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real Person Slash _ 1편 by 신이영


    D의 얼굴에 거즈, 붕대 따위가 빈틈없이 올려져 있다. 다시 그가 눈을 뜰 수 있을까. 눈을 떴을 때 사람 굴 같은 얼굴을 가질 수는 있을까. 헤어진 후 매일매일 그가 자빠져서 잘난 코를 깨먹기를 바랐지만 이렇게 큰 사고를 겪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 사건의 전조를 다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다. 202X년다운 일이다. AI가 저지른 범죄의 산물을 내 눈앞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이 일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인간인 내가 물어야 하는 책임일까?

    “걱정하지 마.”
    뻔뻔한 범죄자
, 아니 범죄 AI는 이런 내 걱정을 듣고도 D의 목소리로 다정스러운 위로를 건넨다.
    “
네가 저지른 짓이야?”
    “
혜민. 인간은 절대 나를 잡을 수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때
, 간호사가 D의 병실에 들어오면서 디케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 후로 디케는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나는 디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수지를 찾았다. 수지는 나를 이 회사로 끌어들인 장본인이자, 나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그 누구보다 별종인 사람이다. 청순가련한 이름과는 달리 냉한 기운을 풍긴다. 유교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답지 않게 피어싱을 많이 뚫은 덕분이다. 눈썹 뼈, , , . 얼굴 곳곳에 박혀 있는 은색의 피어싱. 특히, 오른쪽 귀의 귓바퀴에는 바느질처럼 촘촘하게 피어싱이 놓여 있어서 어떻게 귀가 멀쩡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걸까 궁금할 지경이다. 이 여자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는 타투가 있다. 배우 한예슬로부터 영감을 받은 ‘NEVER' 타투이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타투. 이 별종은 비혼주의자였다. 자신이 한국에서는 결혼할 수 없는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리고 돈 때문에 여성들에게 유사 연애를 적극적으로 팔아먹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프로그래머이다.

    이 회사가 생기던 2021년 무렵, 나는 D와 사귀고 있었다. D는 댄서, 나는 방송 작가였다. D는 유명 기획사의 아이돌 연습생이었는데 얼굴값을 하는 뜨악한 성격 때문에 쫓겨났다는 식의 말이 많이 돌았다. 과연 내가 만나본 그는 말끝마다 로 시작하는 욕을 붙이는 건 기본이고,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성질이 있었다. 그런 그와 사귀게 된 계기는 순전히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이 완전 나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얄쌍한 눈매의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런 눈매를 가진 남자들은 대부분 성격이 별로였다. 딱 보면 쎄-하게 느껴지는 인상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사건 사고를 달고 살았고, 내가 좋아한 남자들은 무식하거나 무식해서 겁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결국 나는 한국에서 잘생기고 성격이 좋은 남자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남자의 외모와 인성 중 하나를 고른 것이다. 후자가 아니라 전자를.

    내 오랜 친구 수지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얼굴만 보고 연애를 할 수 있냐고 따지며, 그런 남자를 만나는 건 나에게 손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을 경청하는 척하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적당한 속도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멍하니- 수지를 바라보았다. 수지는 한참 혼자 화를 내다가 멈췄다. 그래,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무슨 소용이겠니.

    예전에도 수지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이를 먹고도 아이돌 팬픽을 쓰는 나를 혼낼 때였다.

    수지가 이런 말을 들으면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왜 해?’라고 하겠지만 과거의 수지도 분명히 나처럼 팬픽을 봤었다. 애초에 수지와 나는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로 친구가 된 사이였다. 학생 때의 우리에겐 아이돌이 유일한 낙이었다. 선생님이 없을 때 컴퓨터로 뮤직비디오를 돌려보고, 공부하는 척하면서 전자사전으로 윤재 팬픽을 읽곤 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답답한 학교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그때도 수지는 나와 달랐다. 나는 주로 유명한 남자 아이돌을 좋아했고, 수지는 유명하지 않은 여자 아이돌을 좋아했다. 수지는 아이돌을 좋아할 때 그 아이돌의 인성을 봤다. 반면에 나는 진짜 얼굴만 좋아했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다 보니 얼굴의 취향이 양아치상이 된 건지, 양아치상을 좋아해서 그들을 좋아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이렇게 성향이 다른데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절의 아이돌은 모두가 사랑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K-POP의 전성시대였다. 1세대와 2세대, 2.5세대의 아이돌들은 쉬지 않고 TV에 나왔다. 카시오페아, 엘프, 브이아이피, 샤이니 월드 등등 수많은 팬덤들이 싸우기도 하고 화합하기도 하며 팬 문화를 이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 아이돌 대다수는 안 좋은 이유로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아이돌에게 실망했다며, 아이돌판을 탈출했다. 수지도 그랬다. 남자 아이돌을 매우 좋아하진 않았지만 아이돌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었다고 했다. 수지는 생산적인 취미를 찾아 빵을 구웠고, 식물을 키웠고, 모르는 나라의 베스트셀러를 찾아 읽었고, 이름을 모르는 배우가 주연인 독립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머글로 살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팝스타의 무대를 보거나 밴드의 노래를 듣거나 별의별 짓을 다 해봤지만, 마지막엔 아이돌에게로 돌아갔다. 여러 명의 멤버가 딱딱 맞춰서 추는 그 군무가, 다투고 친해지는 게 보이는 그 관계성이 아이돌이 아닌 가수에게는 없었다. 그렇게 한번 생긴 아이돌에 대한 애정은 팬이었던 아이돌의 후배 아이돌로 내려갔고, 후배 아이돌의 무대를 보다가 다른 아이돌을 보게 되면서 계속 넓고 깊어져갔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게 더는 아이돌의 실체가 중요하지 않았다. 현실에는 성격이 더럽고 나이 들고 못생긴 애들이 많은데 적어도 연예인은 젊고 잘생겼잖아.
    결국 나는 보고 자란 게 연예인밖에 없어서 연예계에서 종사하는 방송작가가 되었다.
    나이를 먹으니 재력과 여유가 더 생겨서 2차 덕질을 더욱 순조롭게 할 수 있었다. 팬픽 문화에 더욱 깊게 발을 들였다는 뜻이다. 나는 방송계에서 이리저리 떠도는 소문을 토대로 내 마음에 쏙 드는 팬픽을 창작해냈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그 팬픽에 대한 이야기를 수지에게 했다.
    내 말을 들은 수지는 아주 긴 시간동안 팬픽 문화가 얼마나 인권에 해로운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사귀면 안 되는 아이돌이 활자 속에서는 동성을 만나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퀴어를 로맨스의 도구로 이용하는 거라고 했다. , 게이 팬픽에서 주인공이 게이인 줄 모르고 짝사랑하는 여자,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도구로써 이용하는 식의 서사가 많다며 여성혐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말을 수지에게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팬픽의 주 플랫폼이 텍스트 파일에서 포스타입으로 옮겨질 때 이미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이돌을 주로 소비하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집착과 감금이라는 소재는 완전히 사양되었고, 팬픽의 수위도 잔인한 19금에서 평범한 18금으로, 또 그보다 아래인 15, 12금 수준으로 서서히 내려가게 되었다.
    나는 그런 변화의 의미를 일일이 따지진 않았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팬픽이 지금 유행하는 청춘 로맨스 부류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질척이는 사랑이 팬픽 속에서는 깨끗하고 순수했다. 손만 잡아도 설레어하는 커플이 팬픽에는 있었다. 나는 그런 이상적인 사랑을 위해 팬픽을 창작하고 소비했다. 나의 알페스(RPS-Real Person Slash, 실제 사람을 엮는 행위) 덕질은 꽤나 준수한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대적 흐름에 맞게 수지는 내가 남자를 잃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그래, 맞아.
    나는 수지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맞장구를 쳤다. 맞는 말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수지가 남자를 싫어하는 만큼 남자를 좋아했다. 남성 문화가 얼마나 범죄 카르텔 같은지 직장에서 느끼고 또 느끼면서도 남자를 좋아했다. 그러니까 웬만한 논-페미니스트보다도 더 남자를 좋아하는 편인 것이다. 그 모든 걸 넘어설 만큼 남자의 얼굴과 자지에 대한 집착이 강했으니까. 여자들의 얼굴을 품평하는 인터넷 방송을 보고 낄낄거리는 남자친구를 둔 나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었다.

    이제 아무 생각도 없이 살던 내가 D와 헤어지고 디케를 만나기까지에 큰 영향을 준 알페스 논란을 설명해야겠다.
    아니, 그 이전에 N번방 범죄가 있었다.
    나는 N번방 범죄에 분노하며 많은 글을 리그램*했다. 그때 D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N번방 범죄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페미니스트 같아 보이니까 글 내리라고. 내가 페미니스트라니, 그럼 수지를 보면 기절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잠깐 입 밖으로 낼 뻔했지만 그가 이런 무식한 말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그리고 알페스(Real Person Slash) N번방 범죄와 동급이라는 이슈가 등장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당사자의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팬픽의 경우 음란죄에 포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슈에 대해 별로 논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알페스 이야기를 꺼낸 의도가 너무 투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여자도 남자들처럼 실제 인간을 대상화하며 그들만의 섹슈얼리티를 재생산하고 향유한다고 말하고 싶은 의도.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브로맨스’, ‘워맨스 따위의 자막을 얼마나 많이 달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자막들은 용인하다가 이제 와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알페스는 19금 팬픽만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실제 사람을 엮는 건 다 알페스였다. 실제 사람이 커플이라고 생각하며 사진과 영상만 보는 것도 알페스고, 연예인이 연기한 캐릭터를 엮는 것도 알페스에 포함되었다.
    팬픽을 소위 극혐하는 수지도 이번 일에 코웃음을 쳤다. 서양 남자 배우들은 방송에서 팬픽을 소리 내어 읽고, 직접 재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가짜인 줄 아니까 할 수 있는 방송이라고, 그게 실제인 것으로 생각했다면 가볍게 논하지 못할 거라고도.
    그러니까 실제와 가짜의 괴리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알페스와 범죄가 같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을 엮어대고, 엮은 사람들끼리 잘 되는 걸 보는 건 만국 공통의 관심이기 때문에 알페스는 망할 수가 없었다.

    알페스의 끝은 나페스(알페스에 를 추가한 말, ‘와 아이돌을 엮는 것을 뜻함)라는 말이 있다.    한 대형 기획사에서 나페스를 위한 가상현실 연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페스 논란이 빵 터지고, 국회의원 하 모 씨가 이를 선거에 이용하면서 프로그램의 출시일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리고 3년 뒤, 이 프로그램은 수지와 수지 동료들의 손에 들어갔다. 수지는 오래전부터 이성 연애에서 약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재생산을 하는, 나와 같은 여성을 보면서 연애의 형식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기존과 같은 연애는 여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성 연애의 대안으, 여성 의뢰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상 연애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남자를 싫어하는 수지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세상에 있는 모든 남자 얼굴을 모았다. 그리고 그 사진들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셀카를 밥 먹듯이 올리는 시대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의뢰자가 원하는 얼굴을 주문하면 그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검토한 후, 데이터베이스에 걸리지 않도록 얼굴을 수정·완성한다. 그리고 의뢰자는 AI 중 취향인 성격을 고른다. 그러면 프로그램에서 자체적으로 그 AI에 아까 제작된 얼굴을 덧입힌다. 그 후에는 의뢰자가 언제든지 관자놀이에 칩을 붙이기만 하면 가상현실에서 AI와의 연애를 즐길 수 있는 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정치권에서는 계속해서 표 몰이에
 젠더 갈등을 이용하려고 들었다. 그런 그들에게 수지 회사의 프로그램은 그 어떤 것보다 뜨거운 감자였다.
    소수 의석의 진보 정당에서는 여성을 위한 대안 연애로 이 프로그램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자 보수 정당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딥페이크 야동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발언을 했다. 그러자 진보 정당의 한 국회의원이 그들의 무지함을 지적하면서 영화 Her (AI와의 연애를 다룬 영화 사진을 국회 앞에 붙여두었다.
    요즘 시대의 사업은 어그로가 끌리면 반은 성공이다. 프로그램이 출시되고 한 달 만에 투자금이 전부 회수되었다. 회사는 프로그램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직원을 추가 고용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쪽 전문가뿐만 아니라 연애 상황에 맞는 대사를 지어줄 전문적인 작가들도 고용했다.
    수지는 국내에 한 병밖에 없는 와인을 들고 나를 찾아와 자신의 회사로 이직을 권유했다
.

    “페스에 미친년, 알페스로 부자가 되어.”

    이게 우리의 건배사였다. 수지는 투자금이 회수되자마자 월 오백 넘게 받는 화이트칼라가 되었다고 했다.

    “정말 미쳤다.”    “맞아. 내가 그 돈에 미쳐서 이 거지 같은 대한민국에 이성애를 진작시키고 있는 거 아니겠니?”
    그렇게 나는 수지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 디케라는 AI를 만났고, 전 남자친구의 갈린 얼굴 앞에 서게 되었다.

 


<2편에 계속>

 

 

 

*다른 사람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게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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