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의 자랑 이랑 (상)

 


    이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 글에 나오는 ‘우리’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했었다. 너무 길어도, 설명적이어도 안 되며 독자들이 보자마자 ‘우리’라는 이 단어를 어떤 공동체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긴 고민 끝에, 나는 가장 적확한 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얼마 전 이혼 도장을 찍은 50대 여성, 집을 나와 사는 레즈비언 첫째 딸과 갓 스물이 넘은 바이섹 슈얼 둘째 딸, 그리고 중성화한 8살 암컷 고양이 이랑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연재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격주 연재로 하였으나 그렇게 된다면 연재를 마칠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나는 계속 오래된 것들을 잊어갈 것이므로, 중간부터는 주 1회 연재로 바꾸었다. 주 1회 연재란 매일 정신을 놓고 덤벙거리며 살아가는 내게 매우 큰 부담이자 도전이었으나, 나름 잘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없던 여유생기고 때론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에세이를 정독한 뒤 내게 많은 질문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질문은 바로 “수자 씨가 뭐라고 안 해?”였는데, 그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하기 힘들어 다음 에세이에서 대답해줄게, 하고 넘긴 것이 바로 오늘이 되었다. 아마 독자분들도 궁금해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성 소수자의 삶에는 꼭 부모라는 걸림돌이 있고, 원천적인 갈등은 그곳에서 발생하니까.

    연재를 시작한 뒤, 수자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으면 첫 마디는 매번 “레즈비언 빼!”라는 말이었다. 정말 한 번도 빠짐없이 같은 말을 첫마디로 해오는 수자에게, 나는 “ㅎㅎ밥 먹었오?”나, “나 오늘 되게 재미있는 일 있었어~”라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말을 돌린다. 이런 방법에 쉽게 당할 사람이 어디 있냐? 묻는다면 바로......

    여기 있다!

    좀 전의 자신이 “레즈비언 빼!”라는 말을 한 것을 그새 잊어버렸는지, 내 말에 말려들어 결국 레즈비언 이야기를 빼라는 말에 대한 대답을 못 듣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니,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수자가 귀엽게 느껴져 웃음 터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엄마, 이 세상 사람들 다 내가 레즈비언인 거 아는데 지금 빼서 뭐해......

    아무튼, 이번부터는 지금껏 제대로 언급한 적 없었던 고양이 이랑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동물과 같이 사는 것을 엄청나게 반대하던 수자가, 어쩌다가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랑은 어쩌다가 우리에게 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이랑과 살아가며 어떤 것들을 두려워하며, 걱정하고 있는지.

    얼마 전 기사에 따르면, 법무부가 ‘동물의 법적 지위 개선’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지금껏 동물은 우리의 법체계 안에서 철저히 ‘물건’으로 취급되어 왔는데, 동물의 ‘비물건’화 규정을 법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둔 많은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랑은 절대 물건이나 재산이 아닌 ‘가족’ 구성원 중 하나였으니까.

    이랑은 스트릿 출신으로, 윤희가 중학생이던 시절 발견해 데려온 고양이다. 당시 이랑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새끼 고양이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고양이 꼬리를 잡고 놀던 것을 윤희의 친구가 보았다고 했다.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오천 원에 샀다고 했고, 그에 맞는 돈 혹은 물건을 주며 그 아이들에게서 데려왔던 걸 윤희가 전해 들은 것이다.

    윤희는 내게 전화해 간절하게 물었다.

    “언니, 나 이 고양이 너무 데려가고 싶은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데려와 봐.”

    그렇게 이랑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처음엔 크게 반대하던 수자도,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더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자연스럽게 이랑의 모래와 화장실, 식기와 사료, 스크래처 등이 생겨났으며,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고양이 집사로 조금씩 거듭났다. 이랑의 매력에 스며든 수자 또한 이랑을 무척 예뻐했는데, 이랑은 처음 집에 왔을 때 소리치던 수자에게 원한을 품었는지 수자의 운동화에만 오줌을 싸두고는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무작정 집으로 고양이를 데려온 것은 정말로 무지하고 책임감 없는 행동이었다. 만일 부모가 끝까지 반대했다면? 키울 수 있는 경제력이 없었다면? 우리 중 한 명이라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었다면? 그땐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하고 끔찍한 가정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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