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휴식

 

신비롭고 낯선 믿음의 쾌락,

사랑, 아름다움, 욕망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많이 했지

사랑과 고통에 지친 채로

되돌아오는 나의 영혼에.

 

자, 만족을 모르는 영혼아,

그림자 안에서 깊은 잠을 자자,

슬픈 갈망에서 벗어나

삶 너머의 기쁨

그리고 인간사를 초월한 사랑을 꿈꾸면서…

 

* ‘이교도적인’, ‘기독교가 아닌 비주류 종교의등을 의미하는 단어 ‘païen’은 다소 차별적인 의미를 빼고 문맥에 맞게 다듬어 낯선 믿음의로 번역했다.
* 원문 링크 : 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le-repos.php

 

민주

휴식과 사랑. 나에게 있어 의미가 많이 바뀐 단어들이다.

오랫동안 휴식이란 한 '공간'에서 몸을 쉬게 하는 일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정신적으로 아무런 자극이나 걱정 없이 편안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인식하고 있었다. 공간과 분위기가 동시에 충족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물리적 환경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마음이 편한 것이 최고라고 말하게 되었다.

사랑에 있어서는, 사랑하는 대상이 다양해지고 애정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것들도 몇 있다. 이전에는 '사랑해야 정상이니까'라는 흐름에 휩쓸려 벽에 대고 소통하는 기분을 느끼면서까지 붙잡아두던 것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게 사랑이 아니라 놓아야 하고 충분히 놓을 수 있는 욕망이란 걸 알기에 사랑할 시간을 조금도 내어줄 수 없게 된 것이다.

두 단어를 대하는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일부러 구체적인 이름들을 제시하지 않았다. 시인이 큰마음으로 '이제는 쉬어도 된다' 메시지를 전해주었듯이 해설을 하면서도 공감의 폭을 좁히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만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그 이름들을 알려주시라. 댓글도 좋고 혼잣말을 해도 좋다.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그만 떠올리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내뱉고 시가 이끄는 정화와 명상의 시간으로 딱 210행 동안만이라도 쉬다 오시길 바란다. 우리 곁에 여러 이름들이 없어도, '인간사를 초월한' 큰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우리는 대단하니까.

각자의 큰마음에 걸맞은 휴식과 사랑을 누리는 시간들이 가득 펼쳐지기를 바란다.

 

 

다은

 

 

 

작가 소개

안나 드 노아이유 Anna de Noailles (1876~1933)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1901년 출간한 첫 시집 헤아릴 수 없는 마음 Le cœur innombrable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집 사랑의 시들 Poèmes de l'amour(1924)을 비롯 소설과 자서전을 남겼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이 불발되자 여성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페미나 문학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이후 프랑스어 문학을 드높인 공로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내 최고의 명예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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