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나의 자랑 이랑(하)

 


    이랑을 만나고, 나는 중성화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중성화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중성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왜 해야 하는지 등의 세부적인 것들은 전혀 몰랐다.

    “괜히 나 편하게 하자고 시키는 건 아닐까?”

    “중성화하고 이랑이 더 불행해지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했다.

    알아보니 중성화를 하지 않은 암컷 고양이는 유선종양, 자궁축농증, 난소종양이, 수컷은 전립선 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질병들이 모두 성호르몬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중성화를 살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으므로, 고양이의 중성화는 어쨌든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인 셈이었다.

    그런데 중성화 수술은 우리 생각보다 꽤 큰 수술이었다. 수컷은 음낭을 절개해 고환을 제거하는 간단한 과정만을 거치면 되는 데 반해, 암컷은 복부를 절개한 다음 자궁, 나팔관, 난소를 모두 제거해야 했다. 당연히 수술 후 고통이나 회복 속도의 차이도 달랐다.

    그리고, 이랑은 암컷이었다.


    이랑은 중성화 이후 몸통을 감싸는 빨간 옷을 입고 일주일 내내 거의 일어나지 못했다. 식음도 전폐했다. 때마침 윤희는 월경불순을 겪고 있었고, 나도 월경통이 유독 심해져 친구들과 잡았던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그 주 내내 앓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왜 여자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할까……”

    여자 됨은 고작 이런 것으로 나누어지는 걸까. 나는 지금까지도 이랑의 중성화와 사람의 월경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확연히 느낀 적이 없었다.

    항상 너의 오른손바닥을

    그저 내 왼손바닥이

    살포시 감싸는 것만으로도

    단순히 사랑을 느끼고 있었어   


    다시 돌아가서, 이랑은 애교가 많은 고양이였다. 처음부터 그랬다. 사람을 약간 경계했으나 금방 적응했고, 심심할 땐 먼저 다가와서 나를 건드리며 장난을 일삼았다. 나도 그런 이랑을 마구 만지며 장난을 쳤다.

    이랑은 날씬했다. 자율 배식으로 밥그릇이 비어 있을 때마다 사료를 채워두었는데, 밥그릇은 생각보다 자주 비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중성화 이후 살이 급격하게 찌거나, 성묘가 된 후 서서히 살이 찌기 시작하였는데 이랑만 예외였다. 이랑은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길어 이곳저곳을 빠르게 쏘다닐 줄 알았다.

    어쩌다 외박을 하게 되면 나는 온종일 이랑 생각을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가족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이랑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이랑이 오늘도 창틀에서 잠을 잘 잤는지, 이랑이 오늘 간식을 먹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그때마다 윤희나 수자에게 전화나 카톡으로 이랑의 사진과 동영상을 요구했고, 올 때까지 수없이 재촉했다. 전송된 미디어 속 이랑을 보면, 내가 꼭 이랑을 위해 살아온 것 같다는 느낌도 간혹 들었다.

    일상 속에서 자그마한 행복을

    찾아가며 쌓아온, 느긋이 걸어왔던 흔적이야


    2020년, 윤희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수자는 일을 다녀야 했으므로 이랑은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 때문에 대학원이 집과 가깝고, 수업이 별로 없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내가 이랑을 데려가려 했었다.

     윤희는 이랑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그 방법이 아니라면 이랑은 종일 혼자서 집에 있게 되는 셈이니, 별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랑을 마포구로 데려가기로 한 날로부터 이 주 뒤에, 우리의 모든 환경이 뒤바뀌고 말았다.

    유방암 발견 소식으로 인한 수자의 직장 장기 휴무.

    코로나로 인해 윤희의 대학교 수업 모두 온라인으로 변경.

    재개발로 인해 광명 거주지 신림동으로 이사 진행.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랑을 데려갈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혼자서 집을 나왔다.

    그 이후로 이랑은 급격하게 살이 쪘다.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내가 떠나서 그런 건지, 이사한 집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건지, 나이를 먹음으로써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건지, 활동량이 너무 없었기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본가에 갈 때마다 이랑은 계속 살이 쪘고, 무기력해졌고, 점점 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너무 우울해 보여. 무슨 재미로 사는 건지 모르겠어. 안쓰러워 죽겠어.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수자가 말했다.

    “그러게. 엄마랑 좀 놀면 얼마나 좋아. 차라리 형제 있었으면 덜 외로웠을 텐데.”

    내가 말했다.

    “그럼 좋은데, 그랬다가는 쟤 스트레스받아서 지방간 생길지도 몰라. 얼마나 예민한데. 너무 늦은 것 같아.”

    윤희가 말했다.

    처음 이랑을 데려왔을 때, 윤희는 중학생이었으므로 지금보다는 옛날에 훨씬 이랑과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이랑은 그런 윤희를 제일 좋아하고 잘 따랐으나, 나이가 들면서 윤희도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귀가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랑은 윤희를 기다리며 이불 속에 웅크려 있다가, 윤희가 왔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수자에게는 한 줌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어릴 적 자신을 보며 소리쳤던 기억 때문인지, 신발에 오줌을 눈 것으로는 모자란 모양이었다. 수자는 이랑과 친해지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을 많이 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계속 이랑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제자리였고, 이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꼭 “나 너무 살기 싫어. 사는 게 재미없어.” 같은 말을 첫마디로 뱉어낼 것 같아서 두려워했다. 나는 이랑이란 단어에서까지, 소진의 감각을 어렴풋이 읽어내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금 이랑에게 너무 큰 잘못을 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도 우리 같은 생각을 할까. 다른 고양이들도 이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

    이랑은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의 시간을 좋아했다. 이랑이 책상을 밟고 내 방 창문틀에 올라가 엎드려 있으면, 이랑의 털은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러면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았다. 어쩔 땐 이랑보다 더 긴 낮잠을 잤다. 그럴 때면 이랑이 책상 위로 뛰어 내려와 내 얼굴을 앞발로 툭툭 건드렸다. 깨어나면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

    또다시 봄, 지금 내 방 창문 바깥은 전과 다르다. 벚나무 같은 건 없다. 옆 빌라의 오래된 창틀과 먼지 쌓여 흐린 유리창이 내 방에서 내다볼 수 있는 풍경의 전부다.

    이랑은 없는 곳에서, 요즘 나는 예전의 이랑처럼 산다.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의 시간에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CD 플레이어로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를 듣거나, 블루투스를 연결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비가 오면 창밖을 내다보고, 거리의 고양이 울음소리에 반응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늘의 노래는 키세키. 이 노래를 들으면 이랑과 함께 누워 낮잠을 자던 시절이 생생하게 재생된다. 그때의 바람과 햇빛과 기분, 먼지처럼 나풀거리며 떨어지던 이랑의 노란 털이 떠오른다. 곧이곧대로, 나는 느낀다.

    우리의 만남은 이 거대한 세상에서

    조그마한 사건이지만, 만날 수 있었어

    그런 게 기적이야.

    GReeeeN - 키세키

    *

    타로를 뽑는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덱은 페이건 캣츠로, 수십 장의 카드 그림에는 모두 고양이가 들어가 있다. 스프레드를 놓은 채로, 나는 나의 신비한 고양이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하면 이랑에게 더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랑의 삶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랑이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뽑는다.

    내가 뽑은 카드는 정방향.

    컵 3번 카드다.

*

    컵 3번의 카드는 고양이 세 마리가 모여 포도를 따는 그림이다. 고양이들의 표정은 즐겁고 밝으며, 주변은 알록달록한 빛깔의 과일이 잔뜩 있다. 컵 3번의 카드는 그림처럼 정서적인 교류가 활발한 때이며, 서로 화합하며 잘 지내는 시기를 나타낸다.

    컵은 여성적인 요소로, 감정을 뜻한다. 여기 나오는 고양이가 암컷인 것으로 유추해보자면, 사랑보다는 우정이나 자매애에 관여된 시각으로 현재를 보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즐거운 시기를 보내는 만큼, 치울 것도 많다. 떨어진 과일을 주워 담지 않으면 열매들은 곧 시들고, 짓이겨진 채로 땅을 지저분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을 잠시 절제하고, 할 일을 마저 끝내야만 즐거운 상황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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