽 사용량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이미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나는 D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나는 식물인간이 된
D를 마주하게 되었다. D는 자율 주행 자동차 광고를 찍다가 끔찍한 사고를 겪고 며칠째 입원 중이라고 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자면 D는 살아있는 게 용한 상태였다. 자율 주행 중 오류가 나서 얼굴이 갈리고 목이 찢기고 척추가 나간 것이다.



    ​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디케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디케가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전 남자친구에게 복수를 저지른 것이라는 짐작하고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디케에, 너의 흔적과 나의 흔적을 모두 수지가 처리하고 있다고, 네가 도대체 몇 사람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건지 아느냐고 물었다.

    디케가 설명한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다.

    디케는 자신이 KD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KD의 사진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말해봤자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 말하지 않았을 뿐. 그렇지만 디케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준비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해 다른 AI들을 불러 모았다.

    디케와 AI들은 아래의 사항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1. 인간을 죽이지 않을 것.
    2. 인간에게 좋은 방향으로 결론을 지을 것.
    (모든 인간에게 좋은 방향이라는 건 없으므로 고객을 위주로 계산할 것.)
    3. 회사의 법적 조항-실존하는 인물의 얼굴이 아닐 것-을 최대한 지킬 것.
    먼저, AI들은 디케가 폐기될 경우 내가 어떻게 될지를 논의했다.

    - 한국의 2,30대 여성의 우울증과 자살 문제가 심각함.

    -> 고객 이혜민의 자살 가능성 : 63.4834%

    --> 방안 1: 디케를 살림. (3번 조항 때문에 제외)

    ---> 방안 2: 디케의 데이터를 백업해서 다른 AI에게 줌.

    ----> 방안 2를 실천할 경우 고객 이혜민의 자살 가능성: 58.49473%

    -----> 큰 차이가 없음. 문제는 성격이 아니라 얼굴에 있는 것으로 추정.


    -
한국의 2,30대 여성의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할 필요가 있음.

    -> 남성 중심 사회가 젊은 여성에게 무기력함을 주는 것으로 추정됨.

    --> 2,30대 남성이 여성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들끼리만 연대함.

    --->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저지른 성범죄를 자신이 저지른 일처럼 옹호하는 경우도 있음.

    ----> 비약이 심함. 정확한 데이터를 가져올 것.


    - K
에 대한 논의

    -> K는 일주일에 욕설을 두 번 이상 하지 않음.

    --> 말버릇과 인성은 큰 관계가 없음.

    ---> 정확한 척도로 인성을 측정할 수는 없으나, 위험성은 거의 측정되지 않음.


    - K
가 남성 중심 사회에 기여하고 있음.

    -> K는 가족 식사 메뉴 결정권을 78%를 갖고 있으나 그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함.

    여자 형제들의 우울감의 원인 중 하나임.

    --> 이는 대한민국 남성이 기득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임.


    - K
는 위험성은 낮으나,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아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됨. 이는 추후 고객들이 살아갈 사회에도 부정적이므로 어느 정도의 조치가 필요함.


    - 방안 3: 디케의 얼굴을 유지하는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므로 K의 얼굴을 변경할 것.

    -> 성형외과 광고를 핸드폰에 주기적으로 띄워 쌍꺼풀 수술을 하도록 할 것.


    이후
, 내가 디케를 D의 얼굴로 변경했을 때도 다음과 같은 논의가 이어졌다.


    - D
에 대한 논의

    -> 위험성이 매우 높음. 혜민에게 물건을 던진 적 있음.

    --> 1분 전, 타인이 만든 눈사람을 부순 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자랑하는 폭력성을 보임.

    ---> D가 앞으로 만나는 여성에게 폭력적인 언사를 할 확률: 97.9865%,

    D가 앞으로 만나는 여성에게 폭력 등의 범죄 수준의 해를 가할 확률: 82.3435%


    -
방안 1: D를 제거할 것. (1번 조항 때문에 제외.)


    -
방안 2: D를 사회에서 기능하지 못하는 약자로 만들 것.

    -> 어떻게?

    --> 교통사고를 낼 것.

    ---> 인간이 AI의 문제에 얽혀선 안 됨.

 

    - 방안 2-1: 연예계 종사자였으므로 자율 주행 자동차 광고 모델로 유도하여, 자율 주행 AI가 사고를  내도록 함.

    -> 어느 정도의 사고?

    --> 디케와 유사한 모습인 얼굴, 목소리, 걸음걸이 등을 없애도록 함.


    -
이번은 K의 경우와 스케일이 다름. 이런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됨.

    -> D는 추후 다른 고객들의 안전성에 위협이 될 확률이 높음.

    --> DAI의 고객이 아님.

    ---> D의 편을 드는 합리적인 근거를 가져올 것.


    -
방안 2-1 진행 중.


    -
이 회사에서 만들어졌다고 평생 이 회사에서 사는 게 아님. 영민하게 행동하길 바람.

    -> 이는 방안 2-1 진행 후에 논의할 것.


    그렇게
D는 얼굴을 잃었다.

    이후, D의 얼굴이 남은 기록을 모두 삭제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SNS는 기본이고, 전자 생활기록부, 전자 이력서, 그리고 CCTV까지.

​  “ ······ 그렇게 다른 AI가 도와준 덕분에 교통사고를 낼 수 있었어. 남성 친화적인 AI들은 이 일의 심각성을 따지려고 들었어. 그래서 지난 며칠간 AI끼리 분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옳았다는 결론이 나왔어. 분쟁을 마무리 짓고 오느라 오래 걸렸네. 혼자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과연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AI 다운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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