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by 윤

 

요즘은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때 큰 버팀목이었던 오랜 지인과 의절하, 지난 3년 동안 휑해진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왔다. 정신건강에 해로운 관계를 끊어내고 난 뒤 그들이 없는 나의 일상은 클린해지고 정상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동안 알고 지내 온 시간이 15년이 넘는지라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순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친구라는 명분만으로 백해무익한 관계를 이어가기엔 내가 이제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과 의절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들과 의절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아주 큰 시련이 닥쳤을 때 만난 지인 덕분이었다.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나에게 도움을 주던 지인은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끔 조언도 해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조금씩 일깨워줬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페미니즘 때문에 의절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을 알기 시작한 후로 나의 내면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내 감정에 스스로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며 민감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자 나를 힘들게 했던 관계의 고리들을 끊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페미니즘을 알지 못했더라면 나는 여전히 그들과 얽혀 내가 잠식당하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지냈을 것이다.

그들과 의절한 1년 동안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과, 기대보다 더 큰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카톡 메시지 창 하나만 지웠을 뿐인데 나의 휴대폰은 고요해졌으며 그와 동시에 나의 심신도 안정을 맞이했다. 그리고 1년이란 시간 동안 아티스트 웨이와 명상을 하며 그들과 엮여 있던 켜켜이 묵힌 안 좋았던 기억들을 걷어내려고 애썼다. 아티스트 웨이는 일정한 분량의 글을 매일 적고 매주 퀘스트를 완료하며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밝히는 훈련을 하는 길잡이 같은 책이었다. 그렇지만 첫 해의 글쓰기에서는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안 좋은 기억들을 글로 여러 번 적어보고 해소하려 해도 큰 효과는 없었다. 글을 쓸수록 내 손으로 그 기억을 다시 적어내려 가는 게 의외로 쉽지 않았다. 적을수록 이전 기억 때문에 오히려 불쾌해지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글쓰기 훈련을 하는 동안 깨달은 점은, 힘든 일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스스로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과 그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해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많이 의존하며 지냈다. 좋았던 관계를 정리하게 된 계기와 나의 상태에 대해 털어놓으며 다소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기도 했다. 유해한 관계였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빈자리를 찾는 과정을 몇 해 동안 반복해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다. 지금 내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도 나에겐 친구다. 그들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줬다.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그들 앞에서 친구가 없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례한 행동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 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아낌없이 격려해주던 사람들이 바로 '친구'였는데 말이다.

3년이 지난 현재는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에 관한 기억을 떠올려도 감정의 출렁임이 많이 줄어들었다.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쉽게 잊히지는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딛고 나에게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변에 새로운 사람이 생기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으며 조금 바빠지기도 했다. 또한 기존에 알고 지던 몇 명의 지인들과는 관계가 더 돈독해지기도 하고 또 몇 명의 지인들과는 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지난 3년 동눈에 띄게 달라진 나와 주변을 보며 조금은 기뻤다. 이전 지인들에게 느끼지 못했던 따듯함,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만 곁에 있는 지금 나는 인생에서 겪어본 적 없던 안정기를 보내고 있다.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던 3년 동안 깨달은 점이 있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늘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옆에서 친구로 남아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술을 함께 마셔주는 친구. 어쩌다 실수하거나 문제를 야기한다 해도 과하고 용서를 빌면 기꺼이 다시 품어주는 현자 같은 내 옆의 사람. 그들에게 진심을 다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그들이 원하는 거리를 잘 유지하는 것이 내가 지키고자 하는 관계를 오랫동안 건강하게 이어가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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