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가 살고 있다

 

BY 하타라


    살다가 문득
,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호기롭게 눈썹 위로 짧게 자른 앞머리가 어느새 눈썹과 가까워져 있을 때, 글씨를 쓰다 문득 시선이 볼펜 , 길어진 손톱 을 향할 때, 새벽 적막 속 온통 까만 공간에 존재하는 유일한 불빛이 화장실 불이었을 때, 100도의 끓는점을 우습게 보고 마신 찻물이 혀에 닿았을 때,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기사 아저씨를 향해 뜨거운 아이컨택을 하며 전력질주 할 때. 그 외에도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는 시간 속 찰나의 순간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살아있음을 느끼, 그 순간들을 알아채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하기 전의 나는 왜 살아?’라는 삶을 향한 질, 그러나 결국 나를 향해 있는 이 질문의 답을 찾은 적이 없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대단한 대답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대강 대답하려 해도 삶의 무게가 입에 다 모인 것처럼 입이 굳게 닫혀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을 대변하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포기하는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의 수천 수백 개의 단어 카드 중에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 힘이 달려 포기하고 마는 그런 상태였다.

    이런 상태가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였다. 사회에 나가 인생을 몸으로, 정신으로, 마음으로, 내 모든 것을 걸고 부딪혔다. 어느새 죽고 싶다는 말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내게 찰싹 붙어 있었다. 특히 그 존재는 내 입과 아주 가까이 살았다. 그 말을 내뱉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흔히 말로 내뱉음으로써 생기곤 하는 불안 같은 걸 나는 느끼지 못했다. 두려움 따위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불면증이었다. 밖이 어두워지면 주변이 조용해지다 보니 저절로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밤에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졌, 낮과 밤이 바뀐 채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피부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딪혀서 생긴 상처와는 다르게 피부 안에서 문제가 있어 생긴 것이라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콩알만 한 반점이 몸 곳곳에 생겼다. 원인은 자외선 부족이었다. 어느 정도의 자외선이 피부에 필요한데 도통 햇빛을 쐬지 않으니 그런 피부병이 생기고 만 것이다. 약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햇빛을 쬐는 것만이 해결책이었다. 낮 시간의 산책을 반복하다 보니 반점은 서서히 사라졌다. 휴대폰을 긴 시간 사용한 탓에 안구가 건조해져 안과도 갔고 잘못된 자세로 인해 정형외과와 한의원 신세도 졌다. 몸 곳곳에 잔병이 생겨났고 다양한 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몸과 마음이 가장 많이 아픈 시기를 보냈다. 괴로웠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죽고 싶다고 내내 말을 한 내가 원망스러웠고 깊은 후회를 했다.

    그 후로 나는 왜 사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그저 사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롤러코스터가 바닥을 쳐야 위로 높이 올라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생의 바닥을 치니 죽기 싫어졌고 살아있음을 느끼며 사는 것을 지속하려 노력했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죽음과 가까워져 보니 내가 죽는 걸 정말 무서워한다는 걸 깨달았고 이제는 정말 살고 싶어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삶을 지속하려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매일 느끼려고 노력하게 된 것이.

    처음에는 온갖 소리를 느끼려 했다
. 물건을 놓을 때나 스위치를 켤 때 나는 소리에 집중하고 혼잣말을 자주 하기도 하며 소리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며 몸을 움직이게 되었고 밖에 나가 뜀박질을 하며 숨이 가쁘고 몸이 피곤해지는 걸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꼈다. 살아있음을 느끼려 시작 모든 것이 살려는 의지가 되었다. 매일의 반복 행위와 나 자신의 기분과 상태,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힘과 의지에 집중하다 보니 죽고 싶은 마음이 점점 작아졌다. 어두운 그 마음이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했지만 삶과 죽음은 사이가 가까운 존재들인 것 같다. 이제는 왜 사냐고 질문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죽고 싶다살고 싶다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살려는 의지처럼 죽고 싶다는 것도 하나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어느 쪽에도 의지라는 것이 있는 것이라면, 그 의지가 되도록이면 앞을 향하고 가능한 만큼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또 삶이라는 것은 나무가 여러 방향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자연스레 흔들리는 것이거나, 롤러코스터가 높이 올라갔다 땅으로 떨어졌다 다시 오르듯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그런 나무나 롤러코스터처럼 어떤 흐름에 내 삶을 맡긴 채 하루하루를 사는 날들이 내게도 찾아올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나의 노력도 지속해야지. 하루의 매 순간순간을 관찰하고 집중하고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려는 노력.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도 그런 날들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BY 하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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