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츠와 성실하고 배고픈 친구들 by 박규현


* <주말엔 일탈>은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웹진쪽의 새로운 코너입니다.  



안미츠와 성실하고 배고픈 친구들

 

박규현


안미츠

안미츠 씨가 사랑하는 건

아름다운 디저트 쇼케이스

 

볕이 잘 드는 테이블에 앉으려면

일찍 가야 넉넉하고

 

안미츠 씨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아무 곳 아무 음식을 먹는 것이 제일 속상하다

 

차가 우려지는 동안

 

안미츠 씨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을 받아 적는 사이에 그들은

 

무언가를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미츠 씨처럼

 

 

모루

기나긴 몸이 되어서 긴 복도를 기어 다닌 적 있는데요

가끔씩

 

기다리라고 말했는데

기다리지 않은 친구들을 기다리는 중이었고

흰 종이가 까맣게 될 때까지 반성문을 쓰라는 벌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 저녁 반찬은 뭘까

 

궁리했어요

이것이 최선이라면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모래바닥에 뺨을 대고

 

무엇인가를 한 적 있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여태껏 몇 명이나 죽었을까 싶다가도

 

배가 고파서

수저통을 짤그락대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요

 

 

히비

축하합니다

(아마도)

 

집만이 전부라 해도 그래서 걷다가 막히고 걷다가 막혀서 맴도는 일밖엔 할 수 없다 해도, 전염병도 없이 잠드니까요, 머리맡에 유리컵 가득 찬물을 따라 놔두면 그 자리엔 물이 고이는데요, 손가락으로 그 물을 만지면 꼭 물이 낯설게 느껴지고, 빈속에 물을 마시면 몸통에 물을 채우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일과처럼, 그냥, 항상 먹고 싶은 음식을 세어보다가 잠이 드니까요, 업데이트는 계속되고,

 

친구를 초대해도 수락해주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아마도

 

잠들기 전 하는 것은

지구를 멸망시키는 게임

나만이 살아 있는 채로

나만이 없는 행성에서

 

사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로쿄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공중화장실에 들어가면 두 칸 중 하나는 수리중이고 남은 한 칸에는 알 수 없는 구멍이 너무 많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

 

손이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손을 닦고

나온다 뉴스에는 갑자기 칼에 찔려 죽은 사람에 대한 사건들이

 

더 격렬하게 애도하고, 더 크게 소리 지르고, 더 날카로워지고 싶어요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구를 읽으면서

 

어딘가의 공원으로 야유회를 가게 되면

과연 특별시의 생활이 멀쩡해지는지도 모른다

 

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인용 놀이는 없을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

 

구멍이 계속 그 자리에 없던 것처럼

구멍을 막고

 

누군가의 머리를 부순 줄 알았는데 수박이라서

맛있게 먹은 기억을 떠올리며

 

 

키노코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고 싶다

 

유기견 프로젝트도 밀어주고

독립출판물도 사 읽었다 전부 예의 없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어서 아무래도 좋다

인류애를 잃어간다는 작가의 말을 접다가

 

과학시간에 했던 실험을 떠올린다

 

선생님은 고양이의 털가죽을 나눠주고 전기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나에게 온 것이 정말 고양이의 등이나 배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집에 가고 싶다 했더니 친구들이 고양이의 털가죽을 내 머리 위에 얹으며

 

이런 게 뭐가 무섭냐고

겁이 나느냐고 그랬다

 

선생님은 용감한 학생들을 칭찬했다

무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그들의 이름은 까먹었다

알고 있던 이름들을 버려가면서

 

일본가정식을 먹기로 한다

흰 밥 앞에 앉아 한 끼의 해외란 따뜻하고

정말인지 형편없지 않다고 칭찬할 것이다 부지런히

 

귀가한 사람이 된다

 

 

분카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뼈해장국을 먹으러 갔는데

 

서울에서 먹어본 것 중 가장 끔찍했지만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라고 해서

 

맛있는 척 했지 뼈와 뼈 사이에 젓가락을 꽂아 뼈를 쪼개며

 

사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살점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이

 

축축한 고기가 두려웠다 땀을 흘려 축축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 그릇을 비워내기 위해 애를 썼다 일인분을 해내려고

 

모자며 목도리 따위를 어딘가에 두고 오곤 했는데

 

아스팔트를 굴러다니는 머리

혹은 어떤 이의 신발에 끌려 다니는 목의 이미지

 

매일 조간신문에선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재되는 것처럼 적혀 있고

 

손가락에 침을 묻혀 다음 장으로 넘기면 꼭 다 자란 사람 같아

 

뼈가 부러지거나 해도 잘 붙지 않는 때가 오면

 

뼈 같은 건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다가 그 다짐을 까먹다가 다시 다짐을 하다가

 

그 식당에도 분명 두고 온 것이 있을 텐데 기억해내지 않으려 한다

 

 

아메노히

그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갔었다 날이 더워서 동물들은 그늘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물 안내 팻말만 읽다가 체험관에 들어가 쉬었다 시원한 장소였다 체험관엔 박제된 동물들이 있었다 멸종한 동물의 뼈도 있었다 실외에는 아직 살아 있는 동물들이 있어서 슬퍼졌다 이런 곳엔 그만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도 동의했다 함께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가장 뜨거운 시간이었다 결국 다시 체험관으로 돌아가 몸이 차가워지도록 쉬었다 슬펐다 그리고 시원해서 기뻤다 그 사람을 다시 보지 않는 일은 없었다 완전히 질렸지만 아직 살아 있다 얼마 전에 그는 안부를 물으며 연락해왔다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엔 일을 안 한다고 했더니 열심히 산다고 했다 아닙니다 말하자 그럼 열심히 살아 있는 거네요 했다 그에게도 똑같이 말해주었다 그는 약간 안도하는 것 같았다

 

 

코에

따뜻한 물주머니를 안고 있었다

 

부엌에는 햇빛이 안 들어왔는데

거실엔 잘 들었다

 

이제는 그만 하고 싶다고 했더니

동생이 사과를 깎아 먹다 말고

껍질을 얼마나 길게 낼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고 했다

 

접시 위로 둘둘 말린 껍질이 쌓여 갔다

 

얼마나 얇게 깎았는지

잘하면 껍질이 투명하게 보일 것도 같았다

 

이제는 계절에 상관없이 과일을 먹을 수 있나봐

칼을 쓰면서 말하는 동생이 걱정되어서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말렸다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건 예전에 끝이 났고

 

껍질은 자꾸만 쌓여 갔다

 

그만둘 수 없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동생도 잘 알았다

 

생리대를 갈아야 할 때가 올 쯤에야

 

다도만이

반짝거렸다

 

 

안미츠

안미츠 씨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무사히 늙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울지 않는다 무사하게

 

실내는 교토를 닮아 있다

 

우리는 어째서 교토를 닮은 곳을 찾아

교토에 와 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요

 

재난 알림이 울리고

미세먼지가 심하니

외출을 자제하라는 내용을 확인한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면

 

여행 온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게 어떤 건지는 안미츠 씨에게만 남아 있다

오로지

 

볕이 잘 드는 테이블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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