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귀신을 믿습니까?

    정수 님께,

    정수 님,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 공포영화 생각이 진짜 많이 나요. 사실 저는 영화를 볼 때 장르를 가리진 않는 편인데도, 공포영화는 좀처럼 보지 않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정수님이 공포영화 얘기를 종종 하셔서 그런지, 저도 덩달아 공포영화를 많이 보게 되고 관심도 많아진 것 같아요. 특히 지금 보면 참 엉성한 옛날 공포영화 같은 거요. 나름 그 재미를 알게 되었달까요. 그러고 보니, 작년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언더워터>를 보러 갔잖아요. 아주 웅장하고 멋진 수중괴물이 나오는 데다, 마지막에 여성이 세상을 구하는 내용이라서 둘 다 무척 마음에 들어 했었죠. (여성 버전의 국뽕 없는 아마겟돈 같달까) 올해는 또 어떤 공포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기대돼요.

    이제 공포영화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귀신이 나오는 영화만큼은 여전히 무서워요. (주온이나 아미티빌 호러처럼) 내가 모르는 원한이 쌓인 존재가 나오고, 어두운 밤 방심한 틈을 타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라게 하잖아요. 어릴 적엔 지금보다 더 귀신을 무서워했어요. , 열두 시가 되면 귀신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열두 시가 되기 전에 자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열두 시는 술자리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간이 되었고, 택시 할증이 붙어 결국 밤을 새기로 결심하게 되는 시간,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잠을 재촉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환상 세계에 더 가까웠던 어린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잔소리 걱정 없이 정수 님과 새벽 놀이터에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건 참 좋아요. 비록 귀신의 시간은 잃었지만, 새벽 공기를 가르며 그네 타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귀신의 시간을 잃었다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최근, 태어나 처음으로 귀신을 보았어요. 저는 열린 옷장이나 문같이 어두운 틈새는 자기 전에 꼭 닫아놓는 편이에요. 의자를 책상에 밀어 넣어 둔다든지, 잘 때는 꼭 벽에 등을 대고 자는 등 귀신을 피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런데 며칠 전 본 귀신은 제가 누운 자리에서 눈을 뜨면 바로 보이는 현관에 서있었어요. 그렇게 꼼꼼히 귀신을 피해왔는데정말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귀신은 마치 콩테로 마구 칠한 것처럼 시커먼 모습으로 서있었어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인 듯 보였고, 이제 막 제 집에 들어온 듯 보이기도 했어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제 눈앞에 달려올 것만 같았거든요. 어떻게든 눈을 떠야 해. 그렇게 생각하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진짜 잠에서 깨게 됐어요.

    꿈이었을까요? 아니면 진짜 귀신을 본 걸까요? 잠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귀신을 마주한 느낌이 남아 두려움에 떨었어요. 음 날 아침에 다시 생각해보니 귀신의 모습이 참 정형화된 모습이라 웃기기도 했고요. 그래도 여전히 밤이 되면 현관문이 신경 쓰여요. (겁쟁이 은수) 그 귀신은 대체 뭐였을까요. 꿈 분석에 따르면 꿈에 나온 인물들은 모두 라는데, 그 귀신도 나일까요? 그럼 그 귀신은 어떤 나일까요? 귀신은 죽은 자를 의미하니, 그 귀신은 제 의식의 세계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의 어떤 나를 의미하는 걸까요? 문득, 글 쓰는 마음을 오래 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그 마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수 님은 어떤가요? 귀신을 본 적이 있나요? 공포영화를 즐겨 보는 정수 님이 만약 귀신을 보았다면, 어떤 경험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해요.

 

초여름 밤에 은수 드림

 

illust 은수

 

 

    은수 님께

    새벽 12시가 무서웠던 이유 중 하나가 영화 <나이트메어> 때문 아니었나 싶어요. “하나, 둘 프레디가 온다~”라는 대사가 그 시절 어린아이들을 모두 공포에 떨게 했지요. 어릴 땐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서웠던 거 같아요. 아이들을 단속하려고 만들어진 듯한 이야기도 많았고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어떤 어둠은 너무 무서운데, 한편엔 아주 안락한 어둠도 있어요. 은수 님과 늦은 밤 그네를 타던 순간이나 지금 불 꺼진 방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라고 쓰려는데 귀신 생각이 떠올라 조금 무섭네요.  
    저도 겁쟁이다운 면모를 남부럽지 않게 가지고 있지만(주로 몸개그 쪽: 깜짝 놀라는 모습이 요란해서요)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 그 자체를 즐긴다는 게 은수 님과는 다른 부분인 것 같네요. 사람들이 제 그런 일면을 종종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요.

    어릴 때부터 겁쟁이인데도 귀신 이야기나 공포 체험 같은 걸 재미있어 했던 거 같아요. 제 주변에 귀신을 엄청 많이 보는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요. 항상 가위에 눌리며 매일 만난다는 귀신이 있었고 귀신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유독 많아서 그 이야기들을 오들오들 떨면서 듣는 게 아주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둑어둑한 도로를 드라이브하는데 친구가 갑자기 방금 귀신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놀라서 “어디? 어디?” 하고 물어 봤더니 지나가던 도로가에 웅크린 귀신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도 봤거든요. 그건 분명 쓰레기봉투 더미였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전 귀신을 좀 믿지 않게 된 거 같아요. 가위에 눌리는 건 또 약간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 주로 경험하는 것 같아서 그 역시 귀신의 존재를 증명하기엔 부족한 것 같고요. 저는 직접적으로 귀신을 본 기억은 없지만 어쨌든 가위에 눌리면 무섭고 은수 님이 겪은 경험을 저도 겪는다면 분명 공포에 떨고 귀신을 믿게 될 거 같아요. 아직도 가끔 샤워할 때 눈을 감으면 무섭거든요. (귀신이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있을까 봐)

    문득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어요.
    옛날에 마리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었는데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대요. 부모가 잘 돌보기는 했지만 감당하기가 힘들었었나 봐요. 결국 어느 날 새벽에 부모는 마리를 저 멀리 산등성이에 버려두고 왔다지 뭐예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새벽녘에 누군가 집 대문을 쾅쾅 두드리더래요.
    그래서 문을 열어 봤더니 문 앞에는 마리가 있었어요.
    부모가 마리야, 너 어떻게 온 거니?”라고 묻자,
    마리가 한 말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마지막에 듣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동작이 중요한데(팔꿈치로 쿵쿵쿵 다가오는 동작) 학교에서 친구에게 듣고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넘어졌어요. 모두들 재밌어 했죠.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는 무척 비극적인 데다 혐오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를 좀 더 디테일하게 풀면 친부모가 아닌 계모가 버리고 왔다는 설정이 포함되어 있어요. 여성혐오와 장애인혐오, 돌봄노동 문제와 친족 중심의 시선 등 지금 관점에서 보면 하나같이 문제적인 이야기죠. 생각해보면 유독 공포 장르에 혐오적인 요소가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이유가 뭘까요? 공포영화가 주로 그 시대의 세태를 비판하는 장르라고 하는데 그래서일까요? 고전 공포영화를 보다 보면 그 시절에 어떤 혐오가 팽배했는지를 알 것 같더라고요.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꽤 전복적인 공포영화들이 나와서 조금은 기쁜 마음으로 보고 있어요.

    조만간 또 재미있는 공포영화가 개봉하면 함께 보러 가요. 우리의 여름 추억에 공포영화가 빠질 순 없잖아요.
    오늘은 유독 조용한 밤인 것 같아요.
    부디 은수 님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요.

 

공포 마니아 정수 씀

 

illust celloph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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