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의 슬픔
- 녹아내리는 프랑스 시: 시간결정
- 2021. 2. 18. 10:25
공원에서의 슬픔
울창한 풀 속으로 들어가자
햇볕이 길을 드리우는,
춤추는 잎새의 그림자들이
손처럼 어루만지는 길로.
꽃받침에서 올라오는
부드러운 향을 들이마시자.
우수의 또 열의의
비참한 재미를 음미하자.
우리 둘의 조화로운 영혼이
저마다 비밀스러운 향을 주고받기를,
아린 이끌림이
몸과 마음을 하나로 잇기를...
여름은, 싱그러운 입사귀들 속에서
뛰놀고 쉬고 또 취해.
하지만 놓아줄 것이 없는 사람은
아쉬운 꿈에 눈물을 흘리지.
행복, 포근함, 기쁨은
뒤얽힌 팔들 사이를 붙잡아.
그럼에도 마음들은 고립되고
피로해, 마치 휘청이는 어느 잔가지처럼.
어째서 여전히 이리도 슬픈 걸까
운명은 순조로운데도,
그리고 왜 이 하릴없는 이끌림은
죽음을 향하는가?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la-tristesse-dans-le-parc.php
다은
누군가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B 공원을 댈 것이다. 체류의 마지막 몇 달 동안은 흘려보낸 시간에 젖어 발버둥쳤고,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땐 추워진 날씨에도 무작정 옷을 끼워 입고 공원으로 향하였다. 햇살이 따뜻하던 때도 쉬는 날마다 가서 살갗을 드러내고 누웠지만, 바람이 등을 밀고 얼굴을 얼리던 계절에 더 많이 갔다. 잠시도 앉을 수 없을 만큼 추워도, 새로운 길을 찾아 오르며 공원 전체를 익히려 들었다. 걸으며 언덕 위와 나무 그늘을 샅샅이 살폈다. 햇볕이 내리쬐던 날 함께 앉았던 자리를 찾으려 애썼지만, 계절이 지나버린 탓일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눈에 고인 눈물을 몰아내듯 떨어뜨리며 언덕을 내려왔다.
한 번은 오열하며 편지를 써 내려가는 이를 보았다. 그날은 날이 좋아 사람이 많았는데도 아랑곳 않고 울어 젖히는 모습이 시원했다. 소음 때문인지 그가 훌쩍이는 소리는 한 톨도 들리지 않았고, 당사자도 주위 사람들을, 주위 사람들도 그를 신경 쓰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래서 공원에 더 많이 갔다. 내 얼굴에 물기가 어려도 의아해하거나 안쓰러운 마음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내버려 두는 곳. 공원에서는 슬픔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의 슬픔」을 발견하자마자 기억을 돌아보고 그때의 나를 다독이기 위해 번역을 결정했다. 자연이 눈앞에 펼쳐지는 안나 드 노아이유의 시로 하여금 발목을 스치는 풍성한 잔디, 그 비스듬한 경사 위에 등을 맞대면 눈을 감기던 햇살이 떠오른다. 이 시가 저마다의 공원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점에 즐거워진다. 당신의 공원은 어떠했을까.
작가 소개
안나 드 노아이유 Anna de Noailles (1876~1933)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1901년 출간한 첫 시집 『헤아릴 수 없는 마음 Le cœur innombrable』 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집 『사랑의 시들 Poèmes de l'amour』(1924)을 비롯 소설과 자서전을 남겼다.공쿠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이 불발되자 여성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페미나 문학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이후 프랑스어 문학을 드높인 공로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내 최고의 명예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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