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비건이 되었나 by 한지윤

 

* <주말엔 일탈>은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웹진쪽의 새로운 코너입니다.  


나는 왜 비건이 되었나

한지윤


    내가 비건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좋아하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을 비건이라 소개했다. 그 뒤로 나도 페스코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고 페스코 단계에 해당하는 생선, 우유, 계란 중에서도 생선만 먹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선은 생명이 아닌가? 그러자 이내 ‘생선은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부끄러워졌다. 페스코로 시작한 건 채식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동물권을 생각하는 채식이라면 당연히 비건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한 달 후에는 비건이 되었다.


    비건이 되고 나서 나는 행복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얘깃거리도 생기고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채식 식당을 가거나 채식 옵션이 되는 곳만 찾았는데, 그게 둘만의 접속 지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은 내게 비건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래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 곁에 있으려면 나 또한 비건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고. 그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누군가를 곁에 둘 때 자격을 논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어쨌거나 그 사람과는 지금까지도 좋은 사이로 지낸다. 우리 사이에 비거니즘은 여전히 중요한 주제로 남아 있다.


     내가 비건이 된 결정적인 계기가 좋아하는 사람 때문이었다면 내게 처음 비거니즘을 알려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외부 모임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그분이 채식모임을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 당시 나는 채식을 하지 않았고 해야 하는 이유 같은 것도 몰랐다. 그 이야기를 듣자 그분은 이렇게 권했다. 늘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한 달에 한 번 같이 채식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 채식 식당에서 채식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주로 밥을 먹으면서 채식과 관련된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비거니즘은 알면 알수록 불편해지는 주제다. 그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우유가 사실은 소를 착취해서 만들어지는 상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젖소라는 건 따로 있지 않다. 소를 계속 임신시켜 새끼를 빼내고 그 젖을 인간들이 먹게끔 상품화한 것이 시중의 우유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날 나는 우유를 먹지 않았다. 진실을 알고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 뒤로도 종종 우유를 먹긴 했지만 머릿속에 그 얘기가 자꾸 떠올라 아몬드유로 대신했다.


    채식 모임을 하면서도 나는 따로 채식을 하진 않았다.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러려면 비거니즘에 관해 먼저 공부를 해야 될 것 같았다. 역시 실패가 두려워서였다. 시작은 너무 높은 담벼락 같았다. 공부는 계속 미루어졌고 나는 이전과 다름없는 삶을 계속 살았다. 어느 날은 그런 스스로가 한심해서 도무지 채식 모임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채식 모임원 중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이런 내가 계속 모임에 나가도 될지 죄책감이 들어서 결국은 모임을 그만두게 됐다. 그 뒤로는 채식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채식의 중대함은 듣고 보는 그 순간뿐이지 뒤돌아서면 쉽게 잊을 수 있었다.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비건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비건으로 살고 있을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는 채식을 하게 되었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먼 미래의 일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채식을 시작하고부터는 가족들도 고기를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음식을 할 때도 내 몫과 다른 구성원들의 몫을 따로 만들었는데 1년 정도 지나자 채식이 디폴트가 되었다. 잡채를 만들 때도 고기 대신 버섯을 넣고 육수가 아니라 무와 양파를 우려낸 채수를 쓰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켜먹던 치킨은 거의 몇 달에 한 번이 되었고 구성원들의 고기 소비량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주변 친구들도 채식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내가 틈날 때마다 비거니즘 얘기를 하는 덕분이었다. 친구들은 채식 식당에서 모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두유 옵션이 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거기서 우리는 동물의 대상화와 동물실험, 비건 식품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개인이 소비하는 것들과 관련된 생산 환경이 얼마나 폭력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채식한 지 2년이 넘었다. 채식 2주년에는 좋아하는 채식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집 주변의 채식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 먹는 편이었다. 내가 채식을 꾸준히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내 의지도 한몫했겠지만 주변 환경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부산은 채식 식당이 꽤 있는 편이다. 폐업하게 된 식당도 있지만 동시에 새로 생기는 식당도 있다. 서울에 비하면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다른 지방과 비교하자면 채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주변에 채식 식당이 없어서 음식을 거의 사 먹지 못하고 본인이 직접 요리해 먹는 채식인들이 많다. 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을 때마다 직접 해먹어야 됐다면 내 의지는 지금처럼 한결같지 못했을 테다.

 

    앞으로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비건 가공식품이 더 많이 나오고, 지방에 불균형적으로 분포돼 있는 채식 식당 문제가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어느 지역이든 간에 채식인구는 분명 있을 텐데도, 마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것이 못마땅했다. 누구더러 채식 식당을 열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여기저기 골고루 분포돼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과거의 나처럼 비건이 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비건으로서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지만(당연히 고충도 있다. 비거니즘을 공부하면 비인간 동물에게 가해지는 폭력들을 너무나 많이 알게 되고 그건 정말 고통스럽다.) 그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채식은 누구나, 모두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비건이 된 것은 좋아하는 사람 혹은 존경하는 사람의 영향이었다. 그렇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그와 동시에 비거니즘을 실천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주변 사람들은 동요하도록 만드는 것 아닐까? 바로 시작하기는 어렵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또 그와 동시에 그리 힘겹지 않은, 일상의 실천 방식임을 깨닫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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