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하기

 

    식물 집사 은수님께


    은수님 오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세요?

    요즘 식물들과 사랑하느라 바쁘신 걸로 아는데 뭐든 사랑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저는 딱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미워하는 것도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배우자와 밤 산책도 종종하고요. 산책하다 은수님의 집 앞을 지나가게라 되면 은수님은 지금 뭐하고 계실까 생각도 해요.

    최근에는 은수님이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저도 비슷한 고민을 조금 하던 중이었어요. 올해 들어, 안 그래도 없던 일감이 더 줄어드니 저의 부족한 능력을 탓하게 되고 마음이 초조하더라고요.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미래에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를 상상해서 나이대 별로 적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대학 졸업 후 스물여섯 그림으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버는 전업 작가가 되어 스물여덟 살에 결혼하거나 결혼을 못하면 죽을 거라고 썼던 거 같아요. 저는 서른 살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고 예술병에 걸려 커트 코베인,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시드 비셔스처럼 서른 전에 요절하는 게 로망이었어요. 전 음악 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에요. 나름 현실적으로 생각했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와요.
스무 살이 되면 완연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어요. 지금도 역시 모르는 것투성이지만요.

    은수님은 미래를 생각하면 뭐가 제일 두려워요?

    언젠가부터 미래를 떠올리는 게 무서워졌어요. 현실을 알아갈수록 무모하고 희망찬 미래 그리기가 힘들잖아요. 요즘 같이 더 심각해진 환경문제나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들을 접하면 더더욱 미래를 그리기 어렵죠. 저는 지금처럼만이라도 일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쉬운 일이 아니죠. 매일 죽고 싶다고 하던 제게 이렇게 미래가 생긴 것처럼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거니까요.
 
   
저는 친구가 없어지는 게 제일 두려웠어요. 나이가 들면서 주변 친구들 다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는 동안 저는 점점 혼자가 되더라고요. 새롭게 친구를 사귀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요. 그게 두려웠어요. 남들처럼 취업, 결혼, 출산 등의 정상생애주기의 순서를 밟아 가지 못하면 외톨이가 될 것 같아서요. 혼자서도 잘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삶이잖아요. 전 언제나 혼자라고 생각해왔는데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 주변 사람들을 지워버린 거. 제가 마음을 열었을 때야 비로소 은수님도 만나고 지금 제 곁에 있는 다양한 환경과 나이대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동안 너무 두려워하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걸까요? 더는 이렇게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조금 기적 같기도 해요. 그만큼 서로 많은 노력을 해 온 덕분이겠죠. 지금도 노력중이고요. 모두들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뒤돌아서면 또 인간은 희망이 없다고 투덜거리기도 하지만요.

    꽤 많은 사람들이 외로운 걸 부끄러워해요. 외로움을 느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죠. 누군가는 저를 두고 너무 외로움이 깊다고, 질척거리는 일이 잦다고, 그런 제가 이해도 안 된다는 말을 해요. 자신들은 외롭지 않다고도 하고. 근데 전 그거 거짓말 같거든요. 적어도 제가 알아 온 시크하고 쿨한 사람들은, 아닌 척을 할 뿐 분명 저랑 똑같이 외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준다면 증명할 수 있어요!

    외롭다는 말이 슬프다, 기쁘다, 무섭다, 는 말처럼 당연한 말이었으면 좋겠어요. 숨기지 말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저는 외로워하는 친구가 있다면 꼭 옆에 있어주고 싶고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덩달아 따뜻해지니까요.

    삶은 진짜 버티기인 것 같아요. 그래야 미래가 있잖아요. 전 복수해야 할 사람도 많거든요. 은수님도 저와 함께 버티면서 미래를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오늘은 안 외로운 정수가 씀

illust cellophane

 



냥 집
사 정수님께,

 

    정수님, 오늘은 외로운가요, 외롭지 않은가요?

    지난 17일은 저의 생일이었어요. 사실 저는 학생 때 음력 생일이라 가족 외에 제때 축하받은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학기가 시작되고 서먹서먹할 때쯤 제 생일이 다가오는 데다, 음력 생일은 제가 생각해도 챙기기 쉽지 않거든요.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갔던 어느 날에는 다른 친구들의 축하를 받고 기뻐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쓸쓸함을 느꼈어요. 친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좋아야 하는데, 저는 쓸쓸했네요. 감사하게도 이번 생일은 다정한 친구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아 정말 행복한 생일이었어요. 어떤 친구들은 음력이 너무 어려워서 재차 저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게 너무 사랑스러워서 행복했답니다. 무엇보다 제 생일에 정수님이 함께해주셔서 더 행복했어요. 친구들을 더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앞으로 다가올 친구들의 생일을 한 번 더 살펴봅니다.

    최근에 저는 이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글을 쓰는 일로 먹고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째서인지 저는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도 그러기 쉽지 않은 사회라는 걸 알았던 걸까요? 대학교 때의 저는 회사 생활은 절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찌어찌 8년차가 되었네요.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땐, 이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일을 하고 나름 성과를 내면서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직을 하려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지금 제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직을 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계속해서 고배를 마시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다양한 직종을 놓고 고민해보고 도전하기도 하면서 제 미래가 더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들어요. 지금과는 다른 곳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삶을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설레기도 하고요.

    스무 살 무렵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던 일이 있었어요. 친구와 함께 당일치기로 서울 동대문에 놀러 갔는데, 밤새 묵을 곳이 없어 밀리오레 건물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완전히 지쳐 있었죠. 그때 껌을 파는 한 장년의 여성이 다가왔고, 저는 그분께 현금이 없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권유하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하는 그분을 보면서, 문득 저 사람에게도 나와 같이 미래에 대해 막연한 기대나 꿈을 꾸던 시기가 있었을 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대단한 어떤 잘못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빈곤층이 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니까 저도 언제고 길거리를 떠돌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꼈어요. 그 이후로도 그분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았고, 그게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미래처럼 느껴져 내내 두려워했어요. 하지만 지금에 와 다시 돌아보면, 저는 그분의 삶을 절대 알 수 없기에 껌을 팔며 떠도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정말 내가 느낀 대로 불안정하고 불행하기만 한 것인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난에 대한 공포만으로 그 분의 일상과 삶을 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의 제가 몹시 부끄러워요.

    보통 비혼에 대한 말 중에 그런 것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결혼을 하지 않으면 홀로 살다 죽을 것이,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페미니스트가 된 이후로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을 만났고, 또 가부장제 밖의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며, 비혼을 지향함에 있어 예전보다는 낙관할 수 게 된 것 같아요. 물론 홀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간다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부양가족이 없다는 점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혼 여성에게 부모 세대에 대한 돌봄을 전가하는 경향 있죠. 하지만 그건 가부장 체제 및 정상가족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체제를 빌미로 돌봄을 위탁해 온 사회 시스템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비혼을 지향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도 덜해진 것 같아요. (앞으로도 투쟁은 필수겠지만요.)

    저는 그래서 지금 제 삶이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더 먼 미래에는 께하 이들이 더 많아지겠죠?
 

 

외로울 땐 외롭다 말하겠다고 다짐하는 은수 드림



illust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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